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퍼 연 채 나오면 건망증, 닫은 채 일보면 치매?

지퍼 연 채 나오면 건망증, 닫은 채 일보면 치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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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인 18호
2010년 12월 09일 (목)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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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온통 인터넷 바람으로 난리다. 초록별 지구촌 전체가 1년 365일, 하루 24시간 내내 한순간도 쉬지 않고 들썩인다. 이처럼 손쉽게 세계화의 물결이 일어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원동력은 과연 무엇일까?

말할 것도 없이 ‘컴퓨터의 발전’ 덕분이다. 그 신기하고 오묘한 재간 덩어리가 하루가 다르게 업그레이드를 하더니 이제는 판단하고 생각하며 거의 스스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나게 업그레이드한 컴퓨터라 하더라도 그 작동 원리는 의외로 단순해 각종 정보의 ‘입력-저장-재생’ 이 세 단계를 반복하는 것뿐이라고 할 수 있다.

원하는 정보를 정확히 제공받기 위해서는 이 세 단계 중 어느 하나라도 잘못 되어서는 안 된다. 입력되는 정보가 처음부터 빈약하고 결점 투성이인 경우도 있고 애써 입력한 정보가 바이러스 침투나 물리적 손상으로 없어질 수도 있다. 또한 어느 위치에 정보가 저장되어 있는지 몰라 찾아 헤매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런 세 단계의 과정은 사람의 기억 형성 과정과 놀랄 정도로 동일한 모습을 보여준다.


인간의 뇌와 컴퓨터가 정보를 저장하는 방식

일반적으로 기억 형성 과정은 대뇌 안의 ‘변연계(Limbic System)’라 불리는 구조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특히 해마(Hippocampus)라는 부위는 컴퓨터의 캐시 메모리 Cash Memory 영역처럼 잠시 동안만 빠르게 기억을 등록시켜 입력된 주소를 파악하는 역할을 한다. 이곳에 잠시 머무는 기억을 ‘초단기 기억’이라 부른다.

이보다 좀 더 오랫동안 작업을 해야 하는 정보들은 변연계 주변 장소에 일단 저장하게 되는데 이를 ‘중단기 기억’이라 한다. 이는 컴퓨터의 램 메모리 Ram Memory와 같은 것이다. 모든 작업이 완료되면 그 결과를 하드 디스크나 저장용 USB에 파일 형태로 보관하는 것처럼 장기 보관이 필요한 기억들은 대뇌의 여러 기억 창고로 분산해 저장한다. 이렇게 저장한 기억들을 우리는 필요할 때마다 불러내 재생하여 활용하는데 이를 ‘장기 기억’이라 부른다.

어떤가? 놀랄 만큼 컴퓨터의 작동 원리와 일치하지 않는가! 따라서 기억에 문제를 보이는 어떤 질환도 이 세 단계의 과정으로 설명할 수 있으며, 치료 방향도 선택할 수 있다. 컴퓨터의 램을 확장하거나 하드 디스크 수리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기억력을 관리하라

임상에서 자주 접하는 기억력 장애는 뇌세포가 점차 감소되어 나타나는 노인성 건망증과 소위 치매 증상이다. 이는 중단기 기억을 저장하는 과정과 장기 기억을 재생하는 과정에 장애가 일어난 것이다. 치료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램이나 하드 디스크 부품 교환하듯이 뇌를 교환할 수는 없지 않은가.

또 하나 흔히 접하는 경우가 이른바 ‘주부 건망증’이다. 아침 TV 프로그램에 단골로 등장하는 주제인데, 엄격히 말하면 이를 기억력 장애로 볼 수는 없다. 왜 ‘주부 치매’나 ‘주부 기억력 장애’가 아닌 ‘주부 건망증’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겠는가. 호소하는 얘기들을 들어보자. “전화기를 한참 찾는데 냉장고에서 나오잖아요”, “자동차 키를 꽂고 문을 닫았어요”, “ 가스레인지 불을 안 끄고 나와 큰일 날 뻔했어요”, “오긴 왔는데 뭘 하러 여길 왔는지 모를 때가 있어요” 등등 내용이 가지각색이다.

하지만 모든 경우에 근본적인 문제는 그 당시 상황의 내용이 손상된 것이 아니고 그 내용을 찾을 수 있는 단서를 기억 못하는 것이다. 그러다 뭔가 ‘힌트’가 될 만한 것을 보거나 듣게 되면 “맞아! 그랬지” 하면서 당시 상황을 파노라마처럼 좍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건망증은 기억 장애와 구분된다. 건망증은 치매처럼 뇌세포에 직접적인 손상이 일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당시의 집중력 정도에 따라 증세가 좌우된다.

시험 때 불안하고 산만한 마음으로 한두 시간 공부하는 것보다 평온한 상태에서 10분이라도 집중하는 것이 더 좋은 성적을 낸다는 사실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또한 뇌파 검사에서도 알파파 상태가 베타파 상태보다 집중력이 높아지므로 암기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증명할 수 있다. 따라서 건망증은 적절한 노력을 기울이면 상당히 개선할 수 있으며, 효과적인 예방법도 알려져 있다.
 

1. 스트레스로 인한 불안, 우울, 불면증을 경계하라. 이는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주범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여유를 갖도록 노력하자.

2. 뇌로 가는 산소 공급을 방해하지 말라. 규칙적으로 유산소 운동을 하고 흡연, 탁한 공기를 피하자.

3. 영양소를 균형 있게 골고루 섭취하라. 특히 비타민 C와 E, 미네랄과 신선한 야채, 과일을 즐기자.

4. 과음은 삼가자. 알코올 중독 상태가 아니더라도 양주 세 잔 이상은 뇌세포를 매우 힘겹게 한다.

5. 머리에 물리적 충격을 가하지 않도록 주의하자. 특히 교통사고 등으로 인한 충격은 불안 장애와 집중력 저하를 유발한다. 상습적인 구타도 마찬가지다.

6. 폐경기 여성이라면 호르몬 치료 상담을 받아 보기를 권한다. 폐경기의 호르몬 치료는 골다공증뿐 아니라 치매 위험률을 줄인다는 보고들이 있다.

7. 정신 활동을 꾸준하고 활발하게 하자. 고스톱이 치매 예방에 좋다고 한동안 노인정마다 법석이었는데, 책을 읽거나, 숫자 100에서 7을 반복적으로 빼가는 연습 등 자신이 즐길 수 있는 방식을 찾아 꾸준히 뇌의 정신 기능을 활성화 하자.

글·조태영 연세신경과 원장, 신경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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