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하는 경영 브랜드앤컴퍼니 이상민 대표
기업이 새 브랜드를 내놓기 위해 시장 조사부터 네이밍, 브랜드 아이덴티티 전략 수립, 디자인, 광고까지 모든 과정을 한곳에서 진행하고자 한다면 기업의 담당자가 전화할 곳은 이 회사밖에 없다. 토털 브랜드 컨설팅 회사로서는 우리나라에서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일하다는 브랜드앤컴퍼니. 11년 전에 이 회사를 만든 이상민 대표 역시 ‘대한민국 제1호 브랜드 컨설턴트’로 일컬어진다. 카피라이터로 광고업계에 발을 들인 이후 1989년부터 브랜드 컨설턴트로 활동하면서 그가 뽑아낸 숱한 기획서들은 대한민국의 브랜드 발전사를 엮어나가고 있다.
소비와 커뮤니케이션의 첨단을 다루는 회사인데 사옥이 꽤 으슥한 산기슭에 자리해 있으니 뭔가 더 깊이 있는 함량의 기획이 나올 것 같은 느낌이다.
4년 전에 이곳으로 들어왔는데 여기서 제일 가까운 시내에 해당하는 양재동보다 기온이 보통 5℃쯤 낮다. 이 사옥 이전에는 우면산자락에서 7년을 지냈다. 공기가 좋아서 그랬는지 직원들이 감기에 잘 걸리지 않더라.
브랜드앤컴퍼니 같은 회사의 연말연시 풍경은 어떤가?
연말연시는 일이 제일 많이 걸리는 시기여서 한 해가 가는지 오는지 모르고 지난다. 기업들이 새해 브랜드 전략을 이때 집중적으로 준비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휴가철도 따로 없다. 기업들이 휴가를 떠나기 전에 우리에게 일을 주고 가기 때문에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끝나야 쉰다.
사진으로 볼 때는 미처 몰랐는데 귀가 무척 크고 잘생기셨다.
뇌가 커야 하는데, 하하.
뇌과학자들이 뇌가 크다고 머리가 좋은 건 아니라고 하더라. 《브레인》을 정기구독 하고 계신데, 어떻게 뇌에 관심을 갖
게 됐는지.
브랜딩은 커뮤니케이션이다. 마케팅 분야에서 신경과학이론을 활용한 뉴로 마케팅 같은 새로운 접근과 분석이 이뤄지고 있는데, 내가 최근에 구상하는 것은 뉴로 브랜딩이다. 커뮤니케이션을 잘하려면 사람의 뇌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알아야겠더라. 우리 회사가 토털 브랜드 컨설팅이라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든 이유도 브랜드 경영을 제대로 하려면 통합적인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기업이 신규 사업에 진출하거나 신제품을 개발할 때는 먼저 리서치 회사를 불러서 사업 방향을 잡고, 그다음에는 컨설팅 회사에 전략을 마련하게 한다. 그리고 브랜드 회사에는 네이밍을, 광고 회사에는 브랜드 론칭 전략에 따른 광고 제작을 의뢰한다. 이 각각의 과정을 일관성 있게 이끌려면 전체를 코디네이팅하는 역할이 필요한데 기업 내에 그런 업무 역량을 갖춘 담당자를 두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래서 나는 우리 회사를 기업에 소개할 때 ‘기업의 브레인이 되는 회사’라고 표현한다. 목표를 정하고 일관되게 방향을 잡아 실행하는 브레인이 있어야 성공적인 브랜드 경영을 할 수 있다.
요즘 기업들의 가장 최신 화두가 브랜드 경영이다. 브랜드 경영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해 좌뇌와 우뇌의 특성에 이를 대입해보자. 좌뇌를 브랜드 아이덴티티, 우뇌를 브랜드 이미지라고 한다면, 기업이 전달하고자 하는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소비자들이 느끼는 브랜드 이미지 간에는 대개 얼마간의 차이가 존재한다. 좌뇌와 우뇌가 통합적으로 조화를 이뤄야 최적의 뇌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처럼,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브랜드 이미지가 큰 차이 없이 하나가 될수록 강력한 브랜드 파워가 생긴다. 이 차이를 줄이는 것, 둘을 하나로 일체화하는 것이 브랜드 경영의 목표다.
