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먼저? 정신이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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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인 20호
2010년 12월 17일 (금)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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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이 있다. 몸이 건강해야 정신도 건강하다는 뜻으로 흔히 인용되는 문장인데, 이로 인해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왜곡될 수 있다는 비판도 있다. 한편 육체 건강보다 정신 건강 함양을 우선시하는 주장도 있다. 의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둘 다 맞는 얘기라고 할 수 있다. 정신과 육체는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의식, 인지, 사고, 기억, 정서 등의 정신적 현상은 몸, 그중에서도 신경계, 특히 뇌가 담당하는 기능이다. 물론 사고가 건전해야만 건전한 생활을 하게 될 것이고 그래야 몸도 건강해지겠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몸이 건강해야만 뇌를 비롯한 신경계도 정신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다. 육체가 없는 정신을 상상할 수 없고, 정신이 없는 육체 또한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생명은 물질과 에너지 그리고 생명 정보가 질서 정연하게 결합된 유기체기 때문이다.


한의학에서 본 ‘뇌’
한의학에서도 생명을 구성하는 주된 요소인 정精, 신神, 기氣, 혈血이 상호 의존적으로 각각의 요소에 서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본다. 이 중에서 정보적인 측면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신의 원천을 뇌로 보았다. 학파에 따라서는 심心을 중요하게 여기는 경우도 일부 있었다.

뇌를 신의 원천으로 본 대표적인 견해를 소개하자면, 《동의보감》 외형편 권 1의 두頭편에서 ‘머리는 천곡天谷으로서 신을 저장한다. …여기서 신이란 일신一身의 원신元神을 말한다. …사람은 원신이 있으면 살고 없어지면 죽는다. …천곡은 원궁元宮으로 원신의 집이며, 영성靈性이 존재하는 곳이므로 신의 요처다’라고 한 내용을 들 수 있다.1 여기서 말하는 머리나 천곡은 뇌를 말하는 것이다.

뇌腦라는 한자를 자세히 보자. 왼쪽은 몸을 뜻하고, 오른쪽은 머리카락 아래 상자 모양의 두개골 안에 X자가 들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X는 수학에서 미지수를 나타내는 기호다. 블랙박스 안에 들어 있는 미지의 장기가 바로 뇌인 것이다. 신神이라는 한자는 시각 정보인 시示와 청각 정보인 신申이 합쳐진 것으로, 시청각 정보 등의 각종 정보를 대표하여 나타낸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신이 거하는 뇌는 각종 정보를 받아들여서 처리하고 저장하는 블랙박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운동을 하면 머리가 좋아지는 이유
2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신경세포는 재생되지 않는다고 알려졌지만, 최근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신경세포도 새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또한 불특정한 신체 운동이 기억력과 인지 능력을 전반적으로 향상시킨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노인들을 대상으로 실험해본 결과 걷기, 자전거 타기, 계단 오르기 등의 일상적인 동작이나 레저, 스포츠를 통해 신체 활동을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기억력이 좋고, MRI 촬영 결과에서도 기억력과 관계되는 대뇌피질의 두께가 두꺼운 것으로 나타났다(2).

또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는 수업과 수업 사이의 휴식 시간 동안 그냥 쉬는 것보다는 약간의 운동을 하는 것이 인지력을 더 향상시켰는데, 이런 효과는 인지력이 낮은 아이들에게서 더 크게 나타났다.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기구를 이용해서 체육관이나 운동장에서 정식으로 하는 운동이 아니더라도 쉬는 시간에 잠시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이러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3). 이 결과대로라면 쉬는 시간에도 공부만 하는 것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이 성적 향상에 더 도움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이렇듯 운동을 하면 머리가 좋아지는 이유가 뭘까? 원인을 제공하는 유력한 후보 중의 하나가 BDNF(Brain-Drived Neurotrophic Factor)라는 물질이다. 신경의 발달과 뇌의 가소성을 조절하며 학습과 기억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 물질은 근육에서도 만들어지는데 운동을 하면 더 많이 생긴다고 한다. 이 물질은 뇌의 시상하부라는 부위에 작용해서 체중 조절과 에너지 대사 조절에 관여할 뿐만 아니라, 말초기관들에서도 에너지 대사 조절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치매나 우울증 같은 신경 퇴행성 질환이나 비만, 제2형 당뇨병 같은 대사 질환 환자들의 혈중 BDNF 농도가 낮은 것이 이 같은 설명을 뒷받침한다(4).

쥐를 이용한 실험에서도 운동을 많이 시키면 기억력과 인지력이 향상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운동을 시킨 쥐의 뇌조직을 검사해보면 새로운 기억을 형성하는 데 필수적인 뇌의 영역인 해마 부위에서 BDNF와 함께 신경세포의 생성이 증가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5).

이렇게 정신과 육체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변화한다. 생각을 바꾸면 행동과 습관이 바뀌고 운명까지 바뀐다는 말이 있다. 운명은 사주팔자나 별자리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의미일 것이다. 실제로 마음먹은 바가 있어서 생활습관을 바꾸면 몸도 바뀌고, 기분도 달라지며, 수명에도 영향을 미친다. 인생이 바뀌는 것이다.

새해 첫날, 텔레비전에서 방영한 <울학교 이티>라는 영화를 봤다. 고혈압과 당뇨 증세가 있는 비만한 제자가 두통을 호소하며 체육 수업을 거부하자 주인공인 체육 선생님이 ‘운동 부족’이라고 정확하게 진단을 내리고 운동을 시켰다. 그런데 그 학생이 코피를 흘린 게 화근이 되어 학부모로부터 무식하다는 모욕과 함께 체육 시간을 줄이고 영어 시간을 늘리라는 요구를 받게 되었다. 주인공은 결국 학교에서 쫓겨나고 만다.

얼마 전 뉴스에서는 요즘 여학생들이 스타일 구겨지는 게 싫어서 체육 시간을 꺼린다며 달리기를 할 때도 머리가 헝클어질까 봐 한손으로 머리를 잡고 뛰는 둥 마는 둥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 모두가 안타까운 교육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새해를 맞아 많은 소망과 각오들이 있겠지만 올해에는 다들 좀 더 운동하고, 영화에 나오는 ‘이티’ 같은 선생님들이 많아져서 더욱 건강하고 똑똑한 대한민국이 되기를 기원해본다.

참고 문헌
1. 신대역 《동의보감》, 허준, 법인문화사, 서울, 2007; 569.
2. Physical activity and memory functions: Are neurotrophins and cerebral gray matter volume the missing link? A. Floel et al. NeuroImage. 49 (2010) 2756-2763.
3. Steroid hormones in the saliva of adolescents after different exercise intensities and their influence on working memory in a school setting. Henning Budde et al. Psychoneuroendocrinology. 2009. in press.
4. Role of exercise-induced brain-derived neurotrophic factor production in the regulation of energy homeostasis in mammals. Bente K. Pedersen et al. Exp Physiol 2009. 94(12); 1153-1160.
5. Effect of exercise on learning and memory in a rat model of developmental stress. Laurian Grace et al. Metab Brain Dis. 2009. 24:643-657.

 








글·한재복 실로암한의원, 토마스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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