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뇌 vs 아버지의 뇌

남자의 뇌 vs 아버지의 뇌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남성의 뇌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브레인 34호
2012년 07월 03일 (화)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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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알다시피, 엄마가 되는 일은 여성의 인생을 뒤흔드는 혁명적인 사건이다. 일단 임신을 하면, 여성의 몸은 자동적으로 열 달 동안 태아를 잘 양육하여 출산할 수 있도록 단계적인 준비에 들어간다. 여성의 몸은 아주 자연스럽게, 아기가 엄마 뱃속에서 나오려고 발길질을 할 때 뇌에 적절한 호르몬을 분비해 엄마가 이에 현명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한다.

남자의 경우엔 어떨까? 과학 저널리스트 카이트 수켈Kayt Sukel은 “부모가 된다는 것은 여성이든 남성이든 앞으로 닥쳐올 모험에 대비할 수 있도록 자연스러운 ‘신경가소성’을 발휘하게 되는 사건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책 《더티 마인드 : 뇌는 사랑과 섹스, 관계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Dirty Minds : How Our Brains Influence Love, Sex and Relationship)》에서 아버지가 되는 경험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여성이 임신을 통해 육체적 변화를 맞을 때, 여성의 뇌에서도 이에 상응하는 중요한 변화가 있으리라고 누구나 예상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많은 동물실험에 따르면, 아버지의 뇌에서도 이와 유사한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남성의 뇌에서 ‘아버지의 뇌’로

최근 뇌의학 연구에 따르면, 아기가 태어난 후 며칠간 아기의 뇌는 물론이고 아버지의 뇌에서도 상당한 변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물론 그 변화의 정도는 아버지가 심리적으로든 실제적으로든 아기와 얼마나 친밀한 교류를 나누는지에 달려 있다.

관련된 실험결과를 하나 살펴보면, 아버지가 된 남성들은 이전보다 아기 울음소리를 예민하게 들을 수 있게 되었으며, 아기가 웃을 때면 뇌 회로가 사랑에 빠졌을 때와 유사한 방향으로 활성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아버지가 된 남성에게 일어나는 뇌 변화는, 어머니가 된 여성에 비해 그 정도가 약한 편이다. 이 분야의 연구자인 크레이그 킨즐리 박사는 부모가 되는 일이 남녀의 뇌에 어떠한 변화를 일으키는지에 대해 단적으로 이렇게 설명한다.

“그 변화를 그래프로 그려본다고 칩시다. 육아 경험이 없는 남성을 왼쪽 끝에 두고, 아이를 낳아본 여성을 오른쪽 끝에 둘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아이를 길러본 아버지의 위치는 어디쯤 될까요? 육아 경험이 없는 남성보다는 오른쪽에 위치할 수 있겠지만, 아무리 그렇다손 쳐도 아이를 출산해서 길러본 여성의 뇌 변화를 능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킨즐리 박사는 아버지의 뇌 변화가 어머니의 뇌 변화를 따라잡을 수 없는 이유를 육아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라고 설명한다. 가령 포유류의 세계를 살펴보라. 암컷은 초기의 수정에서부터 출산에 이르는 오랜 임신기간을 견뎌야 하며, 새끼를 낳은 이후에도 젖을 먹이고 보살피는 책임을 도맡아야 한다. 하지만 이에 비해 수컷이 갖는 아버지로서의 역할은 어떠한가? 암컷을 임신시키는 게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몇몇 포유류 수컷의 경우에는 암컷 못지않게 양육에 참여하는 경우가 있다. 킨즐리 박사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어린 자식을 돌보는 아버지는 성공적인 재생산의 가능성을 증가시키며 재생산을 최적화시킵니다. 따라서 필요에 따라 아버지의 역할도 바뀔 수 있지요. 생쥐의 경우만 해도 수컷과 암컷이 함께 어린 새끼들을  돌봅니다.

