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통 사람들은 무엇을 본다고 하면 눈이 본다고 생각하고, 들으면 귀가 듣는다고 생각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눈이 보는 게 아니라 뇌가 보는 것이고, 귀가 듣는 것이 아니라 뇌가 듣는 것이다. 즉, 시각이라는 2차원으로 들어오는 외부적 정보가 눈에서 1차 정보 변환이 일어난 이후, 빛과 색, 공간 정보가 기존 정보와의 통합적 처리를 통해 뇌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1 시각적 유희가 뇌를 먼저 자극한다
음식을 먹을 때 맛을 느끼기 전에 뇌가 먼저 반응하는 것이 바로 ‘시각적 자극’이다. 인간의 뇌는 기본적으로 오감을 통해 외부의 정보를 받아들이는데 이 중 가장 큰 영역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시각’이다. 무려 외부 입력의 80~90%를 시각 정보가 담당한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비빔밥. 외국인들에게 김치, 불고기와 더불어 외국 항공사에서도 기내식으로 제공할 만큼 인기가 높은 한류 대표 음식인 비빔밥은 재료와 빛깔이 아름다워 원래 골동반骨同飯 혹은 화반花飯으로 불렸다. 골동반은 ‘어지럽게 섞는다’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고, 화반은 ‘꽃밥’이라는 뜻을 지녔다.
오색찬란한 색깔과 형태를 갖춘 비빔밥의 요소는 망막을 통해 여러 전달 경로를 거쳐 뇌의 시각 영역에 해당하는 후두엽에 도착한 후, 뇌 속에서 전체적인 이미지로 재구성된다.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닌 뇌로 비빔밥을 ‘본다’라는 표현이 과학적으로는 보다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선명하고도 강렬한 시각적 요소를 가진 비빔밥은 입에 넣기도 전에 이미 우리의 뇌에 충분한 시각적 유희를 불러일으키는 셈이다. 보기에 좋은 음식이 먹기에도 좋다는 말이 빈말은 아닌 셈이다.
#2 플라세보 효과 활용한 맛 높이기?
뇌의 긍정 심리 효과라고 불리는 ‘플라세보 효과placebo effect’. 간단히 말하면 약물 효과가 없는 가짜 약으로 얻는 치료 효과를 일컫는데, 실제 가짜 약으로도 약 20~30%가 약물 효과를 얻는 것으로 알려져 오늘날 ‘이중 맹검사double blind test’라 하여 신약 개발 시 비교 테스트 방법으로 널리 활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심리적 반응으로만 여겼던 이 플라세보 효과가 실제 뇌에서 일어나는 작용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올 만큼 긍정적 마음이 신체에 미치는 심신의학의 대표적 현상으로 주목받고 있다.
어릴 적 대부분의 어른들은 “안 좋은 기억이나 걱정거리가 있더라도 밥 먹을 때만큼은 즐겁게 먹어라”고 자주 얘길 하셨던 기억이 있다. 이른바 마음에 의한 뇌의 긍정적 변화를 가져온다는 플라세보 효과 관점에서 보자면 맛을 높이는 것은 두 가지로 예상된다. 음식을 먹기 전에 즐겁고 ‘참 맛있겠다’라는 긍정적 마음을 가지는 것이 하나이고, 입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요리 과정에 참여하는 시간과 강도가 높을 경우 그 가능성이 더욱 커질 수 있다.
완성품 형태의 음식보다는 덮밥 종류처럼 섞어 먹는 경우, 여러 가지 쌈을 싸서 먹는 경우 등 넣고 제조(?)하는 시간이 더욱 긴 음식일수록 플라세보 효과의 가능성을 높게 예상할 수 있다. 음식을 먹기 전까지 요리하는 과정에서 입에 침이 도는 것은 잠시 후에 입안으로 들어갈 결과에 대한 ‘상상’이라는 뇌 현상이 인체에 변화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 상상에 대한 생생함과 구체성, 몰입도가 ‘맛’의 강도에 미묘한 차이를 가져오리라는 점도 생각할 수 있다.
오랫동안 내려온 옛 조상들의 말에는 거의 틀린 것이 없다. 마음과 물질의 분리가 20세기의 과학을 지배했다면, 지금은 연결성과 통합성을 갈수록 강조하는 시대에 접어들었을 뿐이다. 인체가 느끼는 음식의 맛도 미각이라는 하나의 감각이 아니라, 마음의 작용이 일어나는 근간인 ‘뇌’에서 비롯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음식의 질과 양을 넘어 ‘즐겁고 신나게, 이 음식이 내 몸에 좋을 것이라는 좋은 마음을 먹는 것’, 바로 그것이 아닐까.
글. 장래혁 한국뇌과학연구원 선임연구원, <브레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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