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와 산 자가 만나는 공간, 선릉

죽은 자와 산 자가 만나는 공간, 선릉

[김양의 가을 산책 - 2] 조선왕조의 릉, 선릉과 정릉 역사 산책 1

조선 왕조의 무덤은 총 42기다. 이중 북한 개성에 자리한 태조왕비 신의왕후 제릉과 정종 후릉 2기를 제외한 40기는 서울 시내와 근교에 있다. 2009년 이 40기 능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어느 흐린 금요일, 김양은 조선왕조의 능 선릉과 정릉에 다녀왔다.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산131번지 일대를 장악하고 있는 선릉은 제9대 성종과 정현왕후의 능, 정릉은 제11대 중종의 능이다.


▲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하는 공간이 시작되는 ‘홍살문’. 악귀를 쫓는 붉은색(紅)과 화살(虄)이 있는 문(門)이란 뜻이다. 한국 문화에는 ‘3’이 친근하다. 홍살문에 있는 삼태극이나 그 위에 있는 삼지창에서도 그리고 고대 신화에 나오는 삼족오에도 3이 보인다.

세계문화유산인 선릉에서는 오전 10시 30분과 오후 2시 30분이 되면 무료 해설이 시작된다. 성종대왕릉 홍살문 앞에 있는 세계유산 표지석 앞에 가면 무료로 해설을 들을 수 있다. 김양이 만난 해설사는 60대 어르신이었다. 은퇴 후, 서울성곽 해설을 하시다 지금은 경복궁이나 선릉 등 문화재 해설을 하고 있다고. 나이에 비해 정정한 비결을 물으니 어르신은 자주 걷다 보니 그만큼 건강하다고 말했다.

왕릉, 산자와 죽은 자가 함께하는 공간

문화재 해설은 대략 1시간쯤 걸린다. 이때, 김양이 받은 느낌은 ‘역시 무덤은 죽은 자의 공간’이라는 것. 그 예가 ‘향어로’(향로와 어로) 즉, ‘신로(神路)와 어로(御路)’다. 얇은 돌(박석)을 깔아 만든 신로와 어로는 홍살문에서 시작되어 정자각까지 이어진다. 홍살문 중앙에 크게 자리 잡은 신로는 말 그대로 ‘신’이 다니는 길로 능의 주인이 쓰는 길이다. 그 오른쪽에 한 단계 낮게 깔린 길이 어로로 살아 있는 임금이나 헌관 등 참배자가 이용한다.


▲ 홍살문에서 시작되는 향어로의 모습. 왼쪽에 한 단 높은 길이 향로로 신이 다니는 길이다. 오른쪽 어로는 임금과 헌관 등 참배자가 이용한다.

조선 시대 왕릉은 죽은 자와 산 자가 만나는 정자각을 중심으로 3단계 공간으로 나눌 수 있다. 입구 쪽에 있는 재실 등은 산 자의 공간이다. 언덕 위에 있는 봉분을 중심으로 곡장과 석물이 조성된 곳은 죽은 자를 위한 공간이다. 그리고 정자각과 향어로, 수복방, 수라간이 배치된 곳은 왕의 혼백과 참배자가 만나는 공간, 즉 제를 올리는 곳이다.

곳곳에 남은 불교의 흔적

원래 불교를 국교였던 고려에서 넘어온 것이 조선이다. 그런 만큼 생활 곳곳에 불교의 흔적이 남아있다. 왕가의 제를 보아도 그 흔적을 볼 수 있다. 선릉의 정자각 앞에는 조선왕조의 기제사(각 왕의 왕릉에서 기일에 지내는 제사) 제수차림(제수진설도)과 제(기신제)에 대해 설명하는 사진이 있다.


▲ 제수진설도를 잘 살펴보면 일반 제상에서 보이는 음식 두 종류가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제수진설도를 잘 보면 일반 제상에서 보이는 음식 두 종류가 보이지 않는다. 바로 ‘생선’과 ‘육류’다. 그 이유는 기제사 상차림은 불교식을 따르기 때문이라고. 종묘에서 ‘제례’는 국가에서 지내는 제인 만큼 성동 백서 형식을 따르지만, 능에서 지내는 ‘기제사’는 왕가의 제이기 때문에 이렇게 지낸다고 한다.

이런 불교의 흔적은 능에서도 볼 수 있다. 능 앞에 망주석과 함께 서 있는 ‘장명등’이 그것이다. 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명등은 사찰이나 능묘 앞에 세워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는 역할을 했다. 고려말 공민왕 현릉(玄陵)에 세운 뒤 왕릉에 반드시 세웠었다. 이를 조선의 왕조에서도 따라 한 것이다.


▲ 정자각 내림마루에 있는 장식기와. 알고 보니 삼장법사와 그 ‘똘마니’들이다.

그리고 정자각 내림마루에도 그 흔적을 볼 수 있다. 내림마루 위에는 장명등처럼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는 역할을 하는 장식기와가 있다. 이 장식기와는 사실 ‘삼장법사’와 삼장법사가 거느리던 요괴들을 표현한다고 한다.

(계속)

글. 김효정 기자 manacula@brainworld.com
도움. 《조선왕릉 종합학술조사보고서 Ⅲ》, 국립문화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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