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법칙의 패러독스

Bad to Good, Good to Great

브레인 28호
2011년 07월 20일 (수)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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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일관되게 세계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살기 퍽퍽하다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환경 탓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법. 행복은 저절로 굴러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쟁취하는 것이다.

왜 한국인은 행복하지 못할까?
한국인이 행복하지 못하다는 것은 다양한 조사에서 확인되고 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실시한 행복지수 조사에서 한국은 일관되게 낮은 순위를 기록하고 있다. 선진국이 순위가 앞선 조사든 후진국이 앞선 조사든 마찬가지다.

영국 레스터대학교 심리학과 에이드리언 화이트 교수가 2006년에 작성한 세계행복지도에서 우리나라의 행복지수는 전 세계 국가 중 102위를 기록했다. 국제연합이 조사한 행복 순위에서도 한국은 100위권 밖이었다. 심지어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조사한 ‘2011 한국 어린이 청소년 행복지수 국제 비교’ 조사결과에서도 우리나라 어린이와 청소년이 느끼는 주관적인 행복지수는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낮았다.

사실 우리 사회의 문제는 행복지수만이 아니다.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의 자살률, 유럽과 일본을 넘어선 이혼율,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 1인당 최고 노동시간 등 사회가 얼마나 건강한지를 측정할 수 있는 여러 지표에서 이미 한계치를 넘어서고 있다.

돈이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한국인이 행복하지 못한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경제적인 이유일까? 그럴 수 있다. 돈은 건강과 함께 행복지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 중 하나니까.

하버드대학교 심리학과 길버트 교수는 연 수입 9만 달러까지는 수입이 높아질수록 행복감도 덩달아 높아지는 게 사실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연 수입 5만 달러 이상인 사람은 2만 달러 이하인 사람보다 2배 정도 더 행복감을 느낀다고 한다. 하지만 수입이 그 이상이 되면 행복을 느끼는 데 별다른 차이가 없다.

조사결과, 연 수입 20만 달러 이상인 사람과 10만 달러 이상인 사람이 느끼는 행복감은 거의 비슷했다. 이는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고 나면 더 많은 돈이 더 많은 행복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행복경제학을 연구하는 이정전 교수의 의견도 비슷하다. 그는 1인당 GDP가 2만 달러를 넘으면 소득은 행복에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한국은 이미 그 언저리에 와 있으므로 돈이 행복의 절대 요소이던 시대는 지났다. 실제로 행복하기 위해 필요한 돈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지 않다.

하이퍼포머가 더 불행하다
돈이 전부가 아니라면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요인은 무엇일까? 성공? 성공을 어떻게 정의하느냐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성공했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행복이 따라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성공은 현대인들에게 또 다른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성공하면 주변사람들의 기대치가 높아지는데, 이것이 스트레스가 되기 때문이다. 전교 1등을 하던 아이가 성적이 몇 등 떨어지고 나서 비관 자살을 한다든지, 금메달리스트가 기대하는 성적을 내지 못하고 슬럼프에 빠지는 것이 대표적이다.

직장에서도 일을 못하는 사람보다 일을 잘하는 사람이 더 스트레스를 받는다. 남보다 일을 더 잘하고 프로젝트 성공 경험이 많은 하이퍼포머high performer들은 높아진 기대치를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훨씬 더 큰 부담과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래서일까. 성공한 사람들 중에도 평생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미국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이나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 미국의 육군 장군 조지 패튼, 천재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과 스티븐 호킹, 진화론을 주장한 찰스 다윈, 미국의 은행가 존 피어폰트 모건은 모두 자기 분야에서 최정상에 오른 사람들이지만 평생 우울증으로 고통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성공이 곧 행복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단적인 예다.

비슷한 증상으로 ‘성공 우울증’이 있다. 목표했던 것을 이루고 나서 방향성을 상실해 우울증을 겪는 현상이다. 얼마 전 모스크바에서 열린 2011 세계피겨선수권대회에 참가한 김연아 선수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선수생활의 가장 큰 목표로 삼았던 벤쿠버 올림픽 금메달을 따고 나서 더 이상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시기가 있었다”고 밝히면서 “은퇴에 대한 고민도 있었지만 다시 빙판으로 돌아오게 된 것은 팬들 덕분이다”라고 고백했다.

사람만이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
이처럼 21세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인 안정이나 성공은 더 이상 행복의 바로미터가 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심리학자들은 행복해지는 데 가장 중요한 요건으로 무엇을 꼽을까? 심리학자 마이어스와 웨인 다이어는 친밀한 인간관계를 첫 번째로 꼽는다.

사회심리학자 이철우 박사도 “행복은 전적으로 인간관계에 달렸다”고 강조한다. 이 박사는 “사람들은 성공이나 돈이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지만 성공이나 돈도 제대로 된 인간관계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행복의 기준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성인 남녀 814명을 70여 년간 추적 조사한 ‘하버드대학교 성인 발달 연구’도 개인의 건강과 행복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인간관계라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이 연구의 총책임자인 조지 베일런트 교수는 “47세까지 형성된 인간관계가 이후의 건강하고 행복한 삶의 지표가 된다”고 밝히면서 그 자신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라는 사실을 연구를 진행하면서 배웠다고 밝혔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경제적으로 풍족해지거나 사회적인 성공을 거두기만 하면 인간관계가 저절로 좋아질 것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돈이 많거나 성공한 사람들 중에 행복하지 못한 사람들이 눈에 띄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들은 인간관계를 도외시한 채 자신의 목표를 추구하는 데만 집중한다. 그러나 인간은 어디까지나 사회적인 동물이어서 관계가 나빠지면 다른 요인이 아무리 만족스러워도 결코 지속적인 행복을 누릴 수 없다.


