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의 퇴행을 유발하는 헌팅턴병

뇌의 퇴행을 유발하는 헌팅턴병

레슬리 톰슨 박사와 함께한 Q&A

브레인 29호
2011년 08월 27일 (토) 13:25
조회수14083
인쇄 링크복사 작게 크게
복사되었습니다.



헌팅턴병은 삶의 전성기에 끔찍한 ‘뇌의 퇴행’을 유발한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어바인 캠퍼스(UC Irvine)의 신경과학자 레슬리 톰슨Leslie Thompson 박사의 책상 위에는 세 명의 어린이 사진이 놓여 있다. 사진 속 어린이들은 겉으로는 건강하게 보이지만 사실은 헌팅턴병(Huntington’s Disease.

일명 무도병이라고 불리는 퇴행성 뇌질환으로 팔다리가 제멋대로 춤추듯이 움직이는 운동 실조 증상을 동반함)을 앓고 있다. 이 병은 치명적인 뇌질환으로 미국에서만 3만 명 이상이 앓고 있으며, 2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이 병의 유전인자를 갖고 태어나 발병의 위험 속에서 살고 있다.

톰슨 박사는 샐다나와 그녀의 자녀들을 20년 이상 알고 지냈는데, 아이들 중 한 명은 세상을 떠나고 나머지 두 명은 급속하게 신체 기능이 마비되었다.

레슬리 톰슨 박사는 이렇듯 많은 사람들이 헌팅턴병으로 고통 받는 것을 보고 이 퇴행성 장애에 대한 치료법을 개발하기로 결심했다.


지난 40년 동안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어바인 캠퍼스의 ‘정신의학과 인간행동’ 분야 전공 교수인 톰슨 박사는 헌팅턴병의 비밀을 탐구하는 데 모든 시간을 바쳤다. 톰슨 박사는 연구 초기에 헌팅턴병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규명했는데, 그것은 이 분야에서 실로 엄청난 도약을 이룬 연구 성과였다.

그는 줄기세포를 이용해 헌팅턴병에 걸리기 쉬운 뇌의 영역을 강화하는 방법을 개발하기 위해 ‘캘리포니아 재생의학연구소(California Institute for Regenerative Medicine)’로부터 3천 8백만 달러의 기금을 지원받았다. 2009년 미국 헌팅턴병 연구학회는 연구 분야의 업적을 인정하여 톰슨 박사에게 상을 수여했다. 

브레인월드(이하 브레인)  헌팅턴병은 왜 중요한가? 도대체 어떤 병이기에 그런 것인가?
레슬리 톰슨(이하 톰슨)  내가 처음으로 헌팅턴병을 접한 것은 대학원생 시절이다. 그때 나의 동료는 헌팅턴병 유전자 돌연변이를 유발하는 DNA 특정 영역의 지표를 찾고 있었다. 헌팅턴병에 걸리면 삶의 전성기인 35세~50세 사이에 뇌가 퇴행하기 시작하여, 수년 간 고통을 겪은 후 남은 삶에 치명적인 결함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이 병은 유전성이며 우성인자에 의해 유전되는데, 이 말은 아버지가 병을 가진다면 아이들이 이 병에 걸릴 확률이 50퍼센트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 돌연변이 질병 유전자를 물려받은 사람 거의 대다수가 발병하며, 결국 행동장애, 인지장애, 우울증과 같은 정신병리학 증상을 보인다.

이 병은 ‘헌팅턴’이라고 불리는 단백질에 의해 돌연변이가 일어난 DNA 유전자 안에서 발병한다. 이 단백질은 정상적인 뇌 기능에 필수적이지만, 반복단위가 확대되면 결국 발병하게 된다. 또한 반복이 더 잦아지면 더 젊은 나이에도 발병할 수 있다.

브레인  그동안 해온 연구 중에서 가장 괄목할 만한 연구 성과는 무엇인가?
톰슨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세포배양을 통해 헌팅턴병에서 일어나는 기능장애와 단백질 응집에 관한 모델들을 발견한 것이다. 다시 말해 돌연변이 유전자의 ‘유도’를 실험 접시에서 시간 변화 추이에 따라 통제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 연구는 MIT공대의 Next 실험실, 그리고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어바인 캠퍼스의 래리 마쉬Larry Marsh와 협력하여 이루어졌으며, 인체 내에서 일어나는 헌팅턴병과 매우 많은 측면이 일치하는 모형을 실험실에서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 모형들은 유전학적인 시험모델로서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약물 투여 여부나, 약물 투여 종류에서부터 실험용 쥐에 헌팅턴병을 배양하거나 궁극적으로 인체에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인간이 헌팅턴병을 앓을 때 뉴런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퇴화하는지, 다른 양상의 변이는 어떻게 일어나는지, 세포 내에서 단백질이 어떻게 제거되는지, 세포의 어떤 특정 부위에 단백질이 부적절하게 축적되는지, 유전자 제어가 어떻게 방해받는지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과정을 규명했다.

또한 우리는 인체의 뇌세포 내에서 이런 이상 과정을 어떻게 하면 복구하여 바른 균형을 찾고 건강하게 만들지에 대한 방법론을 평가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줄기세포를 활용한 모형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브레인  실험실에서 오랜 시간 연구를 하다 보면 때로는 힘겨운 순간과 맞닥뜨리는 때가 있게 마련인데, 그런 순간을 넘어 계속 연구를 해 나가는 건 어떤 동기에서인가?
톰슨  내가 연구를 멈출 수 없는 가장 큰 동기는 무엇보다도 이 병을 앓는 환자와 가족들 때문이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이 병은 퇴행성이라서 활동이 가장 왕성하고 아이들을 돌봐야 할 인생의 전성기에 삶의 모든 것을 한 순간에 앗아간다.

