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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중근 의사 기념관 전경
서울시 중구 소월로 91. 남산 중턱에 있는 안중근 의사 기념관(http://ahnjunggeun.or.kr/)이 있는 위치다. 백범 광장과 남산 도서관, 서울시 교육연구정보원이 있는 곳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도 있다.
“여기 생긴 지 40년 넘었어요.”
안중근 의사 기념관은 1909년 10월에 만주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독립운동가 안중근(1879~1910) 의사를 기리는 기념관이다. 이전에는 사단법인 안중근 의사 숭모회에서 1970년에 세웠으나 철거하고, 2010년 10월 26일 새 기념관이 개관했다.
사실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남산에 있는 줄은 몰랐다. ‘와, 남산을 찬찬히 보는 건 처음이야!’라며 기분 좋게 남산을 오르는 중 백범광장 근처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있었다. 처음 들어갈 때는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동선이 잘 짜여 있고, 전시 내용이 괜찮았다.

▲ 안중근 의사의 좌상과 혈서로 쓴 태극기
입구에 먼저 들어가면 중앙홀에서 안중근 의사의 좌상과 함께 약지 혈서 태극기를 마주하게 된다. 이 태극기는 안중근 의사가 네 번째 손가락(약지)을 단지하며 흘린 피로 적은 ‘대한독립’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다.
역사를 몰라도 생활에 큰 불편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도 남산에 놀러 가는 김에 한 번 들려볼 만하다. 특히 자녀가 있는 집이라면 꼭 한 번 들러보길 권한다. 자녀의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하는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중․고등학생의 경우, 안창호의사라는 한 개인의 삶과 우리나라 역사가 어떻게 맞물려 돌아갔는지 시간대를 머릿속에서 재구성해 보면 좋다. 당시 상황이 시간별로 정리되어 학교 공부에도 도움되고,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

▲ 건물 외벽에 안중근 의사의 글이 새겨져 있다. 김양이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당시, 안중근 의사가 쓴 글이 시험에 종종 나오곤 했다.
잘 안내 해놓은 기념관을 꼼꼼하게 돌아보고 난 뒤, 관계자에게 사진 촬영 허가 요청을 하며 “남산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있는 줄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 같아요. 새로 생긴 것 같은데 소개하고 싶습니다.”고 말했다. 그러자 큐레이터가 ‘이 사람은 뭐지?’라는 눈빛으로 “여기 생긴 지 40년 넘었어요. 이 건물은 새로 개관한 것입니다.”라고 답해 순간 엄청나게 부끄러웠다는 것은 비밀이다. 조금 변명하자면, 김양처럼 서울 출신이 아닌 사람들은 남산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제1전시관에서부터 제3전시관까지, 물 흐르듯이 흐르는 동선을 따라
기념관은 전체적으로 사진 촬영 금지 구역으로 중앙홀에서만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기념관에서 전체적으로 가장 인상이 깊었던 점은 2가지. 깔끔한 동선 정리와 문명의 이기를 적극 활용한 전시 내용이었다. 한 방향으로 물 흐르듯이 흐르는 동선을 따라가면 전시물을 빠트리지 않고 볼 수 있다. 크게 3개로 나눈 전시실은 전체적인 시간적 흐름을 아우르면서도 세부적인 내용을 잘 담고 있다.
먼저 중앙홀에서 오른쪽으로 들어서면 제1전시실이 시작된다. 여기서는 안중근 의사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과 출생, 가문에 대해 볼 수 있다. 안중근 의사의 가문은 대대로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 제2전시실로 올라가면 보이는 안중근 의사 활동도. 최근에 지은 전시실은 이렇게 직접 버튼을 눌러 영상을 띄우는 식의 체험형 전시가 잘 되어 있다.
한층 올라가면 제2전시실로 안중근 의사의 국내외 활동을 볼 수 있다. 제일 처음 보이는 것은 안중근 의사의 활동도. 지도 앞에 놓은 버튼을 누르면 안중근 의사 활동 시기에 따른 활동 범위 등이 표시된다. 그리고 동시에 당시 상황에 대한 설명글이 앞쪽에 있는 모니터에서 나온다.

