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할 때 뇌에서 무슨일이 벌어질까?
“어휴, 오늘따라 왜 이렇게 온몸이 천근만근이지?” 이런 날, 당신의 뇌는 남몰래 격렬한 ‘에너지 전쟁’을 치렀을지 모른다. 스스로 의식하지 못한 에너지 소모가 과하게 일어난 이유는 뜻밖에도 무심코 내뱉은 아주 작은 ‘거짓말’ 때문일 수 있다.
뇌과학자들이 흥미로운 사실을 밝혀냈다. 우리가 진실을 외면하려 할 때, 뇌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며, 그 피로감은 단순한 기분 탓 정도를 넘어선다는 것이다. 우리를 ‘조용한 피로’로 이끄는 거짓말의 작용을 파헤쳐보자.
거짓말은 뇌의 인지 자원을 고갈시키는 고도의 심리전
우리 뇌는 거짓말을 하는 순간, 즉시 전투태세에 돌입한다. 마치 폭풍우 속에서 침몰 직전의 배를 조종해야 하는 선장처럼 뇌는 여러 가지 복잡하고 상반되는 명령들을 동시에 처리해야 하는 극한의 상황에 놓인다. 이 과정은 마치 여러 개의 프로그램을 동시에 실행하는 고사양 컴퓨터가 버벅거리는 것과 유사하며, 뇌의 한정된 인지 자원을 과도하게 소모한다.
무엇보다 먼저, 뇌는 내 안의 ‘진실’이라는 강력한 증거를 억압해야 한다. 오랫동안 굳게 믿어온 신념을 부정해야 하는 것처럼, 뇌는 이미 확고하게 자리 잡은 정보를 의식적으로 차단하는 데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붓는다. 이는 마치 강한 자기력을 가진 두 물체를 억지로 떼어놓으려는 노력과 비슷하며, 상당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이뿐 아니라 뇌는 존재하지 않는 ‘가짜 현실’을 정교하게 창조해야 한다. 단순히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이전의 기억과 맥락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면서 상대방의 의심을 피할 수 있을 만큼 논리적인 허구를 구축해야 한다. 이는 마치 복잡한 소설의 플롯을 즉석에서 짜내고, 등장인물의 감정과 행동까지 세밀하게 연기해야 하는 배우의 작업과 유사하기 때문에 뇌의 작업기억(working memory), 추론능력, 창의적 사고 능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린다.
노아 오펜 연구팀이 미국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진행한 기만효과 실험에 따르면, 피실험자들이 거짓말을 할 때 뇌의 전전두엽과 두정엽을 포함한 여러 뇌 영역의 활성화가 진실을 말할 때보다 현저하게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배외측 전전두엽과 전방 대상피질은 인지적 충돌을 감지하고 해결하며, 부적절한 반응을 억제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거짓말을 할 때 이 영역들이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은 뇌가 진실을 말하려는 자동적인 경향을 억누르고 새로운 허위 정보를 만들어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지를 시사한다. 마치 고성능 게임을 실행할 때 그래픽 카드가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것과 같은 이치다. [1]
더욱이 뇌는 자신의 ‘가짜 현실’이 들통나지 않도록 끊임없이 주변을 감시해야 한다. 상대방의 미세한 표정 변화, 목소리 톤, 질문의 뉘앙스까지 놓치지 않고 분석하며 자신의 이야기에 허점이 없는지 검토해야 한다. 이는 마치 스파이가 임무를 수행하면서 주변의 모든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는 것과 유사하며, 뇌의 주의집중력과 경계 수준을 극도로 끌어올린다.
