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호르몬, 옥시토신

사랑의 호르몬, 옥시토신

1909년에 발견된 옥시토신(oxytocin)은 뇌의 시상하부에서 합성되어 뇌하수체를 통해 혈류로 방출되는 신경전달물질이다. 그리스어로 ‘일찍 태어나다’라는 의미를 가진 옥시토신은 여성이 아이를 낳을 때 산모의 몸 안에서 농도가 급속히 올라가면서 진통을 자극하여 분만을 용이하게 한다. 

수유할 때 젖의 분비를 돕기도 한다. 사랑과 신뢰의 감정을 높이는 기능을 해 ‘사랑 호르몬’으로 불린 옥시토신은 오랫동안 모성애와 직결된 호르몬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1970년대에 옥시토신의 새로운 기능이 발견되면서 신경과학 분야의 매우 흥미로운 연구주제로 부상했다. 옥시토신이 성생활이나 대인관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정서적 애착과 유대감을 높이는 옥시토신

1979년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코트 페더센과 아더 프랭글은 “처녀 쥐에게 옥시토신을 투 여해 모 성행동을 유발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옥시토신을 투여받은 처녀 쥐들은 둥지를 짓고, 낯모르는 새끼들을 핥거나 보듬어주고, 심지어 길잃은 남의 새끼들을 둥지로 데려다주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바르일란대학의 심리학 교수 루스 펠드먼은 옥시토신 농도가 높을수록 엄마가 아이에게 쏟는 애정이 각별하며, 유대감이 깊어지는 것을 발견했다. 아버지가 아이와 놀아줄 때도 옥시토신이 분비된다. 또 사랑에 빠졌을 때 옥시토신 분비가 활발해진다. 그러나 정서적 애착이 없는 성행위에서는 옥시토신의 충분한 상승을 기대할 수 없다.

옥시토신은 부드러운 근육을 자극하고 신경을 예민하게 하여 상대방을 꼭 껴안고 싶은 욕구를 일으킨다. 성적 충동이 강렬할수록 옥시토신이 더 많이 분비되기 때문에 성교의 쾌감도 커진다. 오르가슴에 이르면 옥시토신의 혈중 농도는 5배까지 급상승한다. 일반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옥시토신의 혈중농도가 훨씬 높은 경우가 많다.

이처럼 성관계부터 출산, 수유, 돌봄 과정에 작용하는 옥시토신은 인류가 일부일처제를 정착시킨 뒤 부부의 결속을 공고히 하는 과정에서 진화된 호르몬으로 여겨진다. 옥시토신 농도가 높을수록 오르가슴 강하게 느껴 성행위를 하는 동안 남녀의 혈중 옥시토신 농도는 최대치에 이른다. 옥시토신이 많아지면 생식기 근 육이나 골반 또 는 항문의 괄약근이 규칙적으로 수축하기 때문에 혈중 옥시토신 농도가 높을수록 오르가슴을 더 강하게 느낀다. 절정에 달하면 도파민과 엔도르핀 분비도 최고조에 이르는데, 이밖에도 황홀감에 관여하는 신경전달물질은 50여 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미국 럿거스대학의 배리 코미사루크 연구팀은 23~56세의 건강한 비임신 여성 11명을 대상으로 오르가슴이 뇌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를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으로 촬영했다. 절정감에 이른 순간 뇌의 80여 개 부위, 즉 거의 전체가 흥분상태를 나타냈다. 처음에는 뇌의 감각피질이 활성화하고, 뒤이어 감정과 장기기억을 관장하는 변연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절정에 가까워지면 소뇌와 전두엽이 크게 활성화하는데 이는 근육 긴장에 의한 반응이었다. 절정의 순간은 자궁수축을 일으키는 쾌감유발 신경전달물질인 옥시토신이 분비되는 시상하부에서 나타났다. 이때 쾌감과 보상을 관장하는 측중격핵도 크게 활성화했다. 오르가슴이 진정된 후에는 모든 뇌 부위의 활동이 가라앉았다. [1]


연인 관계의 안정감을 높이는 사랑의 호르몬

사랑에 빠진 남성이 다른 여성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옥시토신 때문이다. 독일 본대학의 레네 후어레만 연구팀은 옥시토신이 기혼 남성이나 여자 친구가 있는 남성에게 어떤 반응을 일으키는지 알아보는 실험을 진행했다. 평균 나이 25살인 86명의 참가자를 대상으로 이 중 절반에게 코로 옥시토신을 들이마시게 하고, 나머지는 가짜 옥시토신을 들이마시게 했다. 이후 외모가 아름다운 여성을 처음 마주했을 때 그들이 얼마나 편안해하는지를 측정했다.

첫 번째 실험은 낯선 여성에게 실험 참가자들이 편안하게 느끼는 거리를 측정하기 위해 여성이 다가오거나 참가자가 다가가도록 했다. 그리고 부담없이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겠다고 느끼는 위치에서 멈추게 했다. 