▲ 안중근 의사가 만국공법을 따라 사로잡은 일본군 포로를 석방할 때를 재현한 전시물. 동작 감지 센서를 활용해 사람이 가까이 오면 소리가 흘러나온다.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점은 이런 체험형 전시였는데 특히 ‘동작 감지 센서’를 잘 활용하고 있었다. 사람이 움직이는 기척을 감지하면 당시 상황을 재현하기 시작하는 전시물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제2전시실에서는 안중근 의사가 일본군을 포로로 잡았다가 석방하는 당시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 안중근 의사의 단지한 손가락. 여기서 김양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금껏 안중근 의사가 쓴 혈서는 손가락으로 바로 썼던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손가락에서 흐르는 피를 받아 붓으로 쓴 것이었다. 아마도 김양과 비슷한 착각을 하는 사람이 분명 또 있을 것이다.

▲ 혈서로 썼던 태극기의 모습 재현. 중앙홀에 걸어놓은 태극기는 이를 확대한 것이다.
동의단지회에 대해 설명한 곳에서는 안중근 의사가 약지를 단지한 당시 상황과 함께한 동지, 그리고 혈서가 함께 전시되어 있다.

▲ 사람의 움직임을 감지하면 유리창 너머 전시물에서 소리가 나오며 하얼빈 의거 당시 상황이 재현된다.
이어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공적으로 삼고, 하얼빈에서 의거를 일으키는 모습은 제3전시관에서 볼 수 있다. 3층으로 들어서면 왼쪽에 있는 유리창 속에 하얼빈 의거 당시 상황을 재현한 전시물이 보인다. 사람이 들어서면 동작을 감지해 소리가 나며, 인형이 움직인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하얼빈 의거 후 안중근 의사 재판 당시 모습이 재현되어 있다.

▲ 당시 안중근 의사 재판 모습을 재현한 전시물. 사람이 다가가면 스피커에서 목소리 등이 흘러나오며 인형이 움직여 생동감을 더한다.

▲ 인형이 움직이며 말을 하는 뒤로는 당시 사진이 붙어 있다.
재판 당시 현장을 지나가면 뤼순 감옥을 재현한 곳이 나온다. 그곳을 지나면 안중근 의사와 관계를 맺은 인물들이 소개되며, 안중근 의사의 유묵 전시실이 이어지고, 모든 관람은 끝난다. 전체적으로 흐름이 출생에서부터 활동, 그리고 하얼빈 의거에 이어 순국까지. 물 흐르듯 소개가 되어 있다.
한 가지 안타까운 사실은 안중근 의사는 실제 묘가 없다는 사실이다. 중국 대련의 뤼순(여순) 감옥에서 순국한 후, 일제는 공동무덤에 의사의 시신을 묻었다. 그 뒤 시신을 찾기 위해 노력했으나 아직까지 찾지 못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김구 선생이 효창원(효창공원)에 마련해 둔 허묘(빈묘)에 넋을 모시는 영신제를 올려놓은 상태다.
토막 상식
의사(義士)는 의로운 지사, 열사(烈士)는 나라를 위하여 절의를 굳게 지키며 충성을 다하여 싸운 사람을 뜻한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성패와 관계없이 목숨을 걸고 무력으로써 적에 대한 거사를 결행한 사람이 의사, 직접적인 행동 대신 강력한 항의의 뜻을 자결로써 자신의 굳은 의지를 내보인 사람을 열사라 부른다. 예를 들면 안중근 의사, 윤봉길 의사, 민영환 열사, 이준 열사 등이 있다.
글, 사진. 김효정 기자 manacula@brainworl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