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는 남자가 크지만 뇌량은 여자가 더 크다?

뇌는 남자가 크지만 뇌량은 여자가 더 크다?

여자의 뇌, 남자의 뇌

뇌2003년6월호
2010년 12월 06일 (월)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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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하는 곳은 한강변에 자리잡은 서울아산병원이다. 내 방은 15층에 있으므로 나는 유유히 흐르는 한강, 그리고 그 강을 가로지르는 멋진 올림픽대교를 내려다 볼 수 있다. 평상시에 그 다리는 언제나 시원하게 뚫려 있다. 하지만 출퇴근 시간에는 차들이 몰려들어 굼벵이 걸음을 한다. 추석이나 구정 때는 수많은 차들이 이 다리를 뒤덮어 아예 움직일 생각도 하지 않는다.

우리의 뇌도 이와 비슷하다. 지난 호에 말했듯 우리 뇌는 왼쪽 뇌, 오른쪽 뇌로 나누어져 있다. 그 뇌들은 서로 전문적 기능을 한다. 한강 다리처럼 이러한 왼쪽, 오른쪽 뇌의 신경 세포들을 서로 연결해 주는 다리가 있는데 이를 우리는 ‘뇌량’이라 부른다. 뇌량은 수백만 개의 신경다발 덩어리로 구성된다. 어떤 일을 하려면 전문가들이 서로 토의를 해야만 하듯이 뇌 신경세포들도 서로 상대방과 연락을 취해야 한다. 즉 뇌량은 좌우 뇌 상호간의 정보 교환을 신속하게 이루도록 하는 구조물이다. 올림픽대교의 경우처럼 뇌량 역시 한가하게 뚫려 있어야 좌우 뇌의 정보 교환이 신속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우리는 뇌량의 기능에 대해서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으며, 20세기 초에는 더욱 그랬다. 당시 해부학자였던 스피츠카, 빈 등의 학자들은 당대 뛰어난 학자였던 라이디 교수의 뇌를 부검한 결과 뇌량의 크기가 다른 사람에 비해 무척 크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들은 단순히 뇌량이 큰 사람은 지능이 높은 것으로 생각해 버렸다. 그들은 또한 백인과 흑인, 남자와 여자의 뇌량의 크기와 모양을 비교하며 뇌량의 타입을 나누기도 했다. 당시의 실험 기술과 지식을 생각할 때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결과들이지만 아무튼 뇌량이라는 조직에 최초로 관심을 가진 사람은 이들이었다.


남녀의 뇌량에 차이가 있다는 첫 주장

그러나 뇌량이 학계의 진지한 관심을 끌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이 구조물이 여자가 남자보다 더 크다는 주장 때문이었다. 이런 주장은 1981년 드-라코스테-우탐싱 (de Lacoste-Utamsing)이라는 괴상한 이름을 가진 미국 학자에 의해 최초로 제기되었다. 그는 동료 홀로웨이 Holloway 교수와 함께 부검된 남녀의 뇌량의 크기를 조사한 후 그 결과를 신경학학회에 발표했다. 그리고 이듬해 <사이언스>지에 게재하였다. 그들은 뇌의 크기는 남자가 여자보다 크지만 뇌량의 크기, 특히 뇌량의 맨 뒤쪽 부분인 팽대(splenium) 부분은 여자가 더 크며 통통하게 생겼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또한 뇌량의 이 부분은 후두엽, 두정엽 등 뒤쪽 부분 뇌의 정보를 교환하는 부분이므로 시각-인지 기능이 남녀에서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고 설명했다. 이것은 학계에서도 중요한 뉴스였지만 그보다 더 흥분한 것은 언론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학계와 달리 언론은 기사화에 있어 너무 앞서가는 면이 있다. 조심성 많은 과학자들은 어떠한 논문이 발표되어도 이를 완전히 믿지 않는 버릇이 있다. 똑같은 결과가 다른 학자들에 의해 반복되는 경우 비로소 믿기 시작한다. 반면 언론은 발표된 내용이 얼마나 독자에게 흥미로운가에 관심이 있으며, 그 내용의 진위에 대해 의구심을 갖기보다는 남보다 빨리 특종 기사를 써내는 데 주된 관심을 둔다.

