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디자이너 강우현_ 1953년 10월 24일 충북 단양 출생. 홍익대학교 미술대학과 산업미술대학원 졸업. 일러스트레이터, 그래픽 디자이너, 그림동화작가, 캐릭터 디자이너, 서예가, 경원대학교 시작디자인과 겸임교수 및 한국종합예술학교 강사. ‘좋은 아버지가 되려는 사람들의 모임’ 창립, 종이재생운동가, (주)문화환경(R&C) 대표, 한국출판미술협회 회장, 아시아문화교류연구소 소장, (주)남이섬 대표이사
위의 직함들에 대한 강우현의 말, 말, 말.
“나는 이름이 없다. 사람들은 점이라고 부른다. 점인지 콩인지 나는 이름에 관심이 없다. 나는 나일 뿐이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든지 변할 수 있어 좋다.”
뇌: (<뇌> 잡지를 보이니)
강우현(이하 강): 하하! 월간 대가리에서 돌대가리를 취재하러 왔군.
(그가 (주)남이섬 대표이사가 된 경위는 이렇다. 2001년 9월, 평소 작업 구상 차 자주 찾던 남이섬에 장기투숙을 하고 있었다. 숙소 밖에 땔감으로 잘라 놓은 통나무가 있었는데 심심풀이 겸, 남이섬에 유배됐던 남이 장군을 기념해 통나무로 장승을 만들어 세웠다. 그것을 지켜본 남이섬 땅주인 민웅기 씨가 “차라리 당신이 사장을 하며 섬을 가꾸어 달라”고 제안한 것. 그래서 졸지에 사장이 됐다.)
뇌: 섬이 많이 변했다. 남이섬에 들어서니 왠지 마음이 유순해지는 느낌이 들더라.
강: 70여 명되는 섬 직원들은 사장이 디자이너라고 하니 남이섬 문 입구부터 새로 디자인 될 줄 알고 잔뜩 기대했던 모양이다. 남이섬의 가장 큰 콤플렉스가 뭐였는지 아나?
뇌: 글쎄, 남이섬의 콤플렉스?
강: 낡은 건물이었다. 직원들이 다 걷어내고 새로 짓자고 했지만 나는 반대했다. 나는 ‘낡음을 팔자’고 생각했다. 먼저 전신주를 모두 없애고 전선을 땅에 묻었다. 빽빽한 숲을 솎아내기 위해 나무를 옮겨 심자 자연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뇌: 낡은 편안함, 낡은 것이 일으키는 추억을 사람들은 좋아하니까. 그래서 방문객이 늘었나?
강: 연평균 30만 명에서 지난 해 67만 명으로 늘어났다. 드라마 겨울연가의 촬영 장소로 유명해지면서 외국 관광객들도 많이 찾아온다.
뇌: 섬 곳곳에 세심한 손길이 느껴지더라.
강: 섬을 가꾸는 방식은 즉흥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벽을 쌓다가 벽돌이 모자라면 쌓인 빈 병을 벽돌 사이에 끼워넣어가며 벽을 완성한다. 또 공사로 보도블록을 폐기처분해야 할 때 버리는 대신 그것으로 담을 올려 새 공간을 만드는 식이다.
뇌: 여러 동물을 방목하던데. 타조와 사슴, 토끼들이 사람과 어울려 있는 모습이 자연스럽고 좋더라.
강: 얼마 전까지는 돼지도 있었다. 이 녀석들이 종횡무진 돌진해서 손님들을 놀래키는 데다 얼마 전에 한 녀석이 뚜껑 열린 주전자에 머리가 껴 119가 출동하는 사고가 생긴 이후로 돼지는 다른 곳으로 보냈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도 인격이 있다고 믿는다. 자연은 내 아이디어의 보물 창고이다. 어떤 사람보다도 어떤 지식보다도 현답을 제시하니까.
뇌: 그럼 도시에서는 아이디어를 얻기 힘들까?
강: 꼭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생활에 쫓겨 나무 한 그루 못보고 지나치다 어느 주말 모처럼 교외에 간다한들 그때 마주치는 자연은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자연이 아니다. 오랫동안 접하지 못했던 풍경일 뿐. 도심에 있더라도 하루에 한 번이라도 가로수 줄기를 손바닥으로 만져보고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디어는 머리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열려 있는 오감과 오장육부에서 동시에 나오기 때문이다. 같은 걸 보더라도 나의 오감이 전해주는 빛과 소리의 느낌은 나만의 것이다.
이유 있는 꼴찌
뇌: 학교 다닐 때 공부는 잘했나?
강: 꼴찌에 가까웠다. 고등학교 때 진짜 무서운 선생님이 계셨는데 감히 그 선생님 시간에 눈두덩에 검은 동자를 그려 넣고는 잠을 잤다. 선생님이 하도 어처구니가 없으셨던지 혼내지도 않더라. 잠자고도 유일하게 야단맞지 않은 학생이었다.
