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술가들의 창의성과 두뇌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서울 안국동 사비나미술관에서 예술과 두뇌 사이에 숨겨진 창의성의 비밀을 작품을 통해 살펴보는 색다른 전시가 열리고 있다. ‘BRAIN:뇌 안의 나’ 전을 기획한 강재현 전시팀장을 만났다.
예술가들의 창의성의 비밀을 뇌라는 코드로 풀어보는 기획전시가 사비나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강재현 전시팀장은 그동안 사비나미술관에서는 예술과 타 분야를 결합한 융합 전시가 지속적으로 기획돼 왔다고 전했다.
“사비나미술관은 1996년 인사동에서 기획전시를 전문으로 하는 갤러리로 출발해 2002년 안국동으로 이전하면서 사립 미술관으로 등록됐어요. 갤러리는 그림을 전시해서 수입을 창출하는 게 목적이라면 미술관은 대중들에게 현대미술을 알리는 게 목적이에요. 사비나미술관은 참신한 기획을 통해 난해한 현대미술을 대중에게 쉽고 친근하게 알리는 대중 미술관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예술가들의 두뇌로 풀어보는 창의성의 비밀
실제로 사비나미술관은 일반인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를 미술작품에 발 빠르게 접목해온 기획력으로 주목받았다. ‘아바타’ 영화가 상영될 때는 ‘아바타와 3D’를 연계한 전시를 기획했고, SNS 이용자가 폭발적으로 늘었던 올 초에는 ‘소셜네트워크 아트 전시’를 진행했다. 강 팀장은 이런 기획전시를 통해 현대미술의 흐름을 대중에게 친근하게 알리는 역할을 주로 해왔다.
특히 이번 ‘BRAIN:뇌 안의 나’전은 작품만 훑어보고 마는 전시가 아니라 작품 이면에 드러난 작가의 창조성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전시이다. 강 팀장은 이번 전시의 기획의도를 이렇게 밝혔다.
“이번 전시는 융합 전시의 연장선에서 예술작품을 뇌라는 코드와 융합한 시도라고 볼 수 있어요. 우리에게도 상당히 실험적인 시도입니다. 그동안 작가 사후에 그의 뇌를 들여다보고 작가의 성향을 유추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생존해 있는 작가의 뇌를 두뇌인지 모델이라는 렌즈로 들여다보는 경우는 흔치 않았어요.
뇌는 누구나 관심을 갖는 영역이면서도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신비한 영역인데, 작가들의 뇌를 들여다보고 그들의 창의성이 어디서 나왔는지 살펴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에 이번 전시를 기획하게 됐습니다.”
이처럼 타 분야와 미술을 융합하는 전시를 주로 기획하다 보니 과학, 수학, 기술 등 타 분야 전문가들과 협업하는 경우가 잦다.
“이번에는 두뇌유형 전문 검사기관인 (주)MSC브레인컨설팅그룹의 도움으로 작가들의 뇌 성향을 알아보기 위해 MSC뇌적성검사를 받았어요. 또 (사)창의공학연구원의 후원으로 작가들의 창의성이 어떻게 발현되는지 알아보기 위해 토란스의 TTCT(Torrance Tests of Thinking) 창의력 검사도 실시했죠. 수시로 관련 분야 전문가들을 만나고 워크숍과 세미나를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기획능력 못지않게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중요해요.”
전시를 기획하는 과정에서는 무려 50여 명의 작가를 만나 인터뷰를 하고 두뇌유형 테스트를 진행했다. 그 또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작가들의 뇌가 일반인과 어떻게 다른지, 작가들이 가진 창의성이 두뇌 성향에 어떤 식으로 드러나는지 내심 궁금했다고 한다.
“흔히 우뇌는 감성적이고 좌뇌는 이성적이라고 하잖아요. MSC뇌적성검사는 두뇌유형을 크게 ‘완전 우뇌형’ ‘강한 우뇌형’ ‘좌뇌 성향의 우뇌형’ ‘좌우뇌형’으로 분류하는데, 테스트를 하기 전에 우리가 예상한 작가들의 두뇌 성향과 실제 결과가 다른 경우가 의외로 많았어요.”

