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경의 미술치료 이야기 5편] 트라우마 기억과 미술치료

어수경의 미술치료 이야기

어린 시절 어디선가 보았던 꽃을 보면 어디였을까? 누구와 함께였을까? 작은 기억이라도 꺼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떠오르는 것은 없고 아련함 정겨움만이 전해져 가는 길을 멈추고 바라보는 경험을 한다.  

마음을 어루만지는 그 따뜻함의 기억의 형상은 없지만 느낌만 남는 것이 신비롭다. ‘존재하지 않는 기억과 기억되는 정서’, ‘기억의 실체와 살아있는 강렬한 감정’의 관계를 트리우마 미술치료로 풀어본다.


# 트라우마

트라우마(trauma)는 '상처'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트라우마트(traumat)에서 유래된 말로, 일반적인 의학용어로는 ‘외상(外傷)'을 뜻한다. 

외상은 내부 또는 외부에서 오는 강한 자극으로 인해 정신적 매커니즘이 붕괴, 고장을 일으키는 현상을 가리키는 용어로 ‘심리적 외상’이라 한다. 심리적 외상은 충격적인 사건의 결과로 발생 되는 심리손상의 유형이며 그 정도는 그것의 강도나 지속 기간 등 개인마다 다르다. 


# 심리적 외상과 기억

Gilroy는 심리적 외상 시 언어가 차단되어 비언어적인 이미지가 기억되고 시각적 재현이 일어난다고 하였다. 그리고 시각적 이미지는 소리, 촉각 등의 감각기억으로 해마에 장기기억 된다는 특징이 있다. 

이때 트라우마의 기억은 조각조각 분리되어 해마에 저장되는데, 이 조각 즉, 그것을 경험할 당시를 연상하게 하는 어떤 것과 마주치면 트라우마 때의 불안, 공포가 다시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이러한 부정적 감정을 담당하는 편도체가 제어 기능을 못해 일방적으로 활성화된다. 따라서 심리적 외상은 시간이 흘러도 몸과 마음속에 남아있게 되므로 외상과 관련된 기억의 조각을 맞추고 정리하여 새로운 이미지로 저장할 필요가 있다. 


# 외상 기억의 옷장을 열다.

사람들은 종종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상황을 자기 방식으로 이해하며, 그에 맞추어 기억이 저장된다고 한다. 같은 상황 사건에 대한 기억이 저마다 다른 것을 보면 알 수 있고 트라우마 사건에 대한 기억 또한 그러하다. 
 

혼자 당직을 서고 있을 때 건물화재로 병원에 입원한 한 환자의 이야기이다. 사고 당시 사무실 탈출 시도 때 자동문이 작동하지 않아 화재로 문이 고장이구나 생각했고, 그 순간 두려움이 컸다고 한다. 

그런데 미술치료 작업을 하면서 고장이 아니라 자동문은 나의 오른손을 인식하는데 왼손으로 자꾸 열려고 시도했던 것을 기억했다. ‘그 당시 연기가 많아서 오른손은 코를 막고 왼손으로 터치를 하며 문을 열려고만 했다. 문이 열리지 않아 죽을 수도 있다는 무서움이 컸는데 문이 고장이 아이였구나, 열렸겠다 생각에 그 상황에 조금은 편안해진다.’


# 외상 기억을 정리한다.

‘구조 후 흡입화상으로 중환자실에서 페 정화 치료를 위해 두 주 누워있는 동안 천장에서 물이 새는 환각을 보았다. 떨어지는 주사약을 착각했나 생각을 했다. 이제 기억이 떠올랐다. 구조되기 전 천정에서 물방울이 이마에 떨어졌고 그 덕분에 정신이 돌아와 눈을 떴다. 그 시원함에 잠시 누워있으면서 물방울을 맞고 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느낌에 집착했구나 이해하게 된다.’ 
 


# 외상 기억을 새롭게 꾸민다. 

몸으로 느끼고 기억되는 것이 있다면, “연기예요. 진짜 깜해요. 눈 떠도 내 손도 보이지 않아요. 작게 만들어서 표현해보니 연기의 크기가 줄어들어서인지 마음이 편하고 또 이렇게 해보니 연기를 생각하면서 시도하는 것이 괜찮은 것 같아요. 연기를 작게 표현하면 될 것 같네요. 이제는 작게는 아주 편하게 표현할 수 있어요. 연기를 제가 다루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어요.” 연기를 웃고 있는 맛있는 사과로 승화시켰다.

외상과 관련된 이미지를 꺼내어 그려보는 과정은 절대적 용기가 필요하다. 환자가 그런 용기를 갖고 바라볼 수 있게 도움을 주는 것이 트라우마 미술치료이다. 그것을 위해 안전하고 안정된 관계, 공간, 상황을 제공한다. 

두려움의 연기를 떠올리고 표현하고 다루는 과정에서 스스로 감각기억을 관리하며 새로운 이미지를 탄생시켜 긍정의 정보를 다시 해마에 입력한다.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힘든 기억을 해결해 가는 과정은 미술치료의 꽃이다.

내가 마주친 예쁜 꽃은 하나의 매개가 되어 어린 시절 감성의 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잊고 지냈지만 사랑받고 보호받던 때, 공감각적 개념의 감각기억 전체를 나의 해마는 담고 있었다. 그 기억에 소중함, 그리움을 더한다.

글. 어수경 

임상미술치료학 박사, 미술치료수련전문가로 EO심리상담교육개발원 대표이다. 한국융합예술심리상담학회 상임이사, 학술위원을 맡고 있고, 서울대, 경희대, 차의과학대 출강 중이며, 공동저서로 『컬러플마인드 미술치료워크북』, 『아동상담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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