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기진 가슴 채우는 '폭식', 이제그만

허기진 가슴 채우는 '폭식', 이제그만

스트레스2

뇌2004년1월호
2010년 12월 06일 (월)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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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급성 스트레스나, 외부 자극에 의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인간은 식욕이 줄게 되어 있다. 스트레스에 의해 교감 신경계가 흥분하면 에피네피린 등 호르몬이 과다하게 분비되며 위장운동이 감소하고, 혈중 당 성분이 증가하기 때문에 생리적으로는 식욕이 줄게 되는 것이다. 가령 갑작스럽게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상대로부터 당치도 않은 모욕을 받았다고 치자. 속이 상하고 말 그대로 ‘밥맛 없는 경우’를 당한 경우가 되어 하루종일 입맛이 없어지게 된다. 사업의 실패, 불합격, 실연 등으로 낙심하는 동안도 사람들은 식욕은 커녕 삶의 의욕마저 잃어버리고 만다. 이른바 측좌핵 신경세포가 좀처럼 활동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만성적인 스트레스나, 내면의 갈등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오히려 식욕을 증가시키고, 충분히 먹어도 포만감을 느끼지 못하게 하여 과식과 폭식을 유발하는 경향이 있다. 어린 시절부터 쌓인, 주위 환경이나 가족에 대한 불만감, 완벽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강한 열등감 등에 기인한 스트레스는 습관성 폭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 급성 스트레스 역시 제대로 극복하지 못하면 만성적인 스트레스로 이어진다.

허한 마음’ 채워주는 폭식

이렇게 스트레스로 인해 증가된 식욕은 허기져서 증가된 식욕과는 조금 다르다. 이 때는  맛있는 줄도 못 느끼면서 자꾸만 음식을 먹고, 배불리 먹었는데도 불쾌한 감정이 누그러지지 않으면 계속해서 먹게 된다. 그리고는 이런 과식으로 인한 포만감이 스트레스가 되어 다시 폭식을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런 경향은 특히 여성에게서 더욱 두드러지는데, 연구 결과에 의하면 약 70% 이상의 여성들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단음식이나 탄수화물이 많은 음식을 찾는다고 한다. 특히 열등감이 많은 여성, 대인관계에서 잦은 갈등이나 두려움을 경험하는 여성, 무슨 문제든 주로 참거나 도망가는 방식의 소극적인 대처를 하는 여성, 그리고 오랫동안 다이어트를 하는 여성들에게서 이런 성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이런 현상의 원인에 대해서는 신경생리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음식물, 특히 탄수화물을 많이 먹으면 트립토판tryptophan이라는 아미노산 물질이 뇌 안에 많이 유입된다. 그런데 이 트립토판은 바로 뇌를 안정시키는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serotonin의 전구물질이다.
그러니까 주로 탄수화물이나 당분이 많은 음식을 먹으면, 결과적으로 뇌 안에 세로토닌이 증가하여 스트레스로 불안정해진 뇌를 진정시키게 되는 것이다. 배가 허하지 않아도 마음이 허해서 음식을 먹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허한 마음을 채워주고 진정시켜주기 위한 자가치료(self-treatment)인 셈이다. 그러니 스트레스 받았다고 음식을 많이 먹는 자신의 식욕을 탓할 필요는 없다. 그보다는 먼저 과식과 폭식의 원인인 스트레스를 현명하게 해결하고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노력을 해야 한다.

스트레스 조절이 다이어트 성패 결정

만성적인 스트레스가 여성들의 식욕을 증가시킨다는 것은 스트레스가 다이어트 실패의 중대한 요인이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실제로 많은 여성들은 열심히 다이어트를 하던 도중, 애인과의 이별이나 중요한 시험, 직장 상사와의 갈등 또는 부모의 꾸중 등 스트레스가 생기면 다이어트 규칙을 어기고 음식에 손을 댄다. 그리고 나중에는 다이어트 규칙을 어긴 것이 또 다른 스트레스로 작용해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엄청난 양의 음식을 폭식하고 만다. 

이를 스트레스의 탈억제 효과(disinhibition effect)라고 한다. 스트레스에 의해 의식의 제어력이 약화되어 평소 억제하고 있던 행동(음식 먹기, 술 마시기 등)이 반동적으로 심하게 튕겨져 나오는 것이다. 이렇게 억제되어 있던 행동을 마음껏 하게 됨으로써 스트레스가 간접적으로 해소된 듯한 느낌을 한번 경험하게 되면, 이런 일련의 과정이 매우 강력하게 뇌리에 각인되어 나중에는 결국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반복적인 습관이 돼버린다. 별다른 스트레스가 있는 것도 아닌데 조금만 무료하거나 외롭다거나, 대인관계에서 조금만 서운하게 대접받으면 폭식으로 시간을 보내려하게 되는 것이다. 다이어트를 심하게 또 오래할수록, 스트레스의 탈억제 효과가 가져오는 해방감이나 충족감은 더 크게 느껴지고, 이로 인해 과식과 폭식의 습관은 더욱 포기하기 힘들어진다.

그렇기에 다이어트를 하는 여성에게는 자신의 스트레스를 잘 다스리고 대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체중조절을 위해서는 스트레스조절이 우선하는 것이다. 그래서 외국의 유명한 비만 치료 센터에서는 반드시 스트레스 매니지먼트Stress Management를 전체 체중조절 프로그램 속에 포함시키고 있다.

