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인 북스] 뇌를 위한 침묵 수업

[브레인 북스] 뇌를 위한 침묵 수업

소란한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침묵의 뇌과학


프랑스 국립보건의학연구소 소속 연구원이자 20년 경력의 신경과학자 미셸 르 방 키앵은 과로로 인해 안면마비 진단을 받는다. 신경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피티에 살페트리에르 대학병원에서 신경과학을 연구하던 그에게는 더욱더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강의와 프로젝트 등 모든 활동을 취소하고, 몇 주간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처방에 워커홀릭인 그는 심한 부담을 느끼지만, 한 달 뒤 몸과 마음의 건강이 놀라울 만큼 좋아진 것을 보고 ‘침묵’이라는 상태에 관심을 갖게 된다. 당시의 연구와 깨달음의 결과가 바로 이 책 《뇌를 위한 침묵 수업》이다.

자신의 전공인 뇌과학에 기반해 침묵을 연구하던 저자는 현대인의 삶이 고요함이 없어 병든 삶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우리에게 필요한 침묵은 단지 소리의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침묵은 가만히 있지 못하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채우려 하는 우리의 몸과 마음에도 필요한 미덕이다. 이 책은 신체의 침묵에서 자아의 침묵까지, 우리의 회복을 위해 필요한 8가지 침묵을 정리하여 침묵이 어떻게 기억력, 주의력, 면역력 등에 도움을 주는지 설명한다. 

또한 독자들이 직접 실행할 수 있는 침묵 요법들을 별도의 폰트로 구분하여 정리하였고, 뇌, 호흡, 신경의 작용을 설명하는 도판들로 과학적 이해를 도왔다. 침묵에 관한 니체, 노자, 헉슬리, 파스칼, 루소의 말을 인용하여 독자들의 흥미를 자극하고, 동서양의 위대한 지성들이 이미 침묵의 가치를 이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도 한다. 저자가 직접 체험하고 연구하며 정리한 다채로운 종류의 침묵과 함께 회복의 시간을 가져보자.
 

침묵,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한 가장 쉽고 빠른 솔루션

우리는 모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CEO처럼 살아간다. 모두가 쉬고 싶다고 말하지만,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걸 더 괴로워한다. 이 책은 2014년 〈사이언스〉에 발표된 실험을 언급한다. 피험자들은 기분전환 수단 없이 텅 빈 방에서 혼자 6~15분 동안 갇혀 있었다. 

그러던 중 스스로에게 전기충격을 가할 수 있다는 선택지가 주어지자, 많은 수의 피험자(남성 피험자의 67퍼센트, 여성 피험자의 25퍼센트)가 자신에게 고통을 가했다. 그만큼 우리는 행동 중독에 빠져 있으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신체의 침묵’ 상태에 적응하지 못한다.

신체는 이러한 행동 중독 상태를 스트레스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교감신경계가 발동해서 아드레날린, 노르아드레날린, 코르티솔의 분비를 촉진한다. 반대로 휴식 시간에는 부교감신경계가 다른 호르몬의 분비를 촉진하여 생명에 필수적인 기능들을 복구시킨다. 

그런데 심한 스트레스가 장기간 지속되거나 쓸데없는 생각을 되새김질하면 스트레스에 대응하는 호르몬이 과도하게 분비된다. 부교감신경계가 조절 효과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해서다. 스트레스 호르몬이 과도하게 축적되면 면역력이 약화되어 바이러스, 박테리아, 기생충, 암에 취약해지고 결과적으로는 신체 기능 전반이 망가진다.

이와 같은 행동 중독으로 인한 손상은 몸을 움직이지 않는 ‘신체의 침묵’을 통해서만 복구할 수 있다. 저자는 특히 호흡의 역할을 강조한다. 자율신경계에 의지하는 생명 기능 중에서 의식적으로 조절 가능한 것은 호흡뿐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천천히 숨 쉬는 법을 익히고 호흡을 다스리면 부교감신경계를 활성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미주신경을 자극하여 생리 기능 전반을 안정시키는 호흡 요법에 대해 설명한다.

