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t the road, Jack and don't you come back no more no more no more no more~"
초록빛을 자랑하는 키 큰 단풍나무가 줄지어 선 길을 지나가는데 저 멀리서 레이 찰스의 노래 'Hit the road jack'이 흘러나온다. 신나는 노랫소리에 발걸음도 가볍게 음악이 흘러나오는 곳으로 갔더니 오늘의 주인공이 포도밭에 서 있다. 일지명상센터 천화원(이하 천화원)의 부원장이자 이 지역 일대의 '터줏대감'으로 불리는 이진형 씨다.
"와~ 과일들 신나게 잘 자라라고 이렇게 음악도 틀어주시나 봐요."
"아, 그거? 멧돼지 쫓으려고 틀어놓은 건데!"
한바탕 웃음과 함께 그와의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이 씨와 천화원의 인연은 199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 씨는 대구에서 평범하게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때 집사람은 대구에서 단학수련을 했었어요.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니까 무언가 베풀고 싶어 집사람은 참 많은 활동을 했었죠. 마침 단학을 창시한 이승헌 총장(글로벌사이버대)님께서 충북 영동에 '천화원' 터를 잡고 건물을 하나하나 짓고 있었는데 밥해줄 사람이 없었던 거예요. 집사람이 와서 밥하는 봉사를 한동안 했어요. 그 덕에 저도 천화원에 더 자주 오게 되었구요."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아내가 대구 집을 다 정리하자는 이야기를 꺼냈다. 아내는 그에게 일가친척도, 그렇다고 친구도 하나 없는 영동군, 그 안에서도 외진 천화원(심천면)으로 이사를 하자고 한 것이다. 이곳이 얼마나 산골짜기인지 한국전쟁 당시에 이곳 주민들은 전쟁이 난 줄도 몰랐다고 한다.
▲ 이진형 씨(왼쪽)와 부인 남종은 씨. 나란히 앉아 사진찍기를 너무도 어색해 하시기에 두 분이 같이 사진 찍어보신 게 언제냐고 물으니 그저 웃으시기만 한다. 남종은 씨는 지금도 일지명상센터에서 '약선당'을 운영하며 전국에서 명상을 하러 천화원을 찾는 이들에게 유기농 건강식단을 제공하는 '남 실장님'으로 통한다.
그런 곳에 그와 아내는 집도 직장도 다 정리하고 1993년 말, 천화원으로 들어와 다시 살림을 차렸다. 그의 마음을 이곳으로 향하게 한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당시 이승헌 총장님을 만나뵈었었는데, 천화원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 정신을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에 알릴 인재들을 양성하는 곳'이라고 하셨어요. 몸과 마음과 정신을 다스리는 수행을 통해 진짜 삶의 주인이 되는 법을 전하는 곳이죠. 그리고 한마디를 더 하셨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천화원을 맡깁니다. 이곳을 지켜주세요.'라고요."
그때 이 총장으로부터 '지수(地水)'라는 이름을 받았다. 땅 지에 물 수, '천화원의 땅과 물이 되어 사람들과 함께하라'는 뜻이라고 한다. 천화원에서 사람들은 그를 '이진형'이라는 이름보다 '지수 님'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훨씬 많다.
'지수'라는 이름도 받았다. '천화원을 지켜달라'는 사명도 받았다. 그런데 막상 도시 사람이 농촌에 들어와 살기가 쉽지 않다. 농사일이 익숙지 않은 것도 있겠으나, 더 큰 문제는 주민들과 잘 섞이지 못해 '왕따 아닌 왕따'가 되면서 발생한다.
"도시 사람들은 말만 해도 믿어주는 척을 해주지만 시골 사람들은 말만 해서는 누구도 믿어주지 않아요. 몸으로, 행동으로, 진심으로 하지 않으면 신뢰하지 않아요. 시골에 들어와서 농사를 안 지으면 서로 이야깃거리가 없으니 대화도 안 통하죠. 사람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서로 믿어야 해요. 서로 믿으려면 같은 걸 하면 됩니다.
저는 집사람하고 결혼 후에 천화원을 찾았고 여기서 두 딸(쌍둥이, 중1)도 낳았어요. 마을분들에게 말했어요. "나는 여기서 여러분들과 계속 같이 살 거고 나중에 죽어서도 여기 뼈를 묻을 거다"라고요."
그렇게 포도 복숭아 고추 감자 벼 등등 십수 년 째 농사를 지어오고 있다. 포도밭으로 오는 길에 봤던 단풍나무도, 소나무도 모두 그가 기르는 것들이다. 하도 이것저것 손대는 농사가 많으니 마을 어르신들은 '건달농사' 짓는다고 놀리신단다.
천화원으로 들어온 지도 벌써 햇수로 20년째다. 사람으로 치면 이제 성인이 될 나이다. 질풍노도의 10대를 거쳐 이제 진짜 자신의 꿈을 찾아 제 몫을 해야 하는 성인이 된 것이다.
그가 처음 천화원으로 들어올 때와 지금의 천화원은 정말 많이 달라졌다. 변변한 차도도 하나 없었는데 지금은 심천면 마곡리 입구까지는 2차선 도로가 생겼다. 천화원 입구까지 1차선이기는 해도 포장도로도 마련되었다. 이 모든 일이 바로 그의 정성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저한테는 여기 포도밭도, 저기 단풍나무밭도 다 성지(聖地)예요. 우리 민족의 홍익인간 정신을 널리 세상에 펼칠 사람들이 태어나는 곳이니까요. 아무리 터가 좋고 땅이 비옥하더라도, 비전(Vision)을 이뤄내려면 준비가 필요해요. 세상 속에서 때를 기다리는 거죠. 도로를 내려고 애썼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죠."
그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비전'과 '사명'이라는 단어를 많이 썼다. 천화원에 터를 잡은 지 20년, 진짜 성인으로 그가 이곳에서 이루고자 하는 '비전'은 무엇일까.
"영동군 전체를 '신선고을'로 만드는 겁니다. 영동군에는 천화원과 같이 홍익인간 이화세계를 만들고자 세워진 다양한 형태의 회사, 종교, 조합 등이 자리 잡고 있어요. 심천면에는 천화원, 양산면에는 민족종교 선불교, 학산면과 용산면에는 이를 홍익 식생활을 전하는 양조장과 농장이 있죠. 각자 따로따로가 아니라 한마음으로 영동을 바꾸고 싶습니다. 홍익정신을 가진 홍익군수도 나오면 좋겠구요.
하늘에서 주신 비전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는 땅에 두 발을 딛고 사는 사람으로서 하늘과 땅 사이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계속해서 이 비전을 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구요."
글·사진. 강천금 sierra_leon@liv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