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풀리지 않는 퍼즐 '치매'

여전히 풀리지 않는 퍼즐 '치매'

김대훈 계요노인병원 신경과장

뇌2002년12월호
2010년 12월 23일 (목) 20:06
조회수208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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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51세의 부인은 첫 번째 주목할 만한 증상으로서 남편에 대한 질투심을 보였다. 곧 급격한 기억상실이 눈에 띄었고, 집에서 더 이상 정상적으로 있지 않았고, 물건들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거나 숨기기도 하였으며, 그녀는 때로 사람들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고 믿었으며 크게 소리지르기 시작하였다. (중략) 글을 읽을 땐 한 줄로부터 다른 줄로 건너뛰거나, 한자 한자씩 읽거나 무감각한 억양으로 읽는다. (중략) 그녀는 질문을 명백하게 파악하지 못한다. 개별적인 물체의 사용을 더 이상 알지 못하는 듯 보인다.

정확히 1세기 전에 알츠하이머(Alois Alzheimer, 1864-1915)가 다른 질환과 다른 증세와 경과를 보인 어떤 여성(Auguste D)을 진찰하고 발표한 논문에서 기술한 환자의 상태는 현재 많은 치매 센터에서 흔하게 만나는 환자들의 증상이다. 1994년 미국의 레이건 전 대통령이 이러한 알츠하이머병(Alzheimer’s disease, AD)에 걸렸음을 알았을 때까지도 이 병은 이해보다는 두려움이 더 컸었다.


치매 환자, 전뇌 기저부의 뇌 손상이 가장 심해










알츠하이머 발병한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대통령


정상 노인과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노인의 뇌는 조직검사를 해보면 많은 차이를 보인다. 현재까지의 연구 결과를 보면 노인반(senile plaque)과 신경섬유성 농축제(neurofibrillary tangles)가 이 퇴행성 뇌질환의 주범으로 생각되는데 이것들은 치매가 진행될수록 뇌피질을 따라 점점 넓게 퍼지면서 뇌세포를 파괴한다.(그림1) 특히 특정 부위의 신경세포를 파괴하는 신경섬유성 농축제는 뇌세포 손상의 주범으로 생각되고 있다. 해마(hippocampus)는 기억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부위인데 치매의 초기 단계부터 신경섬유성 농축제가 발견되기 때문이다. 이때는 학습장애는 두드러지지만 예전의 기억은 잘 유지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치매 환자들의 뇌 손상이 심한 부위는 전뇌 기저부(basal forebrain)의 콜린성 신경들이다. 그래서 현재 시판되는 치매 치료제들은 이 콜린성 신경전달을 강화하는 약물(아리셉트, 엑셀론, 레미닐)들이다.

노인반은 세포막에 위치한 단백인 β-아밀로이드 전구단백(β-amyloid precursor protein, β-APP)의 분해 과정의 이상으로, 세포 밖에서 신경 독성 덩어리를 형성해서 생긴다. 정상적인 경우는 α-세크레타제(α-secretase)와 γ-세크레타제(γ-secretase)에 의해 APP가 분해되면 다시 재생되는 과정을 거치지만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경우는 β-세크레타제의 활성이 증가해 β-아밀로이드(β-amyloid, Aβ)를 형성, 이것이 녹지 않고 쌓이게 되어 신경손상을 유발하는 것이다.


개발되지 않고 있는 치료제


1999년 6월 엘란(Elan) 등이 지에 발표한 AN-1972 치매 백신은 당시로서 매우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이는 뇌세포 파괴의 주범이라고 생각되었던 β-아밀로이드에 대한 항체 반응을 유도하는 물질로 동물실험에서 노인반의 형성을 막을 뿐 아니라 이미 형성된 노인반을 없애는 결과를 얻어 치매 치료의 전기가 될 수도 있다는 희망을 낳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 신의 퍼즐을 풀기에 인간이 너무나 미약했던지 2001년에 시작한 인체 안정성 및 용량 연구에서 AN-1972를 투여받은 300명의 환자 중 16명에서 뇌와 척수에 염증 반응이 나타나는 심각한 부작용으로 2002년 연구가 중단되고 말았다. 현재는 β-세크레타제 억제제나 신경섬유성 농축제를 유발하는 tau의 과인산화를 막는 치료 방법이 연구되고 있어 기대를 모으고 있다.


가계력, 유전자, 뇌졸중 등 원인 다양









그림 1.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MRI 결과는 정상인에 비해 뇌피질의 위축이 두드러진다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전체의 7.9%에 달하는데 이중 약 10%가 치매를 앓고 있다. 역학조사 결과에 따르면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30%에서 직계 중 치매 환자가 나타나고 있어 부모나 가까운 친척 중에 치매 노인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에 대한 걱정을 떨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치매의 진단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공통적으로 치매의 A(Activity of daily living, 일상생활의 장애), B(Behavioral symptoms, 이상행동 증후군), C(Cognitive decline, 인지능력의 저하)가 보일 때 치매로 진단한다.