또한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근육에 항상 남아 있는 가벼운 긴장, 즉 ‘근긴장’을 푸는 방법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손, 다리, 발, 목, 얼굴에 차례대로 주의를 집중시켜 근육의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는 점진적 이완 요법을 수행하면 우리 몸의 근육을 완전히 이완시킬 수 있다. 저자는 이 요법이 정신적 긴장 감소는 물론 심리적 긴장에 많은 영향을 받는 피부 질환과 심혈관계 질환에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아무리 바빠도 사수해야 할 뇌의 노폐물을 청소하는 시간

침묵은 우리의 정신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저자는 오픈스페이스에서 일했던 고통스러운 경험을 이야기하며, ‘주의력의 소음’이 우리의 성과를 무너뜨린다는 걸 보여준다. 탁 트인 사무실에서 우리는 대화, 웃음소리, 기계 소음에 노출된다. 어쩔 수 없이 마주해야 하는 이메일, 문자, 소셜 네트워크는 우리의 ‘전자 목줄’이 되어 어느 때라도 순응해야 하는 직장 내의 위계질서를 상기시킨다. 

이런 시간이 누적되면 근로자는 이른바 ‘인지 과부하’를 경험하고, 뇌가 헐떡거리는 듯한 상태가 되면서 피가 마르는 것 같은 피로감이 생긴다. 이 같은 상태가 지속되면 필연적으로 심각한 직장 스트레스로 이어진다.

저자는 이것이 두개골 앞쪽에 위치한 전전두피질에 생긴 문제라고 설명한다. 전전두피질은 뇌 구조에서 최상위 단계를 차지하며, 고도의 사유, 인성, 행동 기능에 관여한다. 그런데 ‘주의력의 소음’ 상황에서는 노르아드레날린이 과다 분비되어 전전두피질을 차단하고 실행 기능을 저해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단기적 목표와 습관적 행동에 치우치도록 만든다. 뇌의 통제권을 잃어버린 상황이라 집중력을 발휘하고 적절한 정보를 기억하기 어려운 것은 물론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주의력의 침묵’이다. 생물학자들은 배터리를 쓰듯이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활동 기간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 휴식 기간을 번갈아 가져야 한다고 설명한다. 뇌가 활발하게 활동할 때는 독소 배출이 쉽지 않거나 아예 불가능하다. 


오히려 뇌는 활동하지 않을 때를 기하여 독성이 있는 대사 부산물을 제거한다. 저자는 독소 배출에 필요한 특수한 교세포인 ‘별아교세포’의 활동에 대해 설명하면서, 뇌가 열심히 일하면서 생성한 노폐물을 ‘청소’하는 것은 휴식을 취할 때임을 이야기한다.
 

소음과 강박이 당연해진 세상, 더 나은 시작을 위해 '멈춤'이 필요하다

이 책에는 파리 같은 대도시에서 2년간 극심한 소음에 노출될 경우 평균수명이 7.3개월 단축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다. 또한 부정적인 생각을 되새김질하는 현상은 우울증에 빠진 뇌가 보여주는 대표적인 현상이다. 그만큼 소음과 강박은 우리 삶에서 피할 수 없는 조건이 되었다. 

이런 이유로 저자는 우리 모두에게 침묵이 절실하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명상을 통해 절대적 고요에 빠져 보기를, 숲에서 자연의 침묵에 귀를 기울여 보기를, 무향실에서 우리 몸이 내는 소리를 들어보기를 권한다. 또한 성당 비슷하게 침묵을 경험할 수 있지만 종교적 색채가 없는 세속적 공간들을 조성하자고 제안한다. 

종교적 상징을 배제하고, 휴식과 사색을 위한 공간으로 설계된 ‘침묵의 섬’을 말이다. 책에 등장하는 모든 제안은 침묵을 통해 건강을 회복한 이의 말이기에 더욱 진실하게 다가오며, 저자와 마찬가지로 소음과 강박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일상을 만들 수 있는 영감이 된다. 


글. 우정남 기자 insight159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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