아이들은 부모의 삶이 시들어가는 것을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되고, 배우자는 그 병에 걸린 환자와 나머지 가족을 모두 돌봐야 하는 힘든 상황을 떠안는다. 하지만 헌팅턴병에 걸린 환자의 가족들은 대부분 믿을 수 없을 만큼 용감하고 적극적이다.

브레인  여성 과학자로서 겪는 어려움은 없는지?
톰슨  연구 활동과 집안일을 함께 하려면 어려움이 생기곤 하지만, 운 좋게도 내게는 헌신적으로 도와주는 멘토들과 훌륭한 동료들이 있다.  

브레인  이 병을 앓은 프랜시스 샐다나에게서 무엇을 느꼈는가? 사무실 책상 위에 그녀의 아이들 사진이 놓여 있던데.
톰슨   몇 년 전에 프랜시스 샐다나를 만났는데, 헌팅턴병에 걸린 가족들로 이루어진 ?오렌지 카운티 모임’에 그때 처음으로 가입했다. 그녀는 엄청난 스태미나와 열정을 가지고 있다. 그녀의 남편은 헌팅턴병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결국 그녀의 세 자녀마저도 그 병에 걸리고 말았다.

게다가 지금은 두 명의 손자까지도 그 병에 걸릴 위험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녀는 지치지 않고 사람들에게 헌팅턴병을 알리고, 연구 기금을 마련하는 일을 계속했다. 헌팅턴병을 앞으로 계속 연구하기 위해서 그녀가 하는 일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하다.

프랜시스를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그녀의 자녀들은 증세가 약했는데, 이후 병이 점점 깊어지는 모습을 나는 무기력하게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자녀 중 한명인 마리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프랜시스의 자녀들이 떠올라 나는 항상 분발해서 연구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보조금 지급이 수월치 않거나, 실험실에서 온갖 장애에 부딪칠 때마다 프랜시스와 그녀의 자녀들을 떠올린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든 조금씩이나마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브레인  지금 진행하는 연구가 앞으로 헌팅턴병 환자를 치료하는 데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가.
톰슨   우리가 하는 연구를 쉽게 말하자면, 돌연변이가 일어난 헌팅턴단백질이 어떻게 하여 뇌세포를 병들게 하고 결국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지 밝혀내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우리가 집중하는 부분은 질병을 유발하는 영역에 약물을 사용함으로써 그 활동 과정을 방해하는 것이다. 즉,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이 병의 유발을 늦추거나 아예 발병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브레인  연구에 줄기세포를 활용한다고 들었다. 줄기세포 활용을 통한 치료법 개선 가능성을 어떻게 전망하고 있나? 또 줄기세포를 응용하여 암이나 당뇨, 알츠하이머와 같은 난치병 치료에 적용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보는가?
톰슨   줄기세포는 장래가 크게 기대되는 분야다. 우리는 헌팅턴병 환자로부터 피부 세포를 채취해 줄기세포에 다시 주입한 후, 특정한 뇌 세포로 배양될 수 있도록 유도한다. 그래서 이를 이용해 질병 모형을 만든 후, 어떤 약물을 사용하면 증상을 예방할 수 있는지 찾아낸다.

게다가 놀랍게도, 줄기세포를 해당 세포 유형으로 유도 배양하여 알츠하이머나 헌팅턴병에 걸리게 한 쥐에 이식할 수 있다는 것도 증명했다. 이 연구가 놀라운 이유는, 이 질병이 뇌의 다양한 영역에 영향을 미치지만, 줄기세포는 그 병든 세포들을 치료하거나 그 증상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헌팅턴병은 물론 알츠하이머와 줄기세포 등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과 협업하고 있다. 이 덕분에 의미 있는 성과를 낼 수 있었고, 꾸준한 발전을 이루어내고 있다. 

브레인  학자로서 이루고 싶은 업적은?
톰슨   헌팅턴병의 치료법을 찾는 데 기여했다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업적일 것이다. 나는 헌팅턴병을 앓는 가족들과 이제 한 가족처럼 지낸다. 서로 끈끈하게 맺어진 헌팅턴연구회 회원들도 모두 같은 심정일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내가 뭔가 해낼 수 있으리라는 느낌이 든다. 환자들에게,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내가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말이다.

브레인  치료법을 찾아내는 데 어느 정도 근접했나?
톰슨   이 질문에 답하기는 아주 어렵고, 대답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겠다. 우리는 해답에 매우 근접한 유전자를 찾아냈을 뿐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기간이 거의 18년이 되어간다. 다른 비슷한 뇌질환이 그렇듯이 이 병도 매우 복잡하다. 그러나 효과적인 치료법 개발에 다가갈 수 있다는 것만큼은 매우 낙관적으로 기대하고 있다.

글·마크 발론 Marc Ballon | 번역·구승준 wcandy@empas.com
이 기사는 국제뇌교육협회(IBREA)가 발행하는 영문 계간지 <Brain World>와 기사 제휴를 통해 본지에 게재함.

ⓒ 브레인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기 뉴스

설명글
인기기사는 최근 7일간 조회수, 댓글수, 호응이 높은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