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손을 씻는 사이

* 재미있는 두뇌상식

브레인 23호
2011년 09월 08일 (목)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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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철이 되면 배탈이 나기 쉬우니 손을 자주 씻으라는 얘기를 방송에서 때때로 듣게 된다. 그러잖아도 여름에는 더위 때문에 손을 더 자주 씻게 된다. 그런데 이 손 씻기가 위생의 측면 외에 우리 감정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 보고가 있어 흥미를 끈다.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감정에 대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자기 정당화를 하려고 할 때 손을 씻으면 이런 정당화에 일종의 브레이크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자기 정당화의 욕구

부부 싸움을 한 부부에게서 한쪽의 하소연만 들어서는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왜냐하면 대부분 자신이 옳고 상대방은 틀렸다는 전제하에 하소연을 하기 때문이다. 한 예로, 부부들에게 자신의 가사 활동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 물었을 때 아내들은 90퍼센트, 남편들은 40퍼센트쯤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합이 1백 퍼센트를 넘는 이유는 자신이 한 일을 더 많이, 그리고 더 오래 기억하는 왜곡 현상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자신의 선택에 따른 결과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고 그에 맞는 증거를 찾는 것은 누구에게나 인지상정이다.

이런 자기 정당화는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일어나기 때문에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누구든 자기 정당화에 빠져들기 쉽다.









손을 씻으면 자기 정당화의 욕구가 사라져

미국 미시건대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전공하는 스파이크 리는 자기 정당화와 손 씻는 행동의 상관관계를 연구했다. 먼저 40명의 학생에게 10장의 CD를 나눠주고 자신이 좋아하는 순서대로 순위를 매기게 했다. 그리고 5위와 6위로 순위를 매긴 두 장의 CD 가운데 하나를 골라 가지라고 했다.

그런 다음, 실험 대상이 된 학생의 반은 비누로 손을 씻게 했고, 나머지 반은 비누를 그냥 바라만 보고 제자리로 돌아오게 했다. 그리고 CD 10장의 순위를 다시 매기도록 했다.

이 실험의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손을 씻지 않은 학생들의 경우 자신이 선택한 CD를 이전 순위보다 평균 2단계 올렸고, 선택하지 않은 CD는 평균 2단계 순위를 떨어뜨렸다.

그런데 손을 씻은 학생들은 순위를 거의 바꾸지 않았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이는 손을 씻는 동안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하려는 마음까지 씻어냈기 때문이라고 연구자는 설명한다.

손 씻는 행동이 뇌에 어떤 자극을 줌으로 인해서 자기 정당화의 욕구에 브레이크가 걸린다는 것인데, 연구자가 그 메커니즘까지 밝혀내지는 못했지만 이 실험 결과에 공감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평소에 생각을 정돈하고 싶거나 기분을 전환하고 싶을 때, 또는 긴장된 자리에 나아가기 전에 무심코 손을 씻는 습관이 있는 이라면 특히 ‘아!’ 할 것이다.

좋아하는 CD에 순위를 매길 때 일어나는 자기 정당화에는 큰 갈등 요소가 없다. 그런데 자기 정당화가 타인이나 사회 관계 속에서 일어날 때는 심각한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 이 갈등을 줄이는 데는 손 씻기만으로는 부족해 보이는데, 어떤 방법이 좋을까?









손 씻기보다 더 나은 방법

만약 자기 정당화의 결투장인 부부 싸움을 하는 도중에 비누 거품을 내며 손을 씻는다면 감정을 가라앉히는 효과가 생겨 싸움의 강도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자동차 과속 방지턱처럼 말이다.

그러나 손 씻기의 효과는 거기까지일 것이다. 최선의 방법은 자신의 견해만이 옳다는 주장을 멈추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실행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왜냐하면 사람의 마음은 한번 결정하고 나면 바꾸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오프라 윈프리의 사례를 보자. 그녀는 자신의 방송 프로그램에서 홍보한 책과 그 책 저자의 말이 거짓이었음이 밝혀졌을 때 그 일의 책임이 출판사와 제작진에게 있으며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곧 그녀는 ‘진실이 무엇인지 아는 것은 내 책임이며,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은 내 잘못’이라고 시인했다. 그녀는 처음에는 자기 정당화에 빠졌으나 거기서 금방 빠져나왔다.

살아가면서 자기 정당화에 빠졌음을 시인해야 할 때가 있다. 이를 최소화하려면 뇌의 유연함을 길러야 하고, 자신의 욕망과 이기심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성찰의 힘을 지녀야 한다. 이는 훈련으로 가능하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글로 써보는 것도 좋고, 명상 수련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유연한 뇌는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채는 순간 이를 인정한다. 인정함으로써 자기 정당화에 매몰되지 않고 새롭게 변화할 수 있다.

글·김보희 kakai@brain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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