두 번째 실험은 여러 가지 영상을 보여주며 즐거우면 조이스틱을 당기고, 기분이 나쁘면 밀도록 했다. 영상으로는 예쁜 여성이나 아름다운 경치, 팔다리가 잘린 인체 부위 등을 보여주었다.

연구팀은 두 가지 실험 모두에서 옥시토신이 실험 참가자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첫 번째 실험에서 싱글이 아닌 남성은 옥시토신을 흡입한 경우 여성과 평균 70~75m 정도 거리를 뒀는데, 이는 실험 참가자 중 가장 먼 거리였다. 하지만 싱글인 남성은 옥시토신 흡 입 여부와상관없이 여성에게 가까이 다가갔고, 옥시토신을 흡입한 남성은 여성에게 50~60cm 거리까지 접근했다.

두 번째 실험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옥시토신을 흡입한 남성 중 연애 중이거나 결혼한 사람은 아름다운 여성 사진을 보았을 때 반응하는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렸다. 사랑에 빠진 남자는 다른 여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데, 그 이유는 사랑하는 사람과 있을 때 분비되는 옥시토신의 영향 때문이다. [2]

사랑에 빠진 사람이 솔로보다 옥시토신 수치가 두 배 높아

이스라엘 바일란대학 연구팀은 사랑의 감정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지 알아보기 위해 옥시토신 수치와 관련한 흥미로운 연구를 진행했다. 새로 연인 관계(3개월 이내에 연애를 시작한 커플)가 된 20대 남녀 60쌍을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연인과 맺은 새로운 관계에 대한 걱정과 희망에 대해 조사하고, 이어서 두 사람이 함께 겪은 기분 좋은 경험에 대해 물었다. 이와 함께 커플의 혈액샘플을 채취했으며, 비교군으로 애인이 없는 43명의 혈액샘플도 조사했다.

연구팀은 첫 조사로부터 6개월 뒤, 옥시토신 수치가 높은 커플들은 관계를 지속하고 있고, 그렇지 않은 커플들은 헤어진 것을 발견했다. 사랑에 빠진 이들의 옥시토신 수치는 솔로인 사람보다 두 배가량 높았다. 솔로든 커플이든 옥시토신 수치는 성이나 체중, 신장, 흡연 여부, 피임약 복용 등과는 관계가 없었다.

옥시토신 수치가 높은 커플들은 인터뷰 중 상대방의 몸을 만지거나 시선을 맞추는 등 애정 표현을 더 많이 보였다. 이런 행위가 옥시토신 수치를 더 높이고, 높아진 옥시토신이 다시 사랑의 감정을 깊게 하는 선순환을 낳은 것이다. 이 연구를 통해 옥시토신이 로맨틱한 결속감을 갖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연인에게 끌리는 감정은 엄마가 아기에게 갖는 감정과도 유사하다. [3]

신뢰감과 우호성뿐 아니라 불안증을 높이기도

옥시토신은 사회적 지능과 유대감을 향상시켜주는 효능을 갖고 있어 신체를 건강하게 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2005년 스위스 취리히대 경제학과의 에른스트 페르 교수 연구팀은 《Nature》지에 옥시토신을 사람의 코에 뿌리면 상대에 대한 신뢰감이 높아진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남성 128명을 대상으로 투자게임을 진행하면서 옥시토신 냄새를 맡은 사람의 45퍼센트가 상대를 믿고 돈을 맡겼다고 한다. 옥시토신 냄새를 맡지 않은 사람은 그 비율이 21퍼센트에 그쳤다.

옥시토신이 기부 행위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4] 옥시토신을 흡입한 커플은 논쟁하면서 상대방 말을 끊고 비판하며 헐뜯는 등 지나친 행동을 훨씬 덜 하고, 상대의 말을 경청하며 때때로 미소를 띠는 등 애정이 담긴 행동을 더 오래 한다는 사실을 밝힌 연구도 있다. 그래서 옥시토신은 사회적인 기억에 도움을 주는 호르몬이라고 주장되기도 한다. 옥시토신으로 기억체계를 활성화하면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그 기억이 강화되고, 자신과 같은 그룹에 속한 사람에 대한 우호성이 증가된다. 옥시토신이 모르는 타인까지도 포용하게 한다는 것이다.

옥시토신이 늘 긍정적으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질투와 시기 등의 감정도 만든다.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 처하면 오히려 불안증을 높이기도 한다.[5] 미국 노스웨스턴대학 연구팀은 생쥐를 세 그룹으로 나눠 옥시토신 분비량을 각각 다르게 한 다음, 공격적인 생쥐가 들어 있는 우리에 집어넣고 그 반응을 살피는 실험을 진행했다. 옥시토신 수치를 높인 생쥐들은 옥시토신 분비를 막거나 정상 분비하는 생쥐들에 비해 공격적인 쥐 앞에서 더 불안해하며 공포 반응을 나타냈다. 불쾌한 상황에 처하면 옥시토신이 오히려 불안증을 키운다는 것이다. 