뇌: 알만하다.
강: 주의가 너무 산만하고 장난이 심했다. 책 보면서 장난 치고, 밥 먹으면서 책 보고, 학교 가기 싫으면 결석하고 그랬다. 학교 가는 것보다 개울에 가서 물고기 잡고 뒷동산에 올라 숨바꼭질 하는 것이 더 재미났다.
뇌: 부모님께 많이 혼났겠다.
강: 혼 많이 났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내 선택을 늘 믿어주셨다. 어머니는 내 아이디어의 원천인데, 총명해지라고 날 낳자마자 1백 일 동안 첫 닭이 울 때 새벽 별을 보여주셨다고 한다. 새벽 별의 ‘총총함’과 ‘총명함’을 연관시키신 거다. 초등학교도 채 마치지 못한 어머니셨지만 사물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과 비유법과 상상력은 모두 동화작가 같았다.
뇌: 어머님과 잘 통하는 면이 있었겠다. 엉뚱한 면을 이해할 수 있는 분이셨을 것 같다.
강: 그렇다. 그 점이 정말 감사하다. 아버지도 그림 그리는 날 기특하게 여기셨다. 내 고향 단양에는 돌이 무척 많다. 여름 친구들과 개울에서 멱을 감을 때마다 물 속에 있는 기묘한 돌들을 하나씩 건져와 마당 한 구석에 쌓아두곤 했다. 시간이 흐르니 내가 모아 둔 돌들로 수석 전시장처럼 변했다. 나는 그 돌멩이들마다 그림을 그리고 이름을 써 넣었다. 그리고는 거기에 ‘단양팔경’이라 이름 붙였다. 아버지는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고, 식구들과 그 앞에서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뇌: 늘 꼴찌였다면서 어떻게 대학에는 들어 갈 수 있었나?
강: 내가 진학하려던 홍익대 미대는 당시 국어, 영어, 일반사회, 국사 그리고 실기시험으로 학생을 뽑았다. 필기시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단과반 학원에 등록해야 했다. 낮에는 그림을 그리고 새벽과 저녁에는 학원에서 공부란 걸 했는데, 마치 딴 나라 공부 같더라. 다행히 합격했다.
안 된다고 말하지 말라
뇌: ‘Never Say Impossible!’을 슬로건으로 정했던데 디자이너의 슬로건 같지 않다. 내 고정관념인가?
강: 그 슬로건은 안 되는 것을 무조건 되게 하라는 군대식 발상이 아니다. 어떤 문제에 봉착하더라도 해결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자세로 임하자는 마음이다. 내게 노마 콩쿠르 대상을 안겨 준 동화 <사막의 공룡> 삽화를 그릴 당시 시력이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세밀하게 핀트가 맞는 그림을 그릴 수 없었다. 이때 물감 번짐 효과를 활용해 독특한 스타일로 그림을 그렸고, 칸에서는 이런 동양적인 느낌의 삽화를 보고 나를 칸 영화제 공식 포스터 작가로 지목했다. 어떠한 장애 요인도 창조적인 사고를 통해 플러스 요인으로 만들 수 있다는 마음 자세가 그 슬로건에 담겨 있다.
뇌: 노마 그림책 일러스트레이션 원화 콩쿠르(일본) 그랑프리, BIB 국제그림책 원화 비엔날레(체코) 금패상, 한국디자이너 대상, 한국어린이도서상, 어린이문화대상 등 대략 간추린 수상 경력만도 화려무쌍하다. 한국에서보다 국제적으로 더 인정받고 있는 것 같은데?
강: 누가 인정하고 안 하고는 중요하지 않다. 그냥 할 뿐이다. 그러나 창의적인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우리나라 교육 풍토는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난 좋은 아이디어를 내려면 뇌에 형성된 지식체계를 던져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현대’를 살아내는 우리는 소위 패턴, 매뉴얼이란 것에 갇혀 자기가 해온 방식을 버리지 못한다.
뇌: 엉뚱하다는 평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강: 당연하다고 받아들인다. 왜 그렇게 산만하냐고 충고하는 사람도 있다. 그것도 사실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한 곳에 오래 머물러 있지를 못했다. 당장 끝내야 할 일 때문에 책상 앞에 앉아 있을 때조차 내 관심은 종횡무진 뻗쳐가기 일쑤다. 키보드를 두드리다 메모지를 꺼내 긁적거리기도 하고, 한 문장을 연결하는 잠깐 사이 아주 깊은 잠에 빠져 들기도 한다. 눈을 뜨면 방금 전의 꿈을 메모하고.
.jpg) (1) 휘파람으로 타조를 부른다 (2) 60-70년대 재현박물관 (3) 쓰레기통을 아름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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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뇌가 쉼 없이 활발히 움직이는 것 같다.