자연히 수컷 생쥐는 암컷과 마찬가지로 부모가 되는 순간부터 뇌에서도 적잖은 변화가 일어나지요. 그러므로 우리 인간 역시 아버지로서 정자를 제공하는 역할 이상의 몫을 하고 육아에도 활발하게 참여한다면 어머니 못지않은 뇌 변화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는 최근 연구에서 새끼가 갓 태어난 수컷 생쥐를 관찰했는데, 불과 며칠 사이에 뇌에서 새로운 뉴런 조직이 생성되는 것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는 수컷 생쥐가 자기 새끼와 한 공간에서 지낼 때에만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설령 새끼가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수컷은 자기 눈앞에서 새끼를 치워버리면 아무런 뇌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킨즐리 박사는 이러한 연구를 통해, 수컷 생쥐의 경우 새끼가 태어나면 후각 신경구(olfactory bulb)에서 새로운 뇌세포가 생성돼 자기 새끼의 냄새를 잘 맡을 수 있도록 뇌 기능이 조절된다는 것을 밝혀냈다. 또한 수컷 생쥐의 두뇌 기억센터인 해마에서도 새로운 조직이 생성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러나 인간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아버지의 뇌는 아기가 태어난 이후부터 변화하는 게 아니라 그 이전부터 변화를 시작한다. 이에 대해 의학자이자 신경심리학자인 루안 브리젠딘Luaan Brizendine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내가 임신을 했을 때부터 ‘남자의 뇌’에서 ‘아버지의 뇌’로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즉 프로락틴 호르몬을 더 많이 분비하며, 테스토스테론 호르몬 분비를 점진적으로 억제하기 시작하는 거죠.”


브리젠딘 교수는 자신의 책 《여성의 뇌와 남성의 뇌(The female brain and the male brain)》에서 이러한 현상에 대해 다음과 같은 해석을 내놓는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진화생물학자들은 인간의 경우, 생존하기 어려운 아기를 보호하고 갓 출산한 엄마를 돕는 게 갓난아기의 생존에 필수적이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추정합니다. 인간과는 다른 생태계에서 살아가는 나머지 포유류들은 흔히 자기 새끼를 돌보지 않고 또 다른 짝짓기 상대를 찾지요.”


프로락틴 호르몬은 남성의 뇌가 아버지의 뇌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분비량이 많아지는 호르몬이다. 이 호르몬은 갓 출산한 엄마의 가슴에서 젖을 생산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일란대학교의 루스 펠드먼Ruth Feldman 교수는 “프로락틴이 어머니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뇌에서도 일정한 역할을 한다는 연구가 최근 5년 동안 몇 건 보고 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프로락틴 호르몬의 분비가 아이들의 학습탐구 놀이에 관련되어 있다는 점을 밝혀내기도 했다. 프로락틴 수치가 높아지면 아버지는 아기가 탐구하고 놀 수 있도록 더욱 기꺼이 돕게 된다.


남성의 뇌가 아버지의 뇌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또 다른 호르몬이 바로 ‘옥시토신Oxytosin’이다. 옥시토신은 인간이 서로 교류할 때, 특히 피부접촉을 할 때 뇌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이다. 이 호르몬이 고조되면 아버지와 아기는 서로 정서적 결속력이 매우 강해진다.


또한 한 남자가 아버지가 되기까지는 바소프레신Basopressin 호르몬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호르몬은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증대시키고 부모로서 아기에 대한 보호 본능을 촉진시킨다.


카이트 수켈은 말한다. “여기에 대해 뇌의학자들이 내놓는 해석은, 부모의 뇌는 아기가 겪을 어려움과 아기에게 줄 보상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는 가설입니다. 이 호르몬이 더 많이 분비되고 수용체가 증가할수록 부모는 아기를 잘 돌볼 뿐 아니라 아기와의 결속력도 강해집니다.”

아버지와 아기의 유대감

사실 생물학적 관점에서 볼 때, 아이를 임신시키고 나면 아버지의 역할은 끝난다. 그러나 최근의 많은 연구들은 아버지가 적절한 역할을 해야 아이의 삶에 도움을 주며, 어머니 혼자 아이를 키웠을 때보다 아이의 인성이나 행동도 건전하게 발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결과를 보여준다. 브리젠딘 교수는 이에 대해 “물론 많은 아이들이 아버지 없이도 훌륭하게 자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적절한 역할을 하면 아이의 교육적인 성공 기회가 더 커진다는 점은 명확합니다.”

아버지가 자기 자녀를 사랑하면 그 아이는 뇌 발달이 더욱 향상되며, 아버지 자신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와 같은 사실은 최근 쥐와 같은 설치류의 일종인 ‘데구’를 통해 수행한 실험에서도 입증되었다. 데구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수컷과 암컷이 공동으로 양육하는데, 수컷은 새끼를 따뜻하게 하고 털을 쓰다듬어주는 등 이런저런 보살핌을 제공한다.

그런데 연구결과에 따르면, 새끼 데구를 아버지에게서 떼어놓고 키웠더니 뇌 발달에 있어서 아버지와 한 공간에서 자란 다른 데구와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고 한다. 즉 성장 과정에서 아버지와 떼어놓은 새끼 데구는 ‘안와전두피질(orbitofrontal cortex)’과 ‘체감각피질(somatosensory cortex)’의 시냅스들이 거의 발달하지 못했다.