드 라코스테-우탐싱과 홀로웨이의 결과가 신문, 잡지 등에 다투어 보도되면서 그들은 유명해졌다. ‘필-도나휴 쇼’에 초대되는 등 유타 주의 시골 학자들이 순식간에 스타가 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연구 결과는 결코 회의적인 과학자, 의사들을 만족시킬 수준은 아니었다. 우선 그들이 조사한 대상은 그 수가 너무 적었다. 불과 14명이었다. 그나마 이들 대상자가 과연 정상적인 사람들이었는지 아닌지 그 샘플링의 조건이 명확히 기술되지 않았다. 또한 이들은 남녀의 뇌량 크기의 차이가 확률 변수 0.08 이하로 의미 있다고 했는데 일반적으로는 확률 변수 0.05 이하가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것이다. 0.08 정도라면 ‘차이가 있을 것 같다’ 정도 밖에는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끝나지 않은 논란

이들의 발표 이후 뇌량의 남녀 차이에 관한 연구는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최근에는 MRI를 사용하여 비교적 쉽게 살아있는 사람의 뇌량과 뇌를 분석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많은 논문이 발표되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연구자들마다 너무나 달라 무엇이 진실인지 도무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여기에 대한 논란이 그치질 않자 이러한 모든 논문을 종합 분석해서 결론을 짓고자 하는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 역시 의문을 풀어주지 못한다. 1995년 멤피스 대학의 드리센 Driesen과 라츠 Raz 교수는 그 때까지 발표된 43편의 연구 결과를 모두 분석해 보았다. 그 결과 절대적인 뇌와 뇌량의 크기는 남자가 크지만 뇌의 크기를 감안한 상대적인 뇌량의 크기는 여자가 더 크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1997년 알버타 대학의 비숍 Bishop과 왈스텐 Wahlsten 교수 팀은 상이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들은 남녀의 뇌량에 차이가 있다는 드 라코스테-우탐싱과 홀로웨이의 주장은 증명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이처럼 연구자들마다 의견이 분분한 이유는 이러한 연구가 여러 가지 방법론적인 문제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남자와 여자의 뇌량의 부피를 재서 이를 비교해 보는 것이 무엇이 그리 어렵냐고 생각하겠지만 문제가 그리 간단치 않다.

첫째, 우선 부검 (환자가 사망한 후 조직을 검사함)을 해서 조사한 경우 부검을 한 대상은 대개 정상인이 아닌 병자이므로 그러한 환자의 병 자체가 뇌량의 크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둘째, 환자가 사망한 지 얼마나 지난 뒤에 뇌량을 검사했느냐에 따라 뇌량의 크기에 차이가 생긴다.

셋째, 뇌량의 크기는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 사이에 다를 수 있는데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를 나누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예컨대 밥은 오른손으로 먹고 탁구는 왼손으로 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넷째, 뇌량의 크기는 늘 일정한 것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점점 자라며 늙으면서 작아진다. 그런데 뇌량이 커지고 작아지는 속도는 남녀간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다섯째, 뇌량 크기에서 개인 간 차이는 무척 크다. 따라서 적은 샘플을 가지고 연구하면 오류에 빠지기 쉽다.

여섯째, 뇌량의 각 부위를 정의하는 문제가 연구자 마다 다르다. 예컨대, 뇌량에서 팽대와 나머지 부분을 구분 짓는 뚜렷한 선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연구자들은 팽대 부분을 정의하는 데 있어 각자가 임의로 정한 방법을 쓰고 있는 것이다.


과학 연구라는 것이 대개 그렇듯 이처럼 언뜻 보아 쉬워 보이는 연구 안에도 복잡한 문제들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아직까지도 남녀의 뇌량에 차이가 진정 존재하는지는 완벽하게 알려지지 않은 셈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남녀의 뇌량에 차이가 있다고 믿는 견해가 더 우세한 것 같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글│김종성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과장. 울산의대 교수. 저서로 〈뇌에 관해 풀리지 않는 의문들〉, 〈뇌졸중의 모든 것〉, 〈신경학 교과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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