과식의 악순환 고리 끊기

대개 폭식 클리닉에서는 다음의 설문으로 개개인의 스트레스와 식욕과의 관계를 판단한다.

▶ 스트레스와 식욕과의 관계
- 당신이 무슨 일을 하려고 할 때, 압력을 느낀다면 음식을 먹고 싶거나 아니면 전연 식욕을 느끼지 못합니까?
- 당신이 뭔가 일을 빨리 하려고 책상에 앉아 있을 때, 뭔가 먹고 싶은 욕구가 생깁니까?
- 당신에게 스트레스가 있을 때 음식을 먹어야 기분이 나아진다고 믿습니까?
- 스트레스가 당신에게 좀 더 많이 먹게 합니까?

위와 같은 질문에 어느 하나라도 ‘예’가 있다면 당신의 스트레스와 식욕 사이에는 밀접한 연결고리가 형성되어 있다는 뜻이다.

이처럼 스트레스와 식욕이 연관되어 있을 경우, 두 가지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

첫째는 스트레스가 있을 때, 먹는 행동 이외의 행동으로 대처하는 것이다. 먹는 행동 이외의 대체 행동들을 나열한 후 그 중 가장 현실 가능한 것을 선택해서 먹고자 하는 욕구가 생길 때 이것을 신호로 여겨 대체 행동으로 식욕을 해소한다.
둘째로 스트레스 자체를 감소시키는 방법이다. 이완훈련을 익히면 스트레스 상황에서 부적절하게 먹는 행동을 하기 전에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다. 이완훈련은 깊은 호흡법을 통해 온 몸의 긴장을 풀어주는 요법이다.
다음으로는 스트레스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이를 적절히 평가하는 것이다. 상황을 어떻게 지각하고 해석하느냐가 자신의 감정을 결정하는 데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 외에 스트레칭, 기공, 요가 등의 운동요법도 스트레스성 폭식에 아주 좋은 방법이다.

▶ 스트레스를 받아 짜증이 폭발하려할 때, 다음과 같이 자신에게 물어 본다.
- 이 문제가 정말 얼마나 오래 갈까? 한달? 일주일? 하루?
- 과연 이 문제가 내가 이렇게 짜증을 낼 가치가 있는 일인가?
- 내 인생에서 이 문제가 내게 정말 중요한가?
- 내가 너무 서두르는 것은 아닌가?
- 내가 너무 지나치게 책임지려 하는 것은 아닌가?
- 내가 너무 100% 완벽하려고 욕심을 내는 것은 아닐까?
- 최악의 상황이 된다고 해도 두려울 게 뭐 있어?

▶ 그리고는 꼭 알고 있어야 할 다음 세 가지 법칙을 자신에게 일러준다.
‘작은 일에 땀 흘리지 않는다.’
‘대부분의 문제는 작은 일이다.’
‘100% 완벽할 필요는 없다.’

밤마다 거부할 수 없는 ‘야간식이 증후군’

다이어트에 있어서 또 한 가지 천적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밤에 먹는 습관이다. 잠자리에 들기 전 많은 음식을 먹는 이런 현상을 ‘야간식이증후군’이라고 한다. 밤에 무언가 먹지 않고는 도저히 불안해서 잠이 오지 않는 사람들, 하루종일 먹는 음식의 양 중 밤에 먹는 것이 반 이상을 차지하거나, 심지어 자다가도 식욕을 느껴 잠을 깨는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하지만 이에 대해 아직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고, 수면을 유도하는 멜라토닌의 분비가 원활하지 않은 것이 원인이 아닐까 추정될 뿐이다.

최근 노르웨이 트롬소 대학의 버켓벳(Grethe S. Birketvedt) 박사는 “밤에 먹는 사람들은 스트레스에 대한 호르몬 분비양상이 다르다”고 밝혔다. 이들에겐 스트레스 호르몬의 일종인 코티솔이 다량 분비되며, 밤에 과식하는 행동은 이런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비정상적 반응이라는 것이다. 방지책으로는 자기 전에 탄수화물이 풍부한 음식을 먹고, 수면제나 항우울제를 피하며, 수면을 취하기 30분전에 멜라토닌을 복용할 것이 권장된다.

야간식이 증후군은 야근을 많이 하는 직장인이나 게임 등에 중독된 주로 야행성 성향의 젊은층, 아침을 제대로 못 챙겨 먹는 자취생 등에게 많이 나타난다. 부작용으로는 누구나 예상하듯 밤에 섭취한 칼로리가 에너지원으로 쓰이지 못하고 그대로 쌓여 살이 되고, 음식이 위 속에 있는 상태에서 잠을 자기 때문에 위산이 역류하는 역류성 식도염이나 속이 쓰린 기능성 위장장애가 유발된다.

위에서 음식물이 소화되려면 적어도 3~4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12시에 잠자리에 든다면 8시 이후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 게 좋다. 밤에 배고픔을 참을 수 없다면 차라리 늦은 저녁을 푸짐하게 먹는 것이 그 이후에 간식을 먹는 것보다 훨씬 낫다.

그러나 근본적인 치료는 세 끼를 꾸준히 먹고, 특히 아침을 든든히 먹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다. 폭식하는 습관이 있는 사람들은 대개 야간식이증후군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경우 심리 상담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앞서 말했듯이 억지로 욕구를 누르는 것은 오히려 더 큰 반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스트레스의 근본원인을 해소하는 것임을 잊지 말자.

글│하세현  llgood@hanmail.net 미소인 한의원 원장, 한방 비만 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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