네덜란드 틸뷔르흐대학교의 사회심리학 연구팀은 인지 조작 주사위 실험을 통해 인지적 부담이 높아질수록 사람들이 거짓말하는 것이 더어려워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이는 거짓말 자체가 뇌의 인지 자원을 얼마나 심각하게 고갈시키는지를 보여주는 명확한 증거다. 거짓말은 뇌가 상상 이상으로 격렬한 인지적 전투를 치렀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제력을 발휘하는 행위 자체가 뇌의 특정 영역을 과활성화함으로써 마치 잠을 자지 못한 것처럼 뇌 활동을 변화시킨다는 연구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진실이라는 편안한 길을 놔두고, 거짓이라는 험난한 가시밭길을 헤쳐 나가느라 뇌는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이다. [3]
거짓말이 더 큰 거짓말을 낳는 신경학적 메커니즘
만약 당신이 작은 거짓말을 자주 한다면 이야기는 더욱 섬뜩해진다. 거짓말을 했을 때 느끼는 찜찜함, 죄책감, 왠지 모를 불편함 같은 것들은 뇌속 ‘양심 스위치’인 편도체가 울리는 경고음이다. 편도체는 공포나 불쾌한 감정을 처리하는 역할을 한다. 거짓말을 했을 때의 불편함은 뇌가 당신에게 보내는 일종의 ‘정서적 경고’인 셈이다.
《네이처 뉴로사이언스》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거짓말을 반복할수록 이편도체의 반응이 점차 약해진다고 한다. 마치 낡은 스위치가 닳아 작동을 멈추듯, 거짓말에 대해 정서적으로 둔감해지는 것이다. 이 연구에서 피실험자들의 뇌를 fMRI로 관찰한 결과, 금전적 이득을 위해 거짓말을 할 때 처음에는 편도체 활동이 활발하지만, 거짓말을 반복할수록 그 활동이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4] 이를 ‘거짓말의 미끄러운 경사면(slippery slope of dishonesty)’이라고 한다.
작은 거짓말에 대한 불편함이 줄어들면, 점차 더 크고 대담한 거짓말을 주저하지 않게 된다. 편도체의 활동 감소는 곧 죄책감이나 부정적인 감정이 줄어들면서 거짓말을 더욱 쉽게 할 수 있게 되는 신경학적 변화를 의미한다. 뇌 속의 ‘양심 스위치’가 고장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현상은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는 악순환의 신경학적 메커니즘을 설명한다.
사소한 거짓말의 씨앗이 뇌를 ‘거짓의 숲’으로 뒤덮을 수도
우리는 종종 불편한 상황을 모면하거나 순간적인 이득을 얻기 위해 아주 사소한 거짓말을 한다. 이 같은 행위는 마치 작은 조약돌 하나를 길가에 놓듯 그 영향이 미미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뇌과학과 심리학은 이러한 안일한 생각을 단호히 배격한다. 작은 거짓말은 뇌 속에 일종의 ‘거짓말 회로’를 활성화하는 씨앗과 같다.
처음 거짓말을 했을 때 뇌의 ‘양심 스위치’인 편도체는 불편함과 죄책감이라는 신호를 보내지만, 거짓말이 반복될수록 편도체의 반응이 점차 무뎌진다. 이는 거짓말에 대한 심리적 저항선이 낮아짐을 의미하며, 더 큰 거짓말을 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줄인다.
더욱이 작은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낳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하기 쉽다. 하나의 거짓말을 감추기 위해, 우리는 불가피하게 더 많은 거짓말을 만들어내야 한다. 이는 마치 눈덩이를 굴리듯, 처음에는 작았던 거짓말이 시간이 지날수록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뇌는 이러한 거짓말들을 일관성 있게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작동하며, 이로 인한 인지적 피로감을 심화시키게 된다.
부정직한 행위에 익숙해진 뇌는 점차 더 큰 부정직한 행위에 대해서도 덜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약물에 내성이 생기는 원리와 유사하다. 무심코 던진 작은 거짓말 한 조각은 뇌라는 정원에 뿌려진 씨앗과 같다. 구석에 떨어진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자라나 뇌를 거대한 거짓의 숲으로 뒤덮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사소한 거짓말이라 할지라도 그위험성을 간과해서는 안 되며, 정직함이라는 건강한 습관을 유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거짓말은 텔로미어 길이를 단축시키는 노화 촉진제
거짓말이 우리 뇌에 남기는 흔적은 단순한 정신적 피로감 그 이상이다. 지속적인 거짓말은 우리 몸 전체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끊임없이 진실을 숨기고, 만들어낸 이야기를 기억하며, 발각될까 전전긍긍하는 과정은 우리 몸을 만성 스트레스로 몰아간다.