강: 글쎄, 어쨌든 산만할 정도의 의식 가로지르기, 여러 가지 걸쳐 하기 등이 내 작은 창의력을 유지시키는 것이 사실이다. 유리 탁자 위에서 감자 싹을 틔워 기네스북에 오른 일, 생면부지의 외국 작가와 처음 만나 받은 원고로 그린 그림이 노마콩쿠르에서 그랑프리로 선정된 일, 그 외에 수교도 안 된 중국 땅에 단신으로 초청을 받고 다녀왔고 프랑스 칸영화제 포스터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붓글씨에 자신이 없어 왼손으로 뒤집어 썼는데 그것으로 중국 서예의 대가로부터 명필이라는 소리를 들었고, 동화 그림에 움직임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다 실제 CD롬 애니메이션을 만들기도 했다.
뇌: 운이 따라 준 면도 있지 않을까?
강: 그 많은 일들이 나 자신은 가만히 있는데 저절로 굴러 들어왔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뒤집어 보고, 까보고, 문질러 보는 엉뚱한 삶이 뼈 속 깊이 체화되었기 때문에 운도 따르는 거라고 생각한다.
뇌: 아까도 잠깐 잠에 대해 언급했는데, ‘초잠’을 즐겨 잔다고?
강: 초잠도 내가 개발한 잠이다. 24시간이 부족해 불면증에 걸렸으면 하는 마음이 들 때였다. 몇 초, 아니 키보드의 자판 하나를 두드리는 짧은 시간을 이용해서 깊은 잠을 자는 법을 체험적으로 개발한 것이다. 토막잠보다 더 깊이 잠들 수 있다.
뇌: 나도 가능할까?
강: 내가 남들과 신체적 조건이 다르다는 생각은 않는데 누구나 가능하지 않을까?
뇌: ‘좋은 아버지가 되려는 사람들의 모임’을 만들기도 했다. 아이들 교육 방식도 좀 엉뚱하지 않을까 싶은데.
강: 부모는 마음의 지혜를 디자인해주는 디자이너이다. 아이에게 무언가를 가르쳐 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 창조적인 자극만 주면 된다. 이런 건 어떨까? 식사할 때 깍두기를 아이의 나이 수만큼 세어가며 산수놀이를 한다든지, 커다란 대접에 물을 붓고 밥으로 섬을 만들어 서로 먹여 준다든지. 놀면서 재미있어 하는 사이 아이는 맛있게 밥을 먹고 부모와의 사랑도 깊어질 것이다.
뇌: 혹시 ‘좋은 남편이 되려는 사람들의 모임’은 만들 생각이 없는지?
강: 하하. 그게 어렵더라. 내리사랑은 주면 되는데 수평적인 사랑은 더 어려운 것 같다.
판문점을 동화 나라로
뇌: 남이섬뿐 아니라 강원도 춘천을 중심으로 자연생태 문화 관광단지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다고?
강:‘춘천 리모밸리 개발구상 프로젝트’이다. 리모밸리(Rimovally)는 ‘River+Moun-tain+Vally’를 합쳐서 줄인말이다. 강과 산, 계곡을 자연스럽게 살리는 자연생태 문화 관광단지를 만들자는 구상이다. 춘천 리모밸리의 대주제는 동화세계 구현, 테마별로 리듬과 노래가 있는 ‘노래의 섬’, 온돌, 흙집, 방갈로, 초가집 체험을 통해 생명의 근원인 어머니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어머니 나라’, 젊은이들의 끼가 마음껏 발산되고 호연지기를 기르는 ‘우리나라’등으로 구성된다. ‘우리나라’ 테마에서는 남이섬에서 호수를 건너 계곡으로 이동할 때 배가 아닌 밧줄을 타고 건너가게 하는 이벤트를 생각하고 있다.
뇌: 마치 타잔처럼. 하하. 남이섬을 디자인 하듯 이제는 춘천시 전체가 선생님 손에 맡겨지길 바란다. 앞으로 무엇을 디자인하고 싶은가?
강: 판문점에 어린이 놀이동산을 만들고 싶다. 미국의 디즈니랜드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전 세계 어린이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디즈니랜드는 그러나 철저하게 상업적인 공간이다. 거기에는 자본에 힘입은 환상의 세계만 있을 뿐 함께 만들어 나가는 미래는 없다. 내가 만들고 싶은 나라는 우리 모두가 함께 꿈꾸며 가꾸는 동화 나라이다. 판문점을 그런 동화나라로 만들고 싶다.
뇌: 그 꿈이 꼭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강: 그것을 실현하는 데 얼마나 걸릴지는 모를 일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꿈이기에 오늘 그 씨앗을 뿌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현실은 모두 누군가 뿌린 꿈의 씨앗들이 성장해 이루어진 것 아닌가. 꿈을 꾸지 않으면 현실도 없다.
글 | 곽문주 joojoo@powerbrain.co.kr, 사진 | 김경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