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자민인성영재학교 2기 김영철 군의 자전거 국토종주 연재를 마칩니다. / 편집자 주 |
자전거를 계속 타다 보면 아무 생각도, 정말 아무 생각도 안 난다. 그러다 보니 절로 무아지경 상태가 되고 내가 페달을 밟는 것인지 누가 페달을 밟는 건지 헷갈릴 때가 있다. 심지어 여행 초반 아팠던 몸도 나아진다. 여행 출발하기 전 운동하다 어깨에 담이 걸렸는데, 다녀오고 다니 거의 다 낫기도 했다.
이제 온몸의 감각이 없어진 상태에 이르면 자신이 원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게 된다. 나의 질문은 바로 ‘꿈’이었다. 벤자민인성영재학교에 다니면서 확고하게 생긴 것이 있다면 바로 ‘홍익’하는 꿈이었다.
그러나 홍익하는 삶을 살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 지는 답을 찾지 못했다. 어떤 직업이나 자리에서 ‘어떻게’ 홍익을 할 것인가, 나는 묻고 또 물었다. 그러나 결국 답을 찾지는 못했다. 하지만 답은 찾지 못했어도 무언가에 얽매이고 답답한 마음은 없어졌다. 어떻게 보면 6박 7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꿈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을 얻는 게 이상할 수도 있다. 나는 답을 얻지 못한 대신 그저 페달을 밟으며 꿈을 생각하고 있는 ‘나’를 바라보며 ‘현재’에 집중하는 법을 배웠다.
▲ 자전거 국토종주를 통해 나를 바라보며 현재에 집중하는 법을 배웠다.
자전거를 타며 가장 많이 생각난 사람이 바로 부모님이었다. 여행 하는 내내 부모님이 내 곁에 건강하게 계신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느껴졌다. 17년 동안 뒷바라지 하시며 내 불평불만 다 들어주시고 꼬박꼬박 끼니 챙겨주시는 부모님과 할머니 생각이 무척 많이 났다.
재밌는 건 나만 이렇게 무아(無我)가 된 것은 아니었다. 함께 여행 한 친구들 역시 여행 초기에는 많이 힘들어 했지만 조금만 지나면 아무 생각 없이 페달을 밟았다고 했다.
그리고 자전거 여행으로 생각하지도 못한 성장이 또 하나 있었다. 가끔씩 단체 사진을 찍을 때 낯선 사람에게 부탁을 했는데 이것은 나에게 큰 성장이었다. 사람들에게 먼저 말 거는 것을 어려워하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괜히 ‘부탁’하는 것이 꺼려지고 어색했다. 그런데 이번 여행을 통해 낯선 사람에게 부탁하는 법을 자연스럽게 극복하게 되었다. 어떻게 극복했느냐고? 그냥 했다! 그냥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부탁도 하게 되고 여행 도중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여행하는 이유도 설명해 주면서 자연스럽게 벤자민학교도 알릴 수 있게 되었다.
6박 7일의 자전거 여행은 나에게 그저 한계를 도전하는 것만이 아니라 대인 관계 능력까지 기를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사실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프로젝트가 더 있었다.
사실 국토종주를 시작하기 이틀 전이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지 500일이 된 날이었다. 그때 항인이형 어머님께서 “너희가 이런 날짜에 국토종주를 시작하는 건 그냥 우연이 아니다”라는 말씀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을 시작하기 전 ‘너희의 못다 이룬 꿈을 조금이라도 대신 이루어 주겠다’라는 마음을 가지고 노란 리본을 배낭에 달고 국토종주를 하였다. 지난해 벤자민학교 1기로 명예편입학을 하기도 했던 故이재욱 군을 비롯해 세월호 참사로 일찍 세상을 떠난 학생들을 기리며 우리는 달렸다.
▲ 6박 7일 인천에서 부산까지 노란 리본은 우리와 늘 함께 했다.
또한, 이번 여행에서 참 많은 분의 도움을 받았다. 나를 후원해주신 신흥 목재 대표인 강성원 멘토님, 단월드 춘천센터 이창호 원장님, 자전거정비와 여행에 필요한 옷 등을 저렴한 가격에 주신 내 친구 동호 아버님, 또 중간 중간 먹을 것을 사주신 춘천 브레인트레이닝상담센터 현은정 선생님, 브레인미디어 기자이자 나의 멘토인 전은애 기자님, 벤자민인성영재학교 기자단 김희정 선생님, 벤자민 1기 조은별 선배님, 대구에서 부산까지 든든하게 우리와 함께 해준 권정훈 형, 그리고 이번 여행을 응원해 준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글. 벤자민인성영재학교 강원학습관 2기 김영철 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