스트레스 상태에서 우리 몸은 비상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코르티솔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을 분비한다. 코르티솔은 일시적으로 우리 몸에 에너지를 공급하고 위험에 대처하도록 돕지만, 장기간 과도하게 분비되면 여러 부작용을 일으킨다. 만성적인 코르티솔 증가는 우리 몸의 면역체계를 약화시킴으로써 각종 질병에 취약하게 만들고, 혈관을 수축시켜 혈압을 상승시킨다. 소화불량, 수면장애, 불안, 우울 등 다양한 신체적·정신적 건강 문제를 일으키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거짓말 같은 심리적 스트레스가 우리 몸의 세포 노화를 촉진한다는 최근의 연구도 있다. 우리 몸의 세포 속 DNA에 존재하는 ‘수명 시계’ 텔로미어의 길이가 거짓말과 같은 심리적 스트레스에 의해 단축된다는 것이다. [5,6,7,8] 이만하면 거짓말은 마음의 문제를 넘어 우리 뇌와 몸 전체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는 ‘건강의 적’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속이는 행위를 일삼는 것은 장기적으로 자신의 건강은 물론 삶 자체를 망가뜨린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진실을 말할 때 뇌의 안정성과 효율이 올라간다.
진실을 말할 때의 뇌는 거짓말을 할 때와 확연히 다르게 작동한다. 전전두엽, 대상피질, 편도체를 비롯한 여러 뇌 영역이 훨씬 더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상태를 유지한다. 특히 진실을 말할 때의 뇌파는 편안하고 안정적인 인지 활동을 나타내는 알파파(8-12Hz) 영역에 머무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뇌가 과도한 에너지 낭비 없이 최적의 성능을 발휘하는 상태이다.
우리 뇌는 애초부터 진실을 말하고 양심을 따를 때 가장 편안하고 효율적으로 작동하도록 설계된 것은 아닐까? 아니면 개인의 삶과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그렇게 진화해 왔거나. 지금 당신의 뇌는 어떤 모드로 작동하고 있는가?
글. 조용환
국가공인 브레인트레이너. 재미있는 뇌 이야기와 마음건강 트레이닝을 소개하는 유튜브 채널 ‘조와여의 뇌 마음건강’을 운영하고 있다.
참고자료
[1] Ofen N, Whitfield-Gabrieli S, et al. (2017), “Neural correlates of deception: lying about past events and personal beliefs”, Soc Cogn Affect Neurosci. 2017 Jan 1;12(1) :pp.116-127.
[2] Anna E. van’t Veer, Marielle Stel, Ilja van Beest (2014), “Limited capacity to lie: Cognitive load interferes with being dishones”, Judgment and Decision Making. 2014;9(3): pp.199-206.
[3] E. Ordali,P. Marcos-Prieto,G. et al. (2024), “Prolonged exertion of self-control causes increased sleep-like frontal brain activity and changes in aggressivity and punishment”, Proc. Natl. Acad. Sci. U.S.A. 121 (47) e2404213121.
[4] Garrett N, Lazzaro SC, Ariely D, et al. (2016), “The brain adapts to dishonesty”, Nat Neurosci 19, pp.1727–1732.
[5] E.S. Epel, E.H. Blackburn, et al. (2004) “Accelerated telomere shortening in response to life stress”, Proc. Natl. Acad. Sci. U.S.A. 101 (49) pp.17312-17315.
[6] Shalev, I., et al., (2010), “Psychological stress in childhood is associated with shorter telomere length in young adults”,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108(33), pp.13577-13581.
[7] Epel, E. S, Jue Lin et al. (2013), “The effect of chronic stress on telomere length in healthy adults”, Psychoneuroendocrinology, Volume 38, Issue 11, pp.2032-2039.
[8] Kelly E. Rentscher, Judith E. Carroll, Colter Mitchell (2020), “Psychosocial stressors and telomere length: A current review of the science”, Annual review of public health, 42, pp.245-2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