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폭력성은 본능인가, 학습된 것인가

인간의 폭력성은 본능인가, 학습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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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인 33호
2012년 05월 22일 (화)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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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학교 폭력 문제 등 청소년 범죄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인간의 뇌는 날 때부터 폭력적인 것일까, 아니면 사회화 과정에서 관찰이나 모방을 통해 학습된 것일까?

인간의 폭력성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최근 인간행동학과 뇌 연구, 유전자 연구를 토대로 인간의 폭력 성향을 다방면에서 추적하고 있다. 동물행동학자들은 동물과 인간은 모두 공격 본능을 가지고 있고 그러한 본능을 분출할 출구를 항상 찾고 있다고 주장한다. 뇌과학자들 역시 폭력의 뿌리를 뇌에서 찾는 연구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폭력성에 대한 생물학적 근거들

인간의 폭력성에 관여하는 생물학적 요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설득력을 얻고 있는  몇 가지를 소개한다. 우선 호르몬의 영향이다. 특히 남성 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은 공격성과 연관이 있다. 혈중 남성 호르몬 수치가 높은 사람은 공격적인 행동이 우세하고, 그중 일부는 난폭하고 반사회적인 양상을 보인다.

그렇다고 공격성 자체를 나쁘게 볼 일은 아니다. 공격성은 우세한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자연법칙 속에서 자연스럽게 진화한 성향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성향을 절제하지 못했을 때 문제가 된다. 

폭력에 관여하는 유전자도 따로 있을까? 1993년 발표된 네덜란드의 한 가족은 폭력의 유전설을 뒷받침할 만한 강력한 사례이다. 그 집안의 남자들은 5대에 걸쳐 폭력과 강간, 방화 등의 범죄를 일삼아왔는데, 연구 결과 공통적으로 모노아민 산화효소(monoamine oxidase, MAO-A)를 코딩하는 유전자에 이상이 있었다.

하지만 다른 폭력적인 성향의 사람들도 이 유전자에 이상이 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리고 MAO-A가 공격성이나 범죄에 관련한 유일한 유전자인 것도 아니다. 생쥐 실험에서는 공격성과 관계된 유전자가 15개나 밝혀졌다.


뇌의 폭력성에 관여하는 요인으로 신경전달물질도 빼놓을 수 없다. 시카고대학 정신과 의사 에밀리 코카로는 공격적인 성향을 나타내는 동물이나 사람은 세로토닌 신경전달물질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동물 실험 결과 세로토닌을 증가시키는 약을 투여하면 공격 행동이 줄어들었다.

전두엽 기능 이상이 공격성을 부른다

인간의 행동을 통제하는 부위인 전두엽의 기능이 떨어지면 공격적인 행동을 보인다는 견해도 있다. 조지타운 대학의 블레이크 교수 팀이 살인범 31명을 조사한 결과 무려 65%가 전두엽 기능 이상 증세를 보였다.

흥미롭게도 이들 중 반 수 이상은 범죄 당시 술을 많이 마셨는데, 알코올은 전두엽의 기능을 억제하는 대표적인 약물이다. 따라서 이들이 범죄 행위를 저지를 때 전두엽 기능에 이상이 있었을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위스콘신대 리처드 데이비드슨 교수도 비슷한 견해를 밝혔다. 그는 정상적인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일으킨 뒤 편도체 반응을 관찰한 결과, 전전두엽 피질에 부정적 감정을 억제하는 기능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따라서 전전두엽 영역에 이상이 생겨 변연계와의 정보 교환이 원활하지 못한 사람은 감정 반응을 조절하지 못해 폭력적인 행동이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 이처럼 전두엽 피질의 결함에서 폭력의 뿌리를 찾는 것을 ‘전뇌 가설(frontal brain hyporthesis)’이라고 한다.

폭력 성향을 조절하지 못하는 청소년의 뇌

폭력성에 대한 뇌과학적 접근은 청소년 시절에 폭력적인 성향이 두드러진 데 대한 유용한 단서를 준다.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김경진 교수는 “청소년의 행동을 이해하려면 청소년의 뇌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고 밝힌 적이 있다.

미국립정신건강연구소(NIMH)에서 1991년부터 실시한 연구는 청소년의 뇌와 성인 뇌가 다르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이 연구는 3세부터 25세까지 2천여 명을 대상으로 2년마다 뇌를 MRI 촬영해 그 변화를 분석했는데, 그 결과 아이가 자라 12세 정도가 되면 뇌의 부피는 거의 완성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청소년기 뇌의 부피가 성인과 비슷하다고 해서 두뇌 능력까지 비슷한 것은 아니다. 뇌의 발달 속도는 부위에 따라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간의 뇌는 감정을 다루는 부분이 이성을 다루는 부분보다 먼저 발달한다. 또 시각, 청각, 후각 등 감각 정보를 처리하는 영역은 열 살 전후에 회백질이 얇아지면서 성숙하지만, 판단이나 의사결정 같은 고차원적인 사고를 담당하는 부위는 10대 후반에 가서야 회백질이 얇아지면서 차츰 성숙한다. 

따라서 청소년의 뇌는 감각 정보를 받아들여 처리하는 능력은 성인 뇌와 별 차이가 없지만, 주의를 집중하고 종합적인 판단을 내리는 능력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청소년기는 몸은 어른만큼 커졌어도,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감정을 컨트롤하는 능력은 여전히 미숙한 시기인 셈이다.

게다가 ‘폭력적인 뇌’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폭력의 뿌리가 개인을 둘러싼 사회적 위험 요소 즉 어린 시절의 학대, 부모의 불화나 이혼, 가난 등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실제로 많은 범죄자들이 어린 시절 물리적, 성적 폭력에 시달린 경험이 있다.

따라서 인간의 폭력 성향은 타고난 본능이라기보다는 유전적 경향, 성장 환경, 뇌 손상 등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형성된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미국의 유전학자 폴 빌링스는 “우리는 우리 사회에서 폭력을 야기하는 원인들이 무엇인지 안다. 빈곤, 차별, 교육체계의 실패 등이 그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폭력을 야기하는 것은 유전자가 아니다. 그것은 바로 사회체계”라고 말했다.
학교 폭력 문제, 더 나아가 인간의 폭력성도 단순히 현상만 가지고 판단할 게 아니라 인간의 뇌에 대한 보다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글·전채연 ccyy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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