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너리즘에 빠진 뇌에 재미를 묻다

매너리즘에 빠진 뇌에 재미를 묻다

[뇌야 놀자]

브레인 16호
2010년 12월 21일 (화) 0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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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게임 개발자인 라프 코스터는 15년 동안 다양한 게임을 개발하면서 사람들이 어떤 때 재미를 느끼는지 분석하였다. 그는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자주 지켜보았는데, 그 과정에서 인간은 “패턴을 학습하는 과정에서 재미를 느낀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실제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면 일정한 특징을 관찰할 수 있다. 아이들은 새로운 놀이를 발견하면 일단 해본다. 직접 해보며 실수도 하고 마음대로 안 될 땐 한계를 경험하기도 하면서 최대한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본다. 해가 지는 것도 모르고 밥 때도 잊고 놀이에 열중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재미있기 때문이다. ‘재미’만큼 인간의 뇌를 강렬하게 붙드는 것도 흔치 않다.

재미에 빠진 뇌의 질주 본능
우리가 재미있는 일에 푹 빠져 있을 때, 뇌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당구를 처음 배울 때 집에 와서 누우면 천장에 당구대가 그려지고 머릿속으로 반복해서 당구를 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굳이 당구가 아니더라도 흥미로운 일을 발견하면 뇌는 계속 그 생각 속에 머물고 심지어 꿈까지 꾸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이러한 현상은 뇌가 새롭게 이해한 패턴을 신경 경로를 통해 기존의 지식 틀에 통합하는 과정에서 일어난다.

이처럼 뇌가 일정한 패턴을 찾으려고 하는 이유는 익숙한 과정을 기계적인 절차로 만들기 위해서다. 우리 뇌는 단순한 것을 좋아한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우리가 어떤 일을 수행할 때 의식적으로 하기보다는 무의식중에 해치우는 경우가 더 많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운전을 할 때 초보 운전자는 액셀러레이터를 밟고 기어를 올리는 등 행동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게 의식적으로 하지만 베테랑 운전자는 딴생각을 하고 음악을 들으면서도 능숙하게 해낸다. 베테랑 운전자들의 뇌는 이미 운전의 패턴을 이해하고 단순화하는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연습은 근육이 아니라 뇌가 하는 것
이러한 패턴을 습득하는 데 왕도는 없다. 그저 익숙해질 때까지 수도 없이 반복하는 것이 유일한 길이다. 게이머들이 게임 룰과 방식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밤을 꼬박 새우는 것이나, 어린아이가 하나의 비디오를 계속 반복해서 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연습을 많이 하면 할수록 우리는 점점 생각하지 않고도 그 일을 완벽하게 수행하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이렇게 패턴을 찾아 반복해서 연습하고 숙달이 되면 뇌는 비로소 재미를 느끼고 그 일을 즐기게 된다. 예를 들어 컴퓨터 게임에 열중하고 있을 때, 게임을 계속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패턴을 인식하게 되고 뇌 속의 게임 회로가 점점 강화된다. 첫 단계를 깨고 나면 그것을 달성했다는 성취감에 젖어 도파민이 방출되고,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게임에 완전히 빠져든다. 반면 패턴을 찾지 못하거나 패턴을 찾아도 연습이 부족하거나 숙달이 되지 않으면 재미를 느끼기가 어렵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인간이 패턴을 뇌에 각인시키기 위해 반드시 실제로 연습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미국 클리블랜드 병원 신경과학자 광예 박사는 피험자들에게 실제 근육을 강화하는 훈련을 시키지 않은 채 마음속으로 근육을 강하게 수축시키는 상상 훈련만을 실시했다. 그 결과 4개월 후 피험자들의 근육이 15%가량 강화되었다. 이는 연습을 수행하는 곳이 근육이 아니라 뇌라는 사실을 입증한다.


뇌는 자발적인 역경을 좋아한다
하지만 뇌가 어떤 패턴에 지나치게 익숙해져서 더 이상 두뇌에 자극을 받지 못하면 그때부터 일상은 지루해지기 시작한다. 뇌과학자 모기 겐이치로는 《뇌가 기뻐하는 공부법》에서 “뇌는 자발적인 역경에서 기쁨을 느끼고 강해진다”고 말한다. 인간의 뇌는 수십만 년 동안 진화하는 과정에서 야수의 공격, 혹독한 환경 등 갖은 위기 상황을 겪으면서 발전해온 결과물이다. 따라서 골치 아픈 문제, 극복해야 할 환경에 놓여 있을 때 우리의 두뇌는 최상의 상태가 된다. 즉, 뇌는 위기와 극한 상황을 즐기며 그 속에서 놀라운 학습 능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겐이치로는 이러한 뇌의 본성을 무시한 채 ‘뻔한 것’, ‘쉬운 것’에만 관심을 가지면 뇌는 더 이상 발전하지 않는다고 경고한다.

하지만 여기에도 조건이 있다. 우리가 맞닥뜨린 위기 상황이 반드시 ‘자발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뇌는 자신이 스스로 설정한 목표에 헌신할 때 머리가 ‘팽팽’ 돌아가는 즐거움을 만끽한다. 하지만 타인이 억지로 강요한 역경은 오히려 뇌의 학습 능력을 떨어뜨리고 재미를 반감시킨다. 또 자신의 능력을 무시한 채 너무 과도하게 높은 목표를 세우면 이 또한 도전 의식을 자극하기보다 좌절감을 안겨주기 쉽다. 회사가 억지로 강요하는 업무를 할 때는 작업 속도가 더디다가도 스스로 선택한 미국 드라마에 빠져서 영어의 달인이 되는 경우가 바로 그런 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뇌가 느끼는 진정한 재미는 우리가 아슬아슬하게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의 ‘도전’에 임할 때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스스로 매너리즘에 빠져 있다고 느낀다면 지금의 일상이 자신에게 너무나 익숙해져서 뇌에 어떤 자극도 주지 않는 상태라는 것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그럴 때는 현재의 상황에 안주하기보다 의도적으로 조금 높은 수준의 과제에 도전해보자. 자발적으로 선택한 과제를 꾸준히 반복하면서 거기에 숨어 있는 패턴을 이해하고 차츰 단계를 높여나갈 때 비로소 우리 뇌는 짜릿한 재미를 만끽하게 될 테니 말이다.

글·전채연 ccyy74@brainmedia.co.kr  |  일러스트레이션·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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