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경의 미술치료 이야기 28편] 중독의 반대말, '연결'

[어수경의 미술치료 이야기 28편] 중독의 반대말, '연결'

어수경의 미술치료 이야기

인류가 중독과 싸워온 역사는 길지만, 그 싸움의 방식은 한결같았다. 중독 유발 물질을 철저히 단속하고, 법으로 금지했다. 중독에 빠진 이들을 교도소나 폐쇄병동이라는 더 깊은 장막 뒤로 격리했다. 사람들은 물질 자체가 지닌 절대적 중독성 때문에 한번 발을 들이면 폐인이 된다고 믿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우리는 병원에서 수술을 받을 때 헤로인보다 수십 배나 강한 마약성 진통제(펜타닐, 모르핀) 등을 며칠씩 맞는다. 그렇다면 퇴원한 환자들은 왜 마약 중독자가 되어 거리로 뛰쳐나가지 않을까? 

물질 자체에 인간을 완전히 지배하는 절대적 마력이 있다면, 병원 문을 나서는 환자들 상당수는 중독자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이 모순의 답을 찾기 위해서 시선을 ‘물질’에서 그들이 처한 ‘환경’으로 돌려본다.


쥐 공원(Rat Park) 실험이 깨부순 통념

1970년 과학자들은 좁고 삭막한 철창(케이지)에 쥐를 혼자 가두고, 일반 물과 마약이 든 물을 동시에 놓아두는 실험을 진행했다. 외롭게 갇힌 쥐들은 예외 없이 마약 물만 미친 듯이 마시다 결국 중독되어 죽었다. 

이 실험을 보고 “마약이라는 물질이 이렇게 무섭다.” 단속과 처벌의 정당성을 외쳤다. 그러나 1977년 Simon Fraser University의 심리학자 브루스 알렉산더(Bruce K. Alexander)는 이 결론에 허점을 간파하고 환경이 중독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실험을 진행하였다.  
 

▲ 왼쪽 A그룹, 오른쪽 B그룹 / bustle in the cage-row: the making of Rat Park (출처:stuartmcmillen.com)


“쥐들이 마약 자체를 사랑한 게 아니라, 비좁고 고립된 독방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도피처가 그것뿐이었던 건 아닐까?” 그는 쥐들을 위해 천국 같은 환경을 디자인했다. 맛있는 음식을 가득 채우고, 마음껏 달릴 수 있는 쳇바퀴와 놀이용 공을 넣었으며, 여러 마리의 동료 쥐들이 함께 어울려 사랑하고 번식할 수 있는 거대한 ‘쥐 공원(Rat Park)’을 만들었다. 그 결과 행복한 공원에 사는 쥐들은 마약이 든 물을 거의 거들떠보지 않았다. 

심지어 삭막한 독방에서 이미 마약에 끔찍하게 중독된 쥐들을 데려와 공원에 넣어주었을 때도, 중독된 쥐들은 며칠간의 금단 증상을 이겨내고 스스로 마약 물을 거부한 채 동료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중독은 물질의 강렬함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고립되고 세상과 단절되었을 때 찾아오는 ‘환경의 병’이므로 건강한 환경이 중독을 줄일 수 있다고 증명했다.


90년대 아이슬란드의 기적, 그리고 2026년 대한민국

이것이 단지 동물실험실 안의 이야기일까? 인간 사회, 특히 정서적으로 가장 취약한 ‘청소년기’의 중독은 쥐 공원 실험의 완벽한 인간 판례다. 

1990년 후반, 아이슬란드는 유럽에서 청소년 중독률이 가장 높은 위험한 국가였다. 10대 청소년의 40% 이상이 매달 술에 취해 거리를 배회했고 마약과 담배 연기가 골목을 뒤덮었다. 

당시 아이슬란드 청소년들이 중독의 늪에 빠진 이유는 길고 어두운 북유럽의 겨울 기후, 방과 후에 갈 만한 곳이 없고 부모들은 경제위기로 밤낮없이 일하느라 돌봄이 부족한 탓이었다. 가정과 공동체로부터 고립은 차가운 거리를 ‘케이지’가 되게 했고 청소년들은 고통과 외로움을 잊기 위해 물질이라는 가짜 담요를 덮었다. 

아이슬란드 정부는 처벌을 멈추고 국가 전체를 ‘쥐 공원’으로 바꾸는 대전환을 시도했다. 스포츠, 음악, 미술 등 방과 후 예술 활동을 무료로 즐길 수 있는 대규모 문화 바우처를 지급했고, 아이들이 안전하게 연결될 수 있는 공간을 디자인했다. 그 결과, 현재 아이슬란드 청소년의 폭음률은 5% 미만으로 추락하며 세계에서 가장 건강한 청소년 환경을 가진 나라가 되었다. 

이 기적 같은 이야기는 지금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처한 현실과 닮아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10대들은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사방이 막힌 학교 외에 학원과 독서실이라는 또 다른 형태의 ‘삭막한 케이지’에 갇혀 있다. 

끝없는 성적 경쟁 속에서 또래와의 건강한 유대감도, 부모와의 대화도 단절되었다. 소외된 텅 빈 마음의 틈새로 파고든 것이 SNS, 마약 거래, 불법 온라인 도박 등이다. 스마트폰이라는 손안의 아지트, 그 안에서 사용되는 은어를 주고받으며 은밀한 도피를 감행한다. 지금 청소년들이 도박과 약물에 손을 대는 것은,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고립된 케이지 안에서 숨이 막혀 보내는 생존 신호일지 모른다.


캔버스라는 안전한 공원에서 시작되는 '첫 번째 연결’

청소년들을 어떻게 다시 세상으로 꺼낼 것인가? 무작정 상담실에 앉혀 놓고 “왜 그랬어?” 질문하면, 수치심 가득한 청소년들은 방어기제의 빗장을 더 단단히 걸어 잠글 뿐이다. 

미술치료실은 안전한 환경의 쥐 공원 역할을 한다. 청소년에게 그 어떤 비난, 평가, 성적 매기기도 없는 ‘편안한 공원’이 되어준다.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내면의 억압과 지옥 같은 고통을 도화지 위에 그림과 색채로 쏟아낼 때, 그리고 치료사가 그 어두운 그림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공감해 줄 때, 아이들의 얼어붙은 마음은 녹기 시작한다. 

예술적 몰입은 물질이 주던 가짜 도파민 대신 건강하고 창조적인 진짜 도파민, 자연적 도파민을 뇌에 공급한다. 붓을 쥐고 자신의 상처를 시각화하는 과정을 통해, “내 마음이 이래요.” 청소년들은 마약이 주는 환각 대신 내 손으로 무언가를 표현하고 치유해 나가는 ‘세상과의 첫 번째 연결’을 경험한다. 

따라서 중독의 반대말은 억지로 참는 단주, 단약이 아닌 외로운 창살을 부수고 세상 밖으로 걸어 나오게 만드는 힘, 바로 따뜻한 ‘연결’이다. 청소년들에게 그 따뜻한 연결이 시작되는 곳, 미술치료실이다. 이곳에서 온전한 내 편이 되어주는 치료사를 만나고, 예술이라는 솔직한 언어를 통해 사람과 세상으로 향하는 다리를 놓게 된다. 그 다리 끝에서, 외로운 방황을 멈추게 되기를 기원한다.

글. 어수경

임상미술치료학 박사, 미술치료수련전문가로 EO심리상담교육개발원 대표이다. 한국융합예술심리상담학회 상임이사, 학술위원을 맡고 있고, 서울대, 경희대, 차의과학대 출강 중이며, 저서로 『멈추는 연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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