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에 숨어 있는 절, 봉은사

도심 속에 숨어 있는 절, 봉은사

[김양의 가을 산책 - 2] 천년고찰 봉은사에서 만난 休

고층 빌딩이 늘어선 강남. 그 사이에 사찰이 조용히 숨을 쉬고 있다. 바로 천년고찰, 봉은사다.


▲ 도심 속, 번잡한 소음마저 쉬어가는 느낌을 주는 봉은사 전경

김양이 봉은사를 찾아갔을 때는 이미 날씨가 많이 흐린 뒤였다. 혹시나 비가 와서 취재를 중단하는 사태가 생길까 걱정되어 선릉을 부지런히 걸은 뒤였다. 4시쯤, 날이 흐리기 시작하더니 해가 빨리 저물었다. 덕분에 봉은사에서는 사진이 조금씩 어둡다.


▲ 봉은사 진여문을 지키고 있는 무서운 얼굴의 사천왕

794년(원성왕 10)으로 신라 시대 고승 연회국사(緣會國師)가 794년(원성왕 10)에 견성사(見性寺)란 이름으로 창건한 것이 지금의 봉은사다.


봉은사는 가까이에 있는 조선의 왕릉, 선릉‧정릉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성종의 능이 조성되었을 때, 주변에 있던 견성사가 원찰(죽은 사람의 화상이나 위패를 모셔 놓고 명복을 비는 법당)로 이용되었다. 당시 견성사는 규모가 크고 선릉과 가까웠던 듯 대신들이 “승려들의 불경 외는 소리와 새벽 종소리, 저녁 북소리가 능침을 소란하게 하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할 정도였다고 한다.


▲ 오랜 세월이 느껴지는 봉은사 건물 너머로 고층 빌딩이 보인다.

당시 연산군은 정현왕후(선종의 세 번째 비, 선릉에 함께 안장되었다.)의 뜻을 따라 견성사를 중창하고 친제를 행하려 했다. 그러나 신료들이 불교식 제례는 유교 국가 이념에 맞지 않는다고 반대하며 견성사를 철거하길 건의했다. 연산군은 견성사를 선릉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옮겨 다시 창건한다. 이때 사찰명을 봉은사(奉恩寺)로 바꾸었다.


▲ 봉은사 여기저기는 부지런하고 꼼꼼한 손길로 다듬은 티가 난다.

명종대 이후 봉은사는 선릉과 정릉 두 왕릉을 보호하고 필요한 물자를 공급하는 조포사(造泡寺)로서 역할을 하였다. 조포사는 왕릉이나 원묘(園墓) 등에서 소용되는 두부를 만들던 사찰을 의미한다. 선릉과 정릉의 제향이 있을 때마다 봉은사의 승려 두 명이 차출되어 두부를 만들었다고 한다.


▲ 봉은사 해수관음상 앞을 돌며 기도를 하는 어머니들이 모습.

봉은사는 1000년이 넘은 절이니만큼 역사적인 아픔도 몇 번 겪었다. 1592년에 일어난 임진왜란은 선릉뿐 아니라 봉은사에도 피해를 줬다. 다행히 대체적인 절의 모습은 유지되었지만, 더 큰 피해는 1636년에 일어났다. 이때 일어난 병자호란으로 봉은사는 전소되었다가 몇 칸의 당우만 남기고 퇴락했다.


▲ 봉은사 주차장 뒤로 종루가 보인다.

원래 봉은사가 ‘김양의 가을 산책’ 두 번째 이야기 방문지로 정했던 이유 중 하나는 예불 시간에 맞춰 스님이 종루에서 치는 법고와 범종 소리였다. 새벽 예불 시간은 4시 30분부터라 듣기 어렵지만 저녁 예불은 5시 40분부터 시작된다.

이때, 스님 두세 사람이 종루에서 법고와 범종을 친다. 날이 맑은 날이면 묵직하면서도 가벼운 소리가 나고, 습기가 가득한 날에는 소리가 무거운 대신 크게 들린다. 대웅전에서 들리는 예불 소리와 함께 들리는 이 법고‧범종 소리는 마음을 깨끗하게 비워준다.


▲ 스님이 법고를 치는 모습. 법고와 범종을 치는 소리가 비를 타고 땅으로 낮게 퍼졌다.

봉은사를 찾아갔던 날은 11월 16일로 5시가 갓 넘겼을 때부터 비가 왔었다. 내려간 기온에 추위를 느끼던 즈음, 드디어 예불 법고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경북에 있는 청도 운문사는 여스님만 있다. 그곳에서 울리는 법고 소리는 청아하면서 맑다. 하지만 봉은사 법고 소리는 역시 ‘남자’라서 그런지 더 무겁고 힘찬 소리가 난다.

참 신기한 일이다. 슬슬 법고 소리가 잦아들고 범종 소리가 들릴 때 즈음이었다. 타종 소리에 집중하고 있었더니 어느새 뒤에서 들리던 예불 소리가 안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데~엥’하고 울리는 타종 소리를 따라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흔히 말하는 ‘번잡한 마음이 씻기는’ 느낌이었다.

소리를 이용해 명상하는 방법은 여러 곳에서 사용하고 있다. 특히 ‘소리굽쇠’로 하는 명상은 쉬우면서도 효과적이라 유명하다. 호흡을 편안하게 하며 소리굽쇠에서 퍼져 나가는 소리에 집중하고 좇아가는 방식이다. 일정한 파동을 가지고 진동하는 소리에 집중하는 사이, 머릿속을 꽉 채우던 생각이 사라지고 마음이 평온하게 가라앉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어느새 타종도 끝나고 예불 소리도 차츰 잦아들었다. 봉은사에서의 하루도 마무리되고 있었다. 종루 너머로는 비에 젖은 도시가 보였다.

글. 김효정 기자 manacula@brainworld.com
도움. 《조선왕릉 종합학술조사보고서 Ⅲ》, 국립문화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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