브랜드 분야의 번역서를 10여 권 넘게 출간했다. 그런데 자신의 책은 아직 한 권도 내지 않았다.
책으로 낼 만큼 확신하는 이론을 만들지 못했고, 내 책을 쓸 자신감도 아직은 없다. 물론 내가 하는 컨설팅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은 있다. 하지만 기업이 아닌 독자를 대상으로 책을 낸다는 것은 자신의 이론을 확고하게 정립한 다음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브랜드를 너무 어렵게 얘기해온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도 한다. 늘 내 식대로만 이야기하고, ‘브랜드가 만능이다’ 하면서 나 자신을 스스로 강화시켜왔다. 다른 쪽의 이론에는 관심도 갖지 않고. 그런데 자기 분야 외에 다른 것들도 읽어내고, 그것들을 서로 조화시키는 경험을 충분히 쌓은 상태가 바로 연륜이 아닌가 한다. 연륜이 쌓여야 유연한 태도를 갖게 되고, 책을 쓸 만큼의 통찰력도 갖추는 것 같다.
요즘 자연과학 분야의 책들을 보면서 뉴로 브랜딩에 관해 정리하고 있는데, 올해 텍스트북 정도는 나올 것 같다. 내가 쓰고 싶은 책 중의 하나가 대중이 브랜드를 쉽게 이해하고 즐길 수 있게 하는 책이다. 브랜드는 모든 사람의 일상생활 속에 있는 매우 친숙한 것인데, 이게 너무 어렵게 얘기되고 있다.
지난해에 브랜드 경영의 세계적 권위자인 데이비드 아커 박사의 책 《스패닝 사일로Spanning Silos》를 내면서, 업계에 오래 있다 보니 내가 틀 안에 갇혔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사일로는 기업의 발전을 가로막는 부서 이기주의를 말한다. 사일로를 스패닝해야 한다, 즉 부서 이기주의를 넘어 이를 연결하고 조직 간에 융화해야 한다는 내용의 책을 정리하면서 나도 브랜드 사일로를 만들어놓은 것 아닌가 돌아봤다. 어느 정도 시기까지는 사일로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그 분야에 정통해질 수 있으니까.
그러나 이제는 정통한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더 넓게 융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브랜드 인접 분야에 대해 링크가 가능한지 살펴보게 됐고, 다른 학문을 통해 브랜드 보기를 시도하고 있다. 의사가 MRI 찍는 걸 보면서 브랜드 리서치 할 때도 MRI처럼 정밀하게 살필 것인지, 엑스레이 정도로 간단히 들여다볼 것인지 진단하고 처방 내리기는 마찬가지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기업들이 솔루션을 원해서 우리를 찾아오는 거나, 환자가 병을 치료하기 위해 의사를 찾는 거나 상황은 같다.
지난해에는 ‘아, 내가 이런 것을 모르고 있었구나, 이런 부분들이 서로 연결될 수 있는 거구나’ 하는 발견을 하면서 내가 좀 더 지혜로워진 것 아닌가 생각한다. 뒤돌아보며 자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건 조금 더 있다가 하기로 하고, 지금은 옆을 보며 곁눈질을 좀 해야겠다. 너무 앞만 보면 다른 것들을 보지 못한다. 다행히 시야가 넓어지고 있고, 이렇게 가다 보면 내 책을 쓸 수 있는 때가 오지 않겠나.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의 태도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
소비자들의 욕구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브랜드 측면에서 볼 때 1993년 하이트 맥주가 나온 시점이 큰 전환점을 이룬다. 이때를 기준으로 소비자들은 메이커가 아닌 브랜드를 선호하게 된다. 좌뇌 중심의 합리적인 구매 의사 결정을 해오다가, 이제는 어떤 소비를 해야 내 감성을 충족할 수 있는가 하는 우뇌 위주의 구매 활동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이성적으로는 마켓 셰어, 즉 시장 점유율이 중요하지만 이제는 마인드 셰어, 곧 소비자의 뇌를 차지한 기업이 성공하게 돼 있다.