옥시토신은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에 강한 저항력을 가진다. 진통효과, 면역력 증강, 신체의 상처 치유력을 향상시키고, 혈압 상승을 막아 심장질환의 방어요소가 되기도 한다. 성적 수용성과 오르가슴을 상승시켜 성적 즐거움을 유발하며, 불안과 우울감을 경감시키고, 편도의 작동에 관여해 사회 공포증이나 자폐증에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옥시토신 분비량이 많을수록 삶에 대한 만족도 높아

최근 《Frontiers in Behavioral Neuroscience》에 게재된 미국의 한 연구는 옥시토신으로 인해 나이가 들수록 삶에 더 만족하게 된다는 결과를 보고했다. 연구팀은 103명(18~99세) 참가자들의 혈액샘플을 채취한 뒤 뇌종양으로 죽 어가 는 2살 아들에 대한 감정을 설명하는 아버지의 100초짜리 영상을 보여주었다. 영상을 시청한 참가자들은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평가하고 두 번째 혈액샘플을 채취했다. 그런 다음 참가자들은 친사회성을 측정하기 위해 돈과 관련된 두 가지 결정을 내렸다.

첫 번째는 그날 연구실에서 낯선 사람과 돈을 나누는 일이었고, 두 번째는 수입의 일부를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건이었다. 참가자에게는 연구 수익의 일부를 소아암 자선단체에 기부할 수 있는 선택권을 주었고, 이는 친사회적 행동을 측정하는 데 사용되었다. 

실험과정에 대한 세세히 설명을 건너뛰어 결과를 요약하면, 옥시토신의 분비량이 많을수록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고 타인에게 관대해진다는 것이다. 또한 나이가 많을수록 옥시토신 혈중 농도가 증가하고, 그에 따라 삶에 대한 만족도와 자선단체에 기부할 가능성이 증가했다. 노인들은 젊은 사람들보다 더 자주 자원봉사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인들의 옥시토신 반응이 높아지는 것은 젊은 참가자에 비해 삶의 만족도에 대한 평가가 높은 것과 관련이 있었다. [6]

옥시토신 수치를 높이려면

공감하고 감사하는 마음가짐은 우리 뇌에 옥시토신을 잘 분비하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과 같다. 다정하게 손을 잡고, 안아주고, 시선을 맞추며 웃는 행위 등은 옥시토신을 직접적으로 활성화하는 방법이다. 그 대상이 사람이든 반려동물이든 옥시토신은 정서적 안정감과 친밀감을 가져다준다. 간단한 마사지나 부드러운 신체접촉은 옥시토신 농도를 높여 코르티솔의 상승을 억제하므로 스트레스 관리법으로도 유용하다.


글_조용환
국가공인 브레인트레이너. 재미있는 뇌 이야기와 마음건강 트레이닝을 소개하는 유튜브 채널 ‘조와여의 뇌 마음건강’을 운영하고 있다.


참고문헌

[1] B. R. Komisaruk, N. Wise, LCSW, E. Frangos, W. Liu, K. Allen, S. Brody. (2011), “Women's Clitoris, Vagina, and Cervix Mapped on the Sensory Cortex: fMRI Evidence Get access Arrow”, The Journal of Sexual Medicine, Volume 8, Issue 10, October 2011, Pages 2822–2830.

[2] Dirk Scheele, Nadine Striepens, Onur Gunturkun, Sandra Deutschlander, Wolfgang Maier, Keith M. Kendrick and Rene′ Hurlemann (2012), “Oxytocin Modulates Social Distance between Males and Females”, Journal of Neuroscience 14 November 2012, 32 (46) 16074-16079.

[3] Inna Schneiderman, Orna Zagoory-Sharon, James F. Leckman b, Ruth Feldman. (2012), “Oxytocin during the initial stages of romantic attachment: Relations to couples’ interactive reciprocity”, Psychoneuroendocrinology, Volume 37, Issue 8, August 2012, Pages 1277-1285

[4] Kosfeld, M., Heinrichs, M., Zak, P. et al. (2005), “Oxytocin increases trust in humans. Nature” 435, 673–676 (2005).

[5] Shamay-Tsoory SG, Fischer M, Dvash J, Harari H, Perach-Bloom N, Levkovitz Y. (2009), “Intranasal administration of oxytocin increases envy and schadenfreude (gloating)”. Biol Psychiatry. 2009 Nov 1;66(9):864-70. doi: 10.1016/j.biopsych.2009.06.009. Epub 2009 Jul 29. PMID: 19640508.

[6] Paul J. Zak, Ben Curry, Tyler Owen, Jorge A. Barraza (2022), “Oxytocin Release Increases With Age and Is Associated With Life Satisfaction and Prosocial Behaviors”, Behavioral Endocrinology, Volume 1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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