한국이 20세기 초 일제강점기부터 6·25전쟁이라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 21세기에 경제·문화 강국으로 발전한 이후 얻은 큰 혜택 중 하나는, 적게나마 국가적 자존감을 회복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낙후된 경제를 개선하고자 선진국들의 사례를 급하게 모방해야 했던 과거에는 한국의 문화는 저급하고 미국이나 유럽 선진국의 것은 뛰어나다는 인식이 깊었다.
지금도 여전히 사회, 경제, 외교 등 여러 분야에 개선해야 할 문제들이 많지만, 콘텐츠 산업을 비롯한 문화 분야에서는 전 세계가 주목하고 열광하는 수준의 역량을 갖췄다. 또한 식민사관의 영향으로 늘 비판적인 관점에서 조명했던 우리 역사도 이제는 새로운 관점으로 다층적인 해석이 이뤄지고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산업을 주도했던 자동차와 가전, 반도체 시장이 다른 경쟁국들의 도전을 받으면서 주춤거리는 모습을 보여 차세대 먹거리 사업에 대한 비상등이 켜졌지만, 최근 경쟁력 있는 분야를 다각화하면서 새로운 활로를 개척하고 있다. 우리가 큰 자랑거리로 꼽는 K-Pop, K-드라마 같은 콘텐츠 사업은 잠시 반짝했다 사라지는 한류일지 모른다는 우려를 불식시키고, 전 세계가 주목하는 위치에 이르렀다.
방위산업같이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분야도 성장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한국의 위상이 돋보이는 분야는 소프트파워라고 불리는 문화 사업과 정보통신 사업(IT) 분야이다.
한국적 관점의 두뇌개발 접근법이 지닌 경쟁력
태권도는 세계적으로 약 7천만 명이 수련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과거에 가장 인기 있는 전통 무술로 알려져 있던 가라테의 수련자 수(약 5천만 명)를 훌쩍 뛰어넘은 숫자이다. IT 분야라고 하면 보통 미국의 거대 기업들을 상상하지만, 이들 기업에 의존하는 대부분의 국가와 달리 한국은 독자적인 IT시장을 보유하고 있다.
경제력 규모에서 우리나라를 압도하는 일본조차 한국의 네이버가 개발한 메신저 ‘라인’이 없으면 국가 전산망이 흔들릴 정도로 한국의 IT기술에 의존하는 상황이다.
AI와 로봇 기술, 자동화 시스템의 발전으로 산업구조가 전반적으로 변화하고, 이에 따라 인적자원의 경쟁력에 대한 재검토가 이뤄지는 상황에서 개인의 역량개발, 특히 두뇌개발 분야는 매우 큰 잠재력을 지닌 새로운 소프트파워로 부상하며 크게 주목받고 있다.
AI가 대체할 직종이 어디까지일지 우리는 불안한 마음으로 가늠해보곤 하지만, 새로운 기술은 새로운 직종을 창출한다는 것이 근대화 이후 역사가 늘 입증해 온 사실이다.
새롭게 등장할 직종이 무엇인지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그 일이 인간의 삶과 행복의 질을 높이는 것과 관련 있으리라는 점은 확실하다. 항상 그래왔듯 이는 더 고차원의 인적 역량을 요구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적인 방식의 시도가 국제적 시각에서도 경쟁력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이제 그리 놀랍지 않은 일이 되었다. 잠재적으로 높은 경쟁력을 지닌 한국적 관점의 두뇌개발 접근법도 그중 하나이다. 한국식 뇌교육은 홍익정신으로 대표되는 한국 전통의 시스템적 사고에 기반한다.
왜 뜬금없이 홍익이라는 고리타분한 단어가 나오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전통문화에 대한 자존감과 피해의식을 회복한 우리가 이 단어에 함축된 고대에서부터 이어져 내려온 고유의 견시관을 이해한다면 어떤 분야에서든 새로운 경쟁력을 얻게 될 것이다.
인과관계보다 시스템적 사고를 중시한 홍익 철학
홍익은 고조선부터 내려오는 전통의 국가이념이자 민족이념이라고 할 수 있다. 언뜻 들으면 단순히 착하고 바르게 살라는 의미로 생각할 수 있지만, 널리 이롭게 한다는 말에는 그보다 더 깊은 철학이 담겨있다.
고조선의 중심지인 한반도 북부와 만주 지역은 다양한 민족이 교류하며 살 수밖에 없는 지역이었다. 또한 이 지역의 특이점은 다른 북부지역과 달리 농사가 가능해 정착할 수 있다는 점이었고, 이로인해 매우 독특한 환경이 만들어졌다.
약탈, 전쟁, 교역, 협력, 동맹 등 수시로 여러 민족과 다양한 방식의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환경에서 선함과 악함, 강함과 약함은 항상 상대적이고 가변적이라는 인식을 가졌던 것이 우리 선조들의 삶이었다.
홍익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는 우리의 전통적인 관점은 인과관계보다 시스템적 관계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절대적으로 불변하는 가치관보다 상황에 따라 변하는 가치관 속에서 가장 현명한 선택이 무엇인지를 판단하는 것이 우리의 덕목이자 견시관이었다.
또한 이는 어떤 행동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는지보다 하나의 환경에서 각자의 요인이 서로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는지를 판단하는 것을 중시했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한국 불교의 원효대사나 성리학의 율곡 이이 선생도 절대적인 가치를 주장하기보다 유연성과 연결성을 강조했다.
이 같은 전통적 관점은 현대의 인력개발, 두뇌개발 분야에서 큰 이점을 발휘할 수 있다. 뇌에 대한 이해가 발전할수록 뇌는 기계와 같이 입력과 출력이 명확한 프로세스적 구조가 아니라 수많은 기관이 연결되어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시스템적 구조임이 밝혀지고 있다.
몸속의 내장 기관도 뇌의 명령에 따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뇌를 지배하는 것으로 보일 만큼 뇌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몸과 뇌는 하나의 시스템이며, 늘 연결되어 상호작용한다.
이러한 뇌과학적 사실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기 몇십 년 전부터 한국에서는 뇌훈련 기법에 체조와 명상 등 다양한 방법을 도입했다. 도입 초기에 사람들이 품었던 의문은 ‘왜 두뇌개발을 한다면서 체조를 하냐’는 것이었다. 이제 그 의문을 세계 최고 수준의 뇌과학자들이 풀어주는 시대가 되었다.
아직 프로세스적 사고가 주류인 세계 무대에 시스템적 사고를 도입하고, 이를 활용해 다양한 사업을 발전시킬 열쇠가 일찍이 우리 선조들이 터득한 홍익이라는 지혜 속에 숨어있다.
글_이정한 미국 IBE 지구경영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