또한 예전에는 주의를 끌기 위해 억지로 알리는 어텐션 이코노미 방식을 썼다면, 이제는 상대를 매혹해야 살아남는 어트랙션 이코노미 방식을 취한다. 이는 좌뇌의 어텐션에서 우뇌의 어트랙션으로 시대가 변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좌뇌와 우뇌의 특성을 조화시켜야 할 것이다. 브랜드 일을 하다 보니 소비자의 뇌 활동에 자연히 관심을 갖게 된다. 브랜드와 브레인, 같은 맥락에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창조성을 잘 발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멍하니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것은 내가 하는 두뇌 건강 관리법이기도 하다. 뇌가 스트레스 받지 않게 하려면 취미 활동보다 뇌를 쉬게 해주는 것이 좋다. 아무 생각 하지 않고 그냥 멍한 상태로 10분 정도 있으면 된다. 그렇게 하루에 너덧 차례 한다. 머릿속에 정보가 너무 많으면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과제에 몰두하다가 머리를 텅 비우는 순간, 창조적인 생각이 떠오르는 경험을 누구나 하지 않는가. 머리가 복잡하다는 것은 뇌에 불필요한 힘이 들어간 상태를 뜻한다. 이럴 때는 눈을 감고 숨을 고르면서, 힘이 들어가 열이 오른 뇌를 식혀줘야 한다.
창조적인 일을 하려면 많은 것을 봐야 하는데, 보는 관점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아이디어를 얻으러 백화점에 갈 경우 자주 갔던 곳이라도 ‘처음 간다’고 생각하면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인다. ‘어, 이걸 왜 그동안 못 봤지?’ 할 만큼. 그런데 ‘갔던 데 뭐 하러 또 가나’ 이러면 결코 새로운 것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생각하기에 따라 뇌는 정말 다르게 반응한다.
직원을 뽑을 때 창조력의 정도를 알아보는 방법이 있는가?
세 가지를 본다. 첫째는 이해력. 잘 듣고 잘 봐야 한다. 이해력이 좋아야 창조력을 기대할 수 있다. 둘째, 정리를 잘하는지 본다. 책상을 깨끗하게 정돈한 사람과 너저분하게 해놓은 사람이 있다면 정리를 잘한 사람이 더 창조성이 있다고 본다. 셋째는 논리력. 논리적인 사고가 밑받침 돼야 실행 가능한 아이디어가 나온다. 경험으로 볼 때 이 세 가지 다 트레이닝이 가능하다.
두렵거나 막막한 기분이 들 때는 없는지?
어렸을 때 부모님이 방앗간을 하셨다. 학교 마치고 집에 오면 놀고 싶고 숙제도 해야 하는데 부모님이 자꾸 일을 시키셨다. 짜증을 내면서도 어쩔 수 없이 해야 했다. 그러다가 ‘이왕할 거 왜 이렇게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그냥 즐겁게 했다. 지금도 무슨 일이든 그런 마음으로 한다. 전혀 해본 적 없는 일이어도 “해보겠습니다” 하고 받는다. 그러다가 일이 생각대로 잘 되지 않을 경우에는 정직하게 고백하면 된다. 미리 두려워할 일은 없다.
꿈이 뭔가?
토털 브랜드 컨설팅 그룹을 만드는 것. 현재 개별 업무로 되어 있는 분야를 각각의 회사로 독립시켜 컨설팅 그룹으로 성장시키고자 한다. 일생일대의 목표는 브랜드 교육기관을 설립하는 것이다. 미국에 맥도날드 대학이 있듯이, 브랜드 특성화 대학을 만들어 브랜드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 될 것이다. 50%는 됐다고 본다. 시작이 반이니까, 하하. 10년 넘게 브랜딩 회사를 경영해온 것이 그 기반이 된다고 생각한다. 해외 네트워크도 만들어져 있다.
최근 트렌드 중 특히 흥미롭다고 여기는 것은?
라이프스타일 브랜딩이 주목받고 있다. 브랜드는 고객이 기대하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예를 들어 호텔의 경우 고객이 호텔에 머무는 동안 가장 인상 깊은 경험이 무엇인지 조사해볼 수 있을 것이다. 실제 한 호텔이 투숙객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 결과, 호텔 이용의 가장 큰 문제점은 ‘외로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결과를 받아든 호텔 측은 조명, 조경 시설, 음악 등 호텔 전체 환경을 정서적 안정감을 높이도록 디자인했다. 이렇게 라이프스타일 자체를 디자인하는 것도 브랜딩의 영역으로 들어오고 있다. 고객에게 최고의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브랜드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글·방은진jeen310@hotmail.com | 사진·김명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