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작품을 볼 때, 우리는 종종 감정적인 반응을 한다. 하지만 왜 그렇게 반응하는지는 복잡한 문제다.
노벨상 수상자이자 세계적인 뇌과학자 에릭 캔델은 심리학과 생물학에 기반하여 미술 감상의 과학을 구축하고자 한다. 그간의 학문적 여정에서 규명해온 관련 지식들을 망라하여 간결하게 제시하는 한편, 이를 다양한 미술 작품의 맥락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이 책에는 총 7편의 에세이가 수록되어 있는데, 각각의 에세이는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발표되었던 글들에 기반하고 있다. 주로 2013~2015년 사이에 발표된 글들이며, 2020년 논문에 토대를 둔 글도 수록했다. 심포지엄이나 강연, 전시회 도록, 평론집, 단행본, 논문 등 여러 형식으로 발표된 글을 이 책을 위해 새롭게 정리했다.
저자는 현대미술의 걸작들을 지성사의 맥락에서 살펴보면서, 이를 통해 인간 뇌에 대한 이해를 도모한다. 20세기 초 오스트리아 빈에서 시작된 여정은 유대 문화의 두 갈래를 대표하는 샤갈과 수틴의 작품을 경유하여, 다시 빈의 코코슈카, 에곤 실레, 클림트로 이어진다.
이를 통해 길어낸 연구의 핵심 테마인 ‘감상자의 몫’ 개념과 ‘얼굴의 뇌과학’은 각기 피카소와 초상화의 사례로 심화된다. 나아가 저자는 시지각을 넘어 촉지각에 관한 탐구를 조각과 회화의 대비로 이어나간다. 이 모든 이야기의 끝이 추상 미술 감상에 관한 과학적 실험 설계로 맺어진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미술과 과학을 잇는 시도는 여러 방면에서 이루어질 수 있지만, 에릭 캔델이 출발점으로 삼는 것은 세기말 오스트리아 빈이다. 당시 물리학이 자극한 계몽주의가 저물어가고 생물학과 의학이 자극한 모더니즘이 부상하고 있었다.
빈의 모더니스트들은 “우리 자신이 진정으로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 무의식적인 성적 충동과 공격적인 충동에 휘둘리는 존재라는 관점과 과학을 토대로 지식을 통합 및 융합하려고 시도하는 태도를 정립했다.”
이 책은 미술과 뇌과학이 만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여럿 담고 있다. 인간이 수천 년 동안 줄기차게 초상화에 주목해온 까닭은 어쩌면 뇌에 자리한 얼굴반의 존재 때문일 수 있다.
이 세포들은 얼굴의 위치, 크기, 응시 방향의 변화뿐 아니라, 얼굴 각 부위의 모양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또, 클림트의 그림에서 에로티시즘과 공격성의 융합이 기묘한 매력을 풍기는 것은 그것이 우리 뇌의 시상하부 세포군을 자극하기 때문일지 모른다.
싸움 세포와 성교 세포가 인접해 존재하는 까닭에 일부 교차하는 영역이 발생하고, 이에 따라 성과 폭력이 인간 행동에서 서로 얽히기도 하는 것이다.
책에서 문득 마주치는 이와 같은 환원주의적 통찰들은 막연한 형이상학적 사유를 산뜻하게 넘어서며, 설득력 있게 인간 이해의 새로운 지평을 연다.
글. 우정남 기자 insight1592@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