이 시냅스들이 발달하지 않으면 결정을 내리거나 행동에 따른 보상체계를 이해하고 감정을 표출하는 데 장애가 생긴다. 몇몇 학자들은 이 연구결과가 아버지 없이 자란 아이들이 왜 사회에 적응하는 데 문제가 생기는지를 설명해준다고 조심스럽게 말한다. 이에 대한 카이트 수켈의 견해도 일맥상통한다.

“아직까지 아버지와 아이의 유대감 형성 이면에 숨겨진 정확한 신경생물학적 기전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현재까지 밝혀진 것은 바소프레신, 옥시토신, 그리고 프로락틴이 아버지와 아이 간의 유대감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이며 감정이나 보상 기전에 관련되어 있다는 것까지입니다.

그러나 그 호르몬들이 정확히 어떤 작용을 해서 그런 마법을 이끌어내는지, 그리고 각각의 호르몬들이 함께 작용하는지 아니면 별개로 작용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알지 못합니다.”

친부모냐, 양부모냐?

아기들은 스스로 옥시토신을 생성하지 못하고 어머니의 젖을 통해 얻는다. 옥시토신은 조화로운 관계를 만들어 어머니와 아이가 유대감을 형성하게 하는 호르몬이다. 하지만 그 성분이 단순히 모유에만 함유되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 실험에 따르면 부모가 아이를 돌보지 않으면 아기의 옥시토신 분비가 줄어들지만, 부모가 안고 젖병으로만 젖을 먹여도 아이의 옥시토신 분비는 그보다 높았다.

이처럼 엄마 아빠와 나누는 피부접촉은 아기의 옥시토신 생성에 필수적이다. 이 연구는 매우 중요한 점을 시사해준다. 왜냐하면 옥시토신이 생성될 수 있도록 보살핌을 받지 못한  아기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Cortisol 수치가 훨씬 높아지기 때문이다. 아기 때 코르티솔이 많이 분비되면 뇌 자체에 변화를 일으켜 남들보다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되며, 높은 혈압과 급하게 뛰는 심장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버지의 역할이 절대적이며 대체 불가능한 것이라고 단정 짓는 것은 위험하다. 카이트 수켈의 견해는 여기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듯하다. “대부분의 포유류 새끼들은 집단으로 양육됩니다. 즉 아버지, 어머니, 형제자매, 숙모, 삼촌, 할아버지, 심지어 사촌들도 새끼를 키우는 데 관여합니다.” 그는 반드시 어머니와 아버지가 함께 양육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주위에 아기를 더 잘 보살피고 부모의 짐을 덜 수 있는 둘 또는 그 이상의 돌보는 이들이 있는 게 이롭다고 말한다.


“물론 아이가 자신을 돌보는 사람과 선택적으로 유대감을 가지며, 특히 어머니 또는 아버지와 특별한 애착관계를 형성합니다. 하지만 어머니와 갖는 애착관계를 할머니, 아버지, 숙모 등 다른 사람과는 형성하지 못한다는 증거도 없습니다. 뇌의 가소성은 환경에 대한 적응력입니다. 따라서 반드시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 또는 아버지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주위에 누가 있는지가 신경생물학적으로는 더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생물학적인 부모가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말인가? 이에 대한 브리젠딘 박사의 의견은 이렇다.

“아버지가 주위에 없으면 아기는 잘 자라기 어렵습니다. 문명화가 덜한 원시 종족의 경우에는 아버지가 없는 상황에서 아기가 죽을 확률이 세 배나 더 높아집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스티브 잡스나 래리 엘리슨에서 볼 수 있듯이 입양된다고 해서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입양한 부모가 아기를 사랑하고 정성껏 키우면 아이는 자신의 잠재력을 충분히 펼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습니다.”


모든 전문가들은 어린 시절의 경험이 뇌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왜냐하면 아이를 학대하거나 유기하면, 아직 덜 발달한 뇌에 유독성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돼 ‘안와전두피질’이나 ‘뇌량’이 충분히 자라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버지가 자녀의 곁에 있어줄 때 아이는 육체적, 정서적, 심리적으로 더 나아지는 것이 당연하다. 브리젠딘 박사는 말한다.

“아버지로서의 경험이 남성의 뇌에 일으키는 변화는 마치 ‘자전거 타기’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육아를 경험한 아버지들은 이미 자신의 뇌에서 해당 부분을 충분히 활성화시켰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그 능력을 끄집어내서 쓸 수 있지요.”

이 기사는 국제뇌교육협회(IBREA)가 발행하는 영문 계간지 <Brain World>와 기사 제휴를 통해 본지에 게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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