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1,000만 명이 혼자 사는 사회
2024년 대한민국은 ‘1인 가구 1,000만 시대’에 접어들었다. 전체 가구의 약 42%가 혼자 살고 있으며, 그중 고령층 비율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삶의 방식의 다양성을 반영하지만, 동시에 외로움, 인지기능 저하, 치매 등의 새로운 사회문제를 동반한다.
특히 주목할 만한 통계는 치매환자 100만 명 중 절반가량이 1인 가구라는 점이다. 홀로 사는 환경에서 치매를 앓는 노인이 증가하는 현실은 단순한 개인 문제가 아니라, 복지 시스템과 사회 전체에 구조적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외로움은 뇌를 바꾼다: 고립된 뇌가 닫히는 과정
▲ 외로움이 부르는 인지저하와 치매, 1인 가구에 필요한 ‘뇌돌봄의 실천'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외로움은 단순한 정서적 상태를 넘어 뇌의 구조와 기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만성적인 고립은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를 위축시키고, 의사결정을 관장하는 전두엽의 활동을 저하시킨다.
감정 반응의 중심인 편도체 기능 조절 역시 저하되며, 특히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장기간 분비될 경우, 신경세포의 성장과 연결이 방해받아 인지 기능이 급격히 떨어질 수 있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고 대화가 줄어들수록 언어 회로, 공감 회로, 기억 회로는 점차 비활성화되며, 사고의 유연성, 집중력, 감정 조절 능력이 저하된다.
실제로 2024년 The Lancet Public Health에 발표된 메타분석에서는 외로움을 지속적으로 경험한 사람이 치매 발병 위험이 31% 더 높다는 결과도 확인되었다. 이처럼 외로움은 뇌의 생존 기반을 위협하는 ‘보이지 않는 질병’이며, 장기적으로는 인지 기능 저하를 가속화하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한다.
다만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뇌는 ‘신경가소성’이라는 회복 특성을 지니고 있어, 적절한 자극과 돌봄을 통해 언제든지 회복될 수 있다. 문제는, 그 회복을 가능케 하는 ‘연결’과 ‘돌봄’이 혼자의 노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데 있다.
뇌돌봄, 혼자 사는 사람들을 위한 브레인트레이닝 기반 생활습관 제안
다음은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통합헬스케어학과 양현정 교수가 뇌과학적 연구결과와 통합헬스케어 관점에서 제안하는 혼자 사는 사람들을 위한 '뇌돌봄'의 방법들이다.
아래 생활습관들은 브레인트레이닝(Brain Training)에 기반하여 뇌의 회복력을 자극하고 인지기능을 유지하며, 외로움으로 인한 정서 위축을 완화하는 전략으로 제시된다.
▲ 외로움이 부르는 인지저하와 치매, 1인 가구에 필요한 ‘뇌돌봄의 실천'
① 반려동물과의 교감, 뇌에 사랑을 심다
반려동물과의 정서적 교감은 옥시토신과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해 뇌의 ‘사회적 보상 회로’를 활성화한다. 이는 스트레스 반응을 억제하고, 전두엽과 변연계의 통합 기능을 안정시키는 훈련 효과를 가져온다.
② 혼잣말과 외국어 학습, 언어 회로 깨우기
자신에게 말을 거는 혼잣말이나 자기표현은 언어중추(Wernicke-Broca 경로)와 감정 조절 회로를 자극하는 자가조절형 브레인트레이닝이다. 정서 언어 중심의 자기대화는 전전두엽의 인지통제력을 높이는 데 효과적이다.
외국어 학습은 해마, 전두엽, 측두엽을 동시에 자극하는 ‘복합 인지 훈련’이다. 특히 외국어 회화나 AI와의 대화는 작업기억과 집중력 향상에 효과적인 실천형 브레인트레이닝이다.
③ 자연 접촉 및 반려식물 돌보기
자연과의 접촉은 해마의 회복력을 높인다. 맨발로 흙을 밟거나 나무에 손을 얹고 하늘을 바라보는 행위는 자율신경계를 안정시키며 뇌의 감각 회로를 자극한다. 작은 반려식물을 돌보는 활동은 시각, 촉각, 후각을 활용한 다감각 자극으로 감각-인지 통합 회로를 강화한다.
④ 감각 기반 명상 루틴
아침에 따뜻한 물을 마시며 손끝, 발바닥, 소리, 냄새, 온도에 집중하는 ‘감각 명상’은 DMN(Default Mode Network)을 조절하고 전두엽과 편도체 간 연결 회복 훈련으로 작용한다.
⑤ 뇌에 좋은 식단 구성
혼자 사는 이들에게 필요한 뇌식단은 간편하고 지속 가능해야 하며, 뇌 기능을 회복하고 보호하는 영양소를 균형 있게 포함해야 한다. 오메가-3가 풍부한 등푸른 생선, 항산화 성분이 많은 블루베리, 마그네슘이 풍부한 견과류, 장-뇌 축(Gut-Brain Axis)을 개선하는 발효식품(김치, 된장, 요구르트 등), 그리고 커큐민이 풍부한 강황, 녹차 등은 인지 기능 향상과 정서 안정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대표적인 ‘브레인 푸드’이다.
사회적 뇌돌봄: 정책과 공동체의 역할
혼자 사는 사람들의 뇌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공공 차원의 뇌돌봄 생태계 구축이 필요하다. 정기적인 안부 확인, 치매예방교육, 치매전문센터 및 치매병원 지원, 치매 검사 및 치매판정, 치매 초기증상 모니터링 및 치매진단, 지역 커뮤니티 활동, AI 기반 스마트 안심시스템 도입 등은 사회가 함께 실천할 수 있는 뇌돌봄 방식이다.
해외에서도 정부가 고독과 고립 문제를 적극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영국은 2018년 세계 최초로 ‘고독부 장관(Minister for Loneliness)’을 임명해 국가적 대응에 나섰다. 의사들이 외로운 사람을 지역 활동과 연결하는 ‘사회적 처방’ 시스템을 운영하고, 다부처가 연계된 ‘고독 전략’을 수립한 것이 대표적이다.
일본 역시 2021년 ‘고독·고립 대책담당 장관’을 임명해 고독사 예방과 사회적 고립 해소를 위한 범정부 차원의 정책을 실행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는 ‘연결의 회복’이 곧 건강의 회복이라는 인식을 기반으로 한다.
뇌돌봄의 본질은 결국 사람과 사람을 잇는 따뜻한 연결이다. 브레인트레이닝이란, 그 연결을 다시 여는 삶의 기술이며, 사회적 뇌돌봄은 이제 시대가 요구하는 공공의 의무다.
혼자라는 외로움에 빛을 심는 뇌돌봄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통합헬스케어학과 양현정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고립된 뇌는 닫히지만, 연결된 뇌는 살아납니다. 삶의 모든 연결은 신경세포의 불빛을 켜는 일입니다. 혼자라는 시간 속에도 우리는 언제든 연결될 수 있으며, 뇌를 향한 작고 따뜻한 돌봄이 삶의 품격을 높이는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뇌돌봄은 외로움을 끌어안는 사랑의 실천이며, 혼자라는 삶을 공감으로 채우는 삶의 기술입니다."
1인 가구 증가 속에서 “나 혼자 산다”는 삶은 자유로울 수 있지만, 뇌 건강은 결코 혼자서 지킬 수 없다. 사회적 뇌돌봄에 대한 인식과 실천이야말로 우리 모두의 미래를 지켜주는 가장 확실한 힘이 될 것이다.
글. 장인희 객원기자 heeya71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