실제로 행복감은 일상에서 느껴지는 만족감, 돈독한 인간관계, 건강 등에서 비롯되는데, 이런 것들은 얼마나 소유했느냐보다는 다른 사람들과 얼마나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인간은 관계에서 자신이 사랑받고, 신뢰받고, 지지받고 있다고 느끼지 못하면 행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간관계가 행복의 중요한 요건이라는 데 동의하면서도 막상 건강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로 여겨진다. 이철우 박사는 사람들이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막연히 행복을 바라기만 할 뿐 적극적으로 행복해지려는 훈련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행복은 저절로 굴러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훈련을 통해 얻어야 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막연한 긍정주의를
경계하라
행복을 훈련의 차원에서 접근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긍정 심리학이다. 긍정 심리학에서는 ‘모든 것은 다 잘될 것이고, 나는 곧 행복해질 것’이라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강조한다. 행복해지려면 무조건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봐야 하고,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은 절대 인생의 승자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긍정이 항상 효력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마틴이 1922년 1,216명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에 의하면 낙천적인 아이들이 반드시 행복한 인생을 산 것은 아니었다.

추적조사 결과 긍정적인 아이들이 더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라는 기대를 뒤집고 가장 행복했던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일찍 사망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낙천적이고 쾌활한 아이들일수록 술과 담배를 즐기고 위험한 행동도 기꺼이 감수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사람일수록 자신이 처한 현실의 위험성을 대수롭지 않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별다른 근거 없이 자신이 하는 일이 무턱대고 잘될 것이라고 과신한다. 무한 긍정은 대책 없는 낙관주의나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무사안일주의로 흐르기 쉽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보다는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을 다소 비관적으로 바라보고 위험에 대비해 적절한 준비와 조치를 취하는 것이 더 낫다. 그러한 자세가 결국엔 더 긍정적이고 행복한 현실을 낳는다.

현재 자신이 처한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하는 태도의 대표적인 예가 스톡데일 패러독스다. 스톡데일은 베트남전쟁에서 포로로 잡혀 무려 8년 동안 감옥생활을 하다가 기적적으로 석방된 미국 해군 장교다. 석방되고 나서 그는 다른 포로들이 자기처럼 오래 견딜 수 없었던 이유는 막연한 낙관주의 때문이었다고 단언했다.

다른 포로들은 상황을 직시하는 대신 미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기회만 있으면 석방될 것이라는 희망적인 결과에 매달렸다. 그 과정이 몇 년째 계속되자 결국 그들은 희망을 포기하고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이다.

스톡데일은 가혹한 현실 속에서 무작정 긍정할 것이 아니라 우선은 그것을 제대로 직시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긍정적인 태도가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일방적인 배려는 병이 된다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행복한 인간관계를 유지하지 못하는 이유는 지나친 배려 때문인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먼저 배려하면 모든 게 잘 풀릴 거라고 막연하게 낙관한다. 내 쪽에서 먼저 인내하면 저쪽에서도 달라질 거라고 기대한다. 참고 견디다 보면 좋은 날이 올 거라고 믿는다.

물론 배려에는 관계를 원활하게 하고, 갈등을 미리 방지하는 힘이 있다. 하지만 배려에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배려는 서로 주고받을 때 의미가 있는 것이지 어느 한쪽만 일방적으로 배려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한쪽만 배려하면서 쌓이고 곪은 문제가 터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어차피 터져야 할 문제라면 일찌감치 터뜨리는 것이 낫다. 그것이 관계를 위해서도 본인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따라서 인간관계를 건강하게 지속하려면 현실을 마냥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해석할 것이 아니라 할 말은 하고 넘어가야 한다. 그러려면 반감을 사지 않고 상대방에게 솔직하게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기술을 습득해야 한다. 처음부터 노련하게 잘할 수는 없겠지만, 인간관계에서 할 말을 할 수 있는 훈련이 되면 관계의 많은 부분을 순조롭고 적절하게 해결할 수 있게 된다.

추상적인 행복을 추구하기보다 구체적인 불행을 없애라 
사실 우리가 느끼는 행복은 무엇을 가지고 있느냐보다는 무엇을 가지고 있지 못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어느 여성 소설가는 자기가 갖고 있는 것을 사랑하면 행복하고, 자신이 갖고 있지 못한 것을 사랑하면 불행하다고 했다.

철학자 카를 포퍼는 《추측과 논박》에서 “추상적인 선의 실현을 위해 힘쓰기보다는 구체적인 악의 제거를 위해 힘쓰라”고 했다. 매사에 막연하게 잘될 거라는 낙관으로 일관하기보다는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구체적인 사안들에 관심을 갖고 그 해결책을 고민할 때 비로소 개인과 사회의 행복지수가 회복세로 돌아설 수 있을 것이다.

글·전채연 ccyy74@naver.com  | 일러스트레이션·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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