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진화의 경이로운 산물이다. 힘과 재주가 있고, 본능적이면서도 사려 깊은 우리는 혁신가로서 도구와 기술을 발명했고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서 모르는 타인과도 협력해 공동체를, 사회를 만들었다. 그리고 오늘날의 문명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우리는 커다란 결함도 지녔다. 질병은 우리의 대담한 계획을 방해한다. 인지 소프트웨어에 깊이 뿌리박힌 심리적 편견 때문에 우리는 일상에서도, 전쟁에서도 끔찍한 결정을 내린다. 이 놀라운 모순은 연약함과 능력의 총합인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질이다. 그리고 역사는 이 둘 사이의 균형 속에서 펼쳐졌다.
영국 웨스트민스터대학 과학 커뮤니케이션 교수이자 『오리진』 『사피엔스가 알아야 할 최소한의 과학 지식』으로 한국 독자들을 만나온 베스트셀러 작가 루이스 다트넬은 ‘인간 삼부작’의 마지막 책 『인간이 되다』에서 처음으로 이 독특하고 변덕스럽고 연약한 인간 본성이라는 렌즈로 관찰한 우리 인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인간의 생물학적 특징이 인간의 관계, 사회, 경제, 전쟁을 어떻게 야기하고 만들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인간의 진보에 계속 도전이 되고 또한 진보를 정의하는지를 탐구한다.
“최고의 학제 간 역사학” “오차 없는 팩트로 가득한 책”이라는 평을 듣는 이번 책에서 저자는 탄탄한 과학적 근거와 역사적 사실을 통찰력 있게 엮어 거대한 역사와, 역사 속 인간 존재의 의미를 압축적이면서도 폭넓고도 깊이 있게 펼쳐 보여낸다.
문명과 역사, 그리고 우리 자신에 관한 포괄적인 안내서
첫 번째 책 『사피엔스가 알아야 할 최소한의 과학 지식(The Knowledge)』에서 ‘지식은 어떻게 문명을 만들었는가’를, 두 번째 책 『오리진(Origins)』에서 ‘지구는 어떻게 우리를 만들었는가’를 질문하여 종으로서 우리 존재를 다층적으로 파헤쳐온 작가 루이스 다트넬은 이번 책 『인간이 되다(Being Human)』에서 ‘인간의 생물학적 특징은 어떻게 문명을, 세계사를 형성했는가’를 질문한다.
인간의 해부학과 유전학, 생화학, 심리학의 고유한 측면들은 인류의 역사에 깊고도 놀라운 방식으로 그 흔적을 남겼다. 저자는 선사 시대의 호모 사피엔스 이야기로 서사의 첫머리를 열어 인간 몸의 결함과 취약함으로 촉발된 거대 문명의 성립과 몰락, 전쟁과 그로 인해 야기된 저항과 혁명, 그리고 거듭되는 기술 개발로 극적인 환경 변화를 겪는 ‘인류세(Anthropocene)’의 현재까지 거대한 역사적 사건들을 유려하게 엮어낸다.
생존을 위해 협력하고 더 큰 신뢰를 위해 모르는 이들에게도 베푸는 호혜성,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유대의 그물로 만들어낸 가족 제도, 합스부르크 왕가를 몰락시킨 유전병, 문명의 향방을 가른 감염병과 유행병, 전쟁을 일으킨 ‘물질 중독’, 범선 시대에 해상 패권을 결정한 유전자 돌연변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위험한 결정을 내리게 하는 인지 편향 등… 한계 있는 인간의 몸과 마음, 그리고 그로 인해 퇴보하고 진보한 인간 역사를 다각도로 탐사하며 독자들은 인간의 몸과 상호 작용하면서 쓰이는 능동적인 역사를 만나게 된다.
인간은 지금의 거대한 진보를 이뤘지만, 그 진보의 역사에는 잦은 실수와 거대한 실패가 있었다. 기후 위기, AI 기술의 부상, 일상이 된 전쟁의 시대, 인간은 이 ‘문제적 현재’를 어떻게 만들었는가? 인간의 유전학과 생화학, 해부학, 생리학, 심리학의 다양한 특성은 인류 역사에 어떻게 흔적을 남겼고, 각각의 역사적 사건뿐 아니라 세계사의 중요한 흐름에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가? 그리고 그러한 흐름 뒤에 있는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모르는 이와도 협력하는 우리 종의 초능력
인간이 성공을 거둔 비결은 단지 능숙한 손재주가 가져다준 도구 사용뿐만이 아니다. 서로 아무 관계가 없거나 다음에 다시 만날 가능성이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서로를 도우려는 성향이 큰 역할을 했다.
우리는 한 번의 생애 동안 혼자서는 절대로 알아내지 못할 기술과 정보를 서로 가르치고 교환한다. 한 사람이 습득한 새로운 능력은 세대를 거듭하며 누적되면서 퍼져나간다. 우리가 복잡하면서도 대체로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고, 문명이라고 부르는 거대한 계획을 위해 힘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은 우리 뇌에서 발전한 ‘사회성 소프트웨어’ 덕분이었다.
가장 뛰어나고 가장 비합리적인 인간의 뇌
사람의 뇌는 경이롭다. 연산, 패턴 인식, 연역 추리, 계산, 정보 저장과 검색 등의 능력이 아주 뛰어나다. 전체적인 능력을 놓고 본다면 뇌는 지금까지 만들어진 어떤 컴퓨터 시스템이나 인공 지능보다 월등하다.
그러나 인간의 인지 소프트웨어에는 수많은 편향이 깊게 뿌리박혀 있다. 완벽하게 논리적인 뇌의 작동 방식에서 벗어나는 이러한 탈선을 인지 편향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인지 편향 때문에 비합리적으로 사고하고, 이라크 침공과 같은 전쟁을 일으키고, 정치적 양극화를 겪고, 분열된다. 안 좋은 결과를 향해 치닫고 있음에도 매몰 비용 오류에 빠져 더 빨리 발을 빼지 못하고 머뭇댄다.
이 책은 진화하고 진보해 결국 우리가 된 인간의 이야기다. 한계가 있고 뛰어난 인간의 독특한 본성으로 쓰인 지금까지의 ‘빅 히스토리’를 통해, 우리는 위기에 시대에 다음 역사가 어떻게 만들어질지 우리 자신의 눈으로 새롭게 바라볼 수 있다.
글. 우정남 기자 insight1592@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