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적 감정회로 혹사하면 우울증 걸린다

부정적 감정회로 혹사하면 우울증 걸린다

뇌2003년5월호
2010년 12월 08일 (수)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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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은 성인에서 가장 흔한 정신과적 장애다. 다이애나 비도 장국영도 우울증이었다고 하고, 대구 지하철 참사를 일으킨 범인도 우울증이 있었다 한다. 나도 우울증을 앓았었다. 하지만 우울증이란 일차적인 순수한 우울증도 있지만, 나처럼 성격적인 문제에서 비롯되거나 사고로 인해 유발된 이차적인 우울증이 더 많기 때문에 일차적인 우울증의 예방에 대한 이야기만 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이다. 또한 털어서 먼지 나지 않는 사람 없듯 누구나 조금은 우울할 수 있지만, 떨어지는 먼지의 양이 무척 많은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우울증은 반드시 힘든 일이 있어야만 생기는 것도 아니고, 마음만 강하게 먹으면 나을 수 있는 병도 아니다. 우울증은 귀신이 들린 것도 아니지만, 절대로 고쳐질 수 없는 병도 아니다. 또한 우울증이라고 모두 맥없이 쳐져 있으면서 우울해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어떤 경우에는, 특히 어린 아이들은 짜증을 심하게 내고 산만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너무 산만하게 이야기를 전개시키고 있나?

우울증의 원인과 위험인자와 증상들은 도처에서 너무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니 여기에서는 우울증을 임상적으로 어떻게 개념화하여야 하고, 어떻게 치료가 이루어지는지 혹은 어떻게 예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간략하게만 이야기하도록 하자.

우울증에 걸리지 않으려면 재수가 좋아야 한다?

우선 대부분의 정신적인 문제는 타고나는 이유 50%, 성장과정에서의 잘못 50%라고 보면 타당하다. 그러니 부모나 가족 중에 우울증 환자가 있다면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높을 것이다. 우울증을 가진 사람과 함께 산다는 것은 매우 우중충한 일이다. 감정은 전염되기 때문이다. 특히 엄마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만 3세까지의 기간에 우울한 일을 겪거나 우울한 사람과 밀착되어 살았을 경우에는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 시기에 뇌의 기본 구조가 형성되므로. 그러니 우울증에 걸리지 않으려면 재수 좋게 정신적으로 건강한 부모에게서 태어나야 한다.

뇌는 전기 회로다. 그리고 그 회로는 대부분의 경우 음과 양의 균형을 맞추고 있다. 여기서 음과 양의 균형이라 함은 긍정적인 기분으로 가는 회로와 부정적인 감정으로 가는 회로가 그 양과 질에서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긍정적인 감정의 회로가 너무 우세하면 실없거나 바보 같은 사람이 될 것이고, 부정적인 감정의 회로가 우세하면 우울하거나 불안하거나 화가 난 사람이 될 것이다.

부정적인 감정의 회로들 중에서도 세로토닌과 노르에피네프린이 다니는 회로들은 우울과 슬픔의 감정을 담당하는 것 같고, 가바가 다니는 회로들은 주로 불안과 분노의 감정을 담당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은 세로토닌이나 노르에피네프린이 다니는 회로들을 너무 많이 써서(혹은 타고나서) 그 회로들이 16차선 대로처럼, 혹은 보디빌더의 이두박근처럼 확장되어 있고, 긍정적인 감정으로 가는 회로는 다리를 깁스했을 때 근육이 녹아 얇아지듯이 오솔길처럼 얇아져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본래 그렇게 타고났을지도 모르고, 살면서 재미있는 일이 별로 없어서 그렇게 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어찌되었든 도대체 한 인간이 왜 긍정적인 감정의 회로는 잘 쓰지 못하고 부정적인 감정의 회로만 혹사시키는지, 그래서 중립적인 자극까지도 자동적으로 부정적인 것으로 처리하게 되는지, 그 이유를 찾아서 그것을 없애거나 피해가는 방법을 찾는 것이 우울증을 치료하거나 예방하는 방법일 것이다. 아니면 아예 이유를 불문하고 긍정적인 감정을 많이 느끼게 도와주거나… 하지만 그것은 현실적으로 그리 쉽지 않을 것 같다. 프로이트 할아버지 때부터 연구된 우울증의 원인은 90년대에 이르러 (1)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나타나는 애도반응을 제대로 겪지 못했을 때, (2) 대인관계에서 갈등을 겪으며 분노를 느끼고 있을 때, (3) 역할의 변화에 적응을 잘 하지 못해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 하고 있거나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기 힘들 때, (4) 대인관계의 기술 부족으로 소외되고 있을 때 등으로 우울증의 원인을 나누어 이해하고, 그 원인에 따라 치료하자는 대인관계 정신치료 이론으로 종합되었다.

그렇다면 (1)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복합적인 감정을 그 대상에게 적절히 표현하고, 오직 한 사람만이 아닌 여러 인적 지지기반을 마련해 놓고 있으며, (2) 반복되는 갈등의 이유들을 잘 이해하고, 슬기롭게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고, 좀 더 편안한 상황으로 자신을 이끌고 가며, (3) 적응을 가로막는 고정관념과 태도를 수정하여 적응력을 키워서 자신감을 회복하고, (4) 스스로의 힘으로 그러한 것들이 잘 되지 않을 때에는 좀 더 현명하고 도움이 되는 누군가의 힘을 빌려 스스로를 보호해야 할 것이다. Easy said than done!

내 편이 되어 줄 사람과 작전회의를 하라

바쉬라는 자기심리학 정신분석가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잘 이해하고, 그 상황에서 좀 더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을 잘 판단하여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때 그 방법에 대한 실력이 늘고, 그래서 타인들로부터 인정을 받을 때 자신감이 생기며, 더 상황을 잘 파악하게 되고,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는 더 좋은 방법들을 생각할 수 있게 되고, 더 발전하여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발전의 순환을 거듭할 수 있게 된다고 하였다. 아마도 위에서 한 이야기를 종합해 놓은 이야기일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건강하고 균형 잡힌 부모에게서 태어나 큰 시련 없이 잘 자라며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경험과 성공하는 경험을 많이 해온, 인구의 약 60%의 사람들) 이러한 발전을 자동적으로, 너무도 쉽게 해낸다. 하지만 나머지 40% 정도의 사람들은 컵의 맥주가 반밖에 안 남았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반이나 남았다고 생각하라는 긍정적 사고를 하는 것만큼이나 자신을 지키고 발전시키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이럴 때에는 자신보다 현명하고 자신의 편이 될 수 있는 누군가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며 함께 작전회의를 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운동, 취미생활, 좋은 배우자와 친구, 명상, 종교, 치료 등등 우울증을 극복하고 예방할 수 있는 방법들은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행위, 대인관계, 신과의 관계를 통해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인정할 수 있는 삶으로, 의미 있고 재미있는 삶으로 만들어 가려는 노력일 것이다.

글│김창기  김창기정신과의원 원장. 그룹 ‘동물원’ 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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