작가들의 두뇌는 일반인과 어떻게 다를까?
그렇다면 검사결과 작가들의 두뇌 성향은 어떻게 나타났을까?
“작가들에게 가장 많이 나타나는 유형은 ‘좌뇌 성향의 우뇌형’이었어요. ‘좌뇌 성향의 우뇌형’은 좌뇌적 사고를 기반으로 작품을 창작하는 경향이 있는데, 아무래도 이 유형이 현대미술의 특징을 가장 잘 대변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 같아요. 실제로 과거에는 고갱이나 고흐처럼 작품을 창작하는 작가의 감성이 중요했어요.
그러다 현대미술로 오면서 작품의 개념이 중요해지게 되었죠. 작품 안에 어떤 철학과 메시지를 담느냐가 중요해지고, 사용하는 재료도 물감과 붓만이 아니라 미디어와 사운드 등 실험적인 재료를 사용하다 보니 작가들의 과반수가 ‘좌뇌 성향의 우뇌형’으로 진단되었습니다.” 작가들의 창작 성향을 두뇌인지 모델로 분류하면서 재미있는 점도 발견됐다.
“흔히 작가들은 창의성이 뛰어나다고 하잖아요. 테스트를 하면서 정말 그런지 궁금했어요. 검사결과 작가들의 뇌는 실제로 일반인들의 뇌와 차이가 있었어요. 예를 들어 30~50대의 일반인 남성은 사회성 지수가 굉장히 높게 나타나요. 한창 사회생활을 왕성하게 하는 시기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예술가들의 경우는 대부분 사회성지수와 신체활동지수가 낮게 나왔어요. 아무래도 혼자 작업하는 경우가 많고, 자신의 예술철학을 정립하기 위해 고민하고 사색하는 경향이 강하다 보니 그런 것 같아요. 그나마 설치미술을 하는 작가들이 신체활동지수가 다소 높게 나왔고, 우뇌형 작가들은 대인관계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사회성지수가 높은 편이었습니다.”
폐쇄적이고 조용한 성향의 작가들은 자신들의 뇌를 들여다보는 두뇌적성검사를 불편해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작가들은 자신의 창작 성향을 두뇌인지모델로 진단하는 데 흥미를 느꼈다.
“두뇌 테스트를 하고 나서 자신을 좀 더 잘 이해하게 됐다는 작가들이 많았어요. 작품을 창작할 때 자신이 왜 그런 고민을 했는지, 왜 특정 재료에 유독 관심을 가지게 됐는지 유추해볼 수 있어서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지요. 특히 ‘좌우뇌형’의 정영훈 작가는 작품을 표현하는 데 작가의 아이덴티티보다 두뇌 성향이 더 직관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보이기도 했어요.”
전시 기획 자체가 또 하나의 예술
두뇌유형 검사결과 ‘완전 우뇌형’으로 나왔다는 강 팀장은 실기와 예술 기획을 공부한 후 1997년부터 큐레이터로 활동해왔다. 그는 전시 기획을 할 때 일반인들에게 쉽고 흥미 있게 다가갈 수 있는 주제를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다고 한다.
그러려면 단순히 미술에만 관심을 두어서는 안 된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사람들이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늘 주파수를 맞추고 있어야 한다. 한때 작가를 꿈꾸기도 했던 그는 전시 기획도 하나의 예술 작업이라고 말한다.
“주제를 선정하고 주제에 맞는 작가, 작품을 한데 모아 전시를 하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창작 작업과 다름없어요. 전시 기획은 상당한 창의력이 필요하고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이에요. 게다가 관람객들과의 소통을 항상 고민해야 하기 때문에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완전 우뇌형’인 저에게 상당히 매력적인 일입니다.”
작가들의 창의성이 어떻게 발현되는지 그들의 작품을 통해 유추해볼 수 있는 이번 전시는 오는 10월 19일까지 계속된다.
글·전채연 ccyy74@naver.com | 사진·박여선 pys031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