치매를 유발하는 질환들은 의외로 많은데 그중 알츠하이머병이 전체 치매의 50-60%정도로 가장 흔하다. 이중 상염색체 우성으로 유전되는 형태는 조발형 알츠하이머병으로 40대 중반에서 50대 초반 사이에 발병해 급속한 병의 진행을 보인다. 이런 조발형은 전체 알츠하이머병의 4-8%정도이다.

정확히 멘델의 법칙을 따르는 염색체 이상과는 달리 알츠하이머병의 위험인자로 주목받는 것이 아포지질단백질 E(Apolipoprotein E, APOE) 유전자인데 이것은 신경세포 수초와 신경막의 재생 과정이나 유지, 콜레스테롤의 대사에 연관된 단백질을 만든다. 19번 염색체에 위치한 이 유전자는 ε2, ε3, ε4 세 가지의 다형성(polymorphism)이 존재해 한국인의 경우 각각 5.3%, 85.4%, 9.3%의 사람들이 이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사람은 각 한 쌍씩의 염색체가 있으므로 ε2-4/ε2-4의 9개 조합 중 하나를 가지게 된다. 이 중 ε2/ε4나 ε4/ε4의 유전자를 가진 경우 75세에서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확율이 ε3/ε3인 경우에 비해 각각 3배, 8배에 달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ε4/ε4인 사람의 경우 80세가 되면 95%가 알츠하이머병에 걸린다. 이는 ε4 유전자에 의해 만들어진 단백이 β-아밀로이드와 서로 뭉쳐져 노인반을 형성하는데 일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속단하기엔 이르다. 아포지질단백질 E는 역시 위험인자로 추측될 뿐이다. 일란성 쌍생아를 대상으로 한 연구결과에서 이들이 똑같이 알츠하이머병에 걸리지 않는 것을 보면 유전적 요소 외에 후천적인 요인이 작용한다는 게 중론이다. 


그중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지적되는 것은 뇌졸중이다. 이것은 이전까지 알츠하이머병의 위험인자로 언급되던 고령, 알츠하이머병 환자 직계가 있는 경우, 유전자 이상 등과는 달리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흡연, 술, 심장 질환 등이 원인으로 습관을 바꾸거나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으면 많은 부분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노우돈(Snowdon) 등이 1997년 발표한 바에 따르면 아주 작은 뇌경색이 있어도 알츠하이머병 발병 가능성을 20배나 높인다. 이제부터라도 담배를 끊고 규칙적인 운동을 하는 것이 나중에 조상 탓 안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보인다.


일일 2000단위 이상의 토코페롤 섭취 효과적


한편 최근들어 폐경기 여성에 투여하는 에스트로겐에 대한 회의적인 의견들이 대두되면서 지금까지 약을 먹어 오던 환자나 처방해 오던 의사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에스트로겐 대체요법이 심혈관 질환, 알츠하이머병, 폐경 증상 등에 상당한 효과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자궁내막암, 유방암의 발생률을 높이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더 많은 연구 결과를 기다리는 방법만이 남아있다. 대체약물로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제와 스테로이드 등 뇌세포의 염증을 차단하는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는데 스테로이드는 역시 득보다 실이 더 많고 이외의 소염제들에 대한 연구는 아직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노화와 알츠하이머병은 깊은 연관이 있다. 세포가 숨쉬고 배설하는 과정에서 자유 라디칼(free radical)이란 물질이 생기는데 정상적이라면  이를 폐기 처리하는 능력이 서로 균형을 이루게 되는데 나이가 들면 이것의 처리 능력이 떨어져 노인반과 신경섬유성 농축제의 형성을 부추기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비타민 E(tocopherol)의 알츠하이머병 치료 효과에 대한 연구가 행해지고 있지만 아직 뚜렷한 결론을 내리기는 힘든 상황이다. 그러나 부작용이 없는 범위인 하루 2000단위의 토코페롤은 알츠하이머병의 진행을 조금이나마 억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외의 위험인자들로는 의식 소실이 동반될 만한 머리의 외상, 교육 정도, 흡연 등을 들 수 있는데  그 중 외상이나 흡연은 다른 위험인자가 있을 경우 알츠하이머병의 발병률을 급격히 높인다. 한편  교육 정도와 알츠하이머병과는 별 관련이 없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는데 이는 교육 기간이 길수록 치매판별 검사 점수가 높은 것이 당연하고 또 이런 환자들이 무학인 사람들보다 뇌 위축이 훨씬 진행된 상태에서 치매 증상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초기 단계 치료로 1-2년의 시간 벌어

하지만 모든 병의 치료에서 그렇듯이 알츠하이머병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발생 초기부터 치료를 시작하면 적어도 1-2년의 시간을 벌 수 있다. 여생이 그리 길지 않은 노인들의 경우 1년 간 만이라도 자신의 의지로서 살 수 있는 시간을 버는 것이어서 매우 소중한 것므로 조기발견과 적극적인 치료를 놓쳐서는 곤란하다.

글. 김대훈 계요노인병원 신경과장 emooky@orgi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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