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 아니 의료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가장 기본이 되는 변화는 소위 수백 년을 지탱해온 의료의 기본 속성이라고 할 수 있는 ‘지식의 비대칭성’이 깨진다는 것이다. 보건의료에 다른 어떤 산업보다 규제가 많은 것은 바로 이 ‘지식의 비대칭성’이 가져오는 시장 실패 때문이다.
원래 시장경제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공급과 수요의 원칙에 따라 가격이라는 것이 결정된다는 것은 모두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보건의료 부분은 이런 원리가 먹히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동안은 공급자에 해당하는 의사, 간호사 같은 의료인들이 정보와 지식을 독점한 탓에 공급자가 완전히 가격을 결정하고 시장을 끌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을 막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많은 규제가 생기고, 가격을 통제하기 위한 방법으로 사회보험 체계가 생겨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기본 가정이 최근 깨지기 시작했다. 소위 ‘구글 환자(검색엔진인 구글에서 의료 정보를 얻는 환자. E-patients라고도 함)’가 등장하면서 소비자에 해당하는 환자들도 질병에 대한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고, 이로 인해 가장 근본적인 가정인 ‘지식의 비대칭성’이 깨지고 있다.
이런 변화는 앞으로 더 많은 정보가 개방되고, 소셜 미디어와 네트워크가 확장되면서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 측면에서, 과거의 체제에 맞추어 만들어진 수많은 보건의료 산업과 관련한 규제와 체계 역시 재편되어야 마땅하다.
유헬스(Ubiquitous Health, 의료와 IT를 접목한 것으로 의사가 시간적 공간적 제약없이 환자를 진료하는 원격 진료 시스템)에 대해 전향적인 시각을 가져야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환자들은 자신들의 건강 문제에 대해 누구보다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어 있고, 자신의 병력이나 증상 등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들은 매우 제한된 가이드를 제공받고 있으며, 가끔은 자신들을 표현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이러한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 많은 환자들이 인터넷과 검색 엔진, 소셜 네트워크 등을 통해 정보를 획득하려 한다. 그렇지만 현재의 인터넷은 환자들에게 과도한 정보를 제공하며, 일부의 정보는 오해의 소지가 많아 잘못된 방향으로 인도하기도 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며, 환자들이 자신들의 증상과 생각을 보다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자신들의 생각이나 감정 등을 건강 의료의 행위 과정에 손쉽게 접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미 소비자 중심의 의료, 건강 2.0(Health 2.0)의 시대는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우리도 환자와 일반인들의 건강 생활에 대한 주도적인 역할을 인정하고, 이들과 의료진들의 적극적인 소통과 협력을 통해 보다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다른 것은 몰라도 미국은 의료기술, 특히 신기술 개발과 새로운 의료기기, 신약 등과 같은 연구 부분에서 세계 최고를 달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투자도 많이 하고, 과학자들도 많고, 연구 개발에 돈도 많이 쓰기 때문에 이에 따른 비용 회수를 위한 하이테크 기업들도 많이 발전하고 있다.
그렇지만 미국의 의료 시스템이 전 세계에서 가장 앞섰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고 건강 의료의 수준이 최고로 높은 것도 결코 아니다.
물론 의학은 과학을 중심으로 발달해왔고, 과학에 근거를 둔 접근과 과학기술의 총아로 탄생한 여러 기술들을 가지고 진단하고 치료를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우리가 가장 본질적인 무엇인가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서비스 공급자인 의사와 소비자인 환자의 관계 재정립 필요
의사라는 직업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다루는 직업이다. 그래서 묻고, 듣고, 만지고, 소통하는 방법이 가장 중요한 기술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정작 중요한 본질적인 이러한 소통과 관련한 부분보다는 지나치게 기술과 과학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풍토가 일반화되어버렸다.
이러한 분위기는 교육 현장에서도 그다지 다르지 않아서, 교수나 학생 모두 인문사회적인 소양과 감성,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의 공감이나 교감이라는 요소들은 소홀히 하고, 오로지 의과학적인 요소만 중시하는 태도를 지닌 경우가 많다.
이러한 변화는 의과대학 교육과 과학과 기술에 대한 맹신이라는 풍토에도 요인이 있지만, 의료보험과 지불 시스템에도 커다란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와 미국의 의료 시스템이 많이 다른 듯하지만, 비슷한 부분들도 있는데, 그중 하나가 행위(procedure)별로 수가를 정해서 지불하는 ‘행위별 수가제’라는 지불 방식이다.
행위별 수가제는 기본적으로 의사와 환자라는 관계, 소통과 관리가 중요한 의료라는 행위를 어떤 기술을 이용하고, 어떤 약과 기구 또는 기계를 사용했는지에 따라 평가하고 지불하는 체계다. 이렇게 하면 특별한 기술을 써서 치료하거나 좋은 약품을 쓰고 비싼 기계를 사용하는 것이 환자와 대화를 더 많이 하고 정성스럽게 대하는 것보다 좋은 평가와 지불을 받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의사와 환자의 관계와 소통을 강조하며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또한 뭐 하나를 하지 않으면 왜 안 했느냐고 분쟁을 하고 책임을 물지만, 과도한 검사나 치료를 하는 경우에는 특별히 법적인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것 역시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의사들은 책임을 면하기 위해서라도 약간만 의심스러우면 많은 검사와 치료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한편 개업을 하고 동네에서 진료를 하고 있는 의사는 자신이 치료하고 관리할 수 있을 것 같은 환자라도 조금이라도 꺼림칙하면 그냥 의뢰서를 써서 대학병원으로 보내는 것이 현명하다고 여기게 만드는 것도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제도 타령만 하고 수동적으로만 대처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기존의 시스템을 뜯어고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사회의 시스템을 교정한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회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것부터 조금씩 교정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의사들은 환자들이 과거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고 있으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들과 어떻게 협력하고, 어떻게 인간적으로 대하면서 같이 소통할 것인가를 훨씬 많이 고민해야 하며, 정부에서는 과도한 규제를 풀어야 한다.
어차피 소비자 중심의 의료, 건강 2.0은 대세이고 현실이다. 서비스의 공급자인 의사와 소비자인 환자의 관계가 재정립되어야 할 시기다.
글·정지훈 우리들병원 생명과학기술연구소장
하이컨셉 & 하이터치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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