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경쟁의 속도가 윤리적 논의를 압도하고 있다
1942년, 생화학과 교수이자 과학 소설가인 아이작 아시모프는 당시에 존재하지도 않던 미래의 기술을 위해 하나의 윤리적 장치를 제시했다. 이른바 ‘로봇공학의 3원칙’이다.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말 것, 인간의 명령에 복종할 것, 그리고 자신을 보호할 것. 이 세 가지 원칙은 단순해 보이지만, 인간보다 더 강력한 지능이 등장할 때 필요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공지능이 현실이 된 오늘날, 이 원칙은 가장 활발히 논의되어야 할 시점을 맞았음에도 오히려 의도된 침묵이 이어지고 있다. 기술 경쟁의 속도가 윤리적 논의를 압도하기 때문이다. 군사·산업 강국들은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점점 더 강력한 AI를 요구하고, 인간의 개입 없이 스스로 판단하고 실행하는 시스템까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AI를 탑재한 무기 체계, 자율 드론, 대규모 감시 시스템은 더 이상 가상의 시나리오가 아니다.
인간이 갈등과 분열을 반복하는 이유
문제는 기술의 방향이다. 인공지능은 원래 인간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현재의 흐름은 오히려 인간을 위협하는 방향으로 기울고 있다. 인류는 이미 과학기술적으로 기아와 질병, 빈곤 문제 등을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 그럼에도 갈등과 불평등은 여전히 지속되거나 오히려 심화하는 양상을 보인다. 기술의 진보가 곧 인간의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이러한 모순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양자물리학자이자 사상가였던 데이비드 봄은 20세기 중반, 인류가 과학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음에도 여전히 갈등과 분열을 반복하는 이유를 깊이 고민했다. 그는 《창조적 대화론》에서 이 문제의 핵심을 인간 사고 구조의 한계에서 찾았다. 인간은 서로 소통한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관점을 강화하는 방식으로만 대화를 이어가며, 그로 인해 갈등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그의 결론은 단순하지만 근본적이었다. 과학의 발전만으로는 인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인간 지능의 구조 자체가 함께 성장해야 한다. 이 통찰은 오늘날 인공지능 시대에 더욱 중요해진다. AI는 인간의 지능을 확장하는 도구이지만, 그 지능을 사용하는 주체는 여전히 인간이다. 만약 인간의 사고 구조가 경쟁, 분열, 배제를 중심으로 작동한다면, 아무리 뛰어난 기술도 결국 그 방향으로 사용될 수밖에 없다.
공감 능력이 확장된 형태가 공생지능
그렇다면 인간에게만 있는 고유한 지능은 무엇일까. 최근 신경과학이 주목하는 영역 중 하나는 공감 능력, 즉 타인의 감정과 상태를 함께 느끼는 능력이다. 이는 단순한 이해를 넘어 상대의 상태를 자신의 내부 경험으로 재현하는 기능이다.
이 과정에는 ‘거울신경세포’라 불리는 신경 메커니즘이 작용한다. 누군가가 슬퍼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슬픔을 느끼고, 경기장에서 사람들이 환호할 때 함께 기쁨을 느끼는 것은 단순한 감정이입이 아니라 뇌 수준에서의 동기화 현상이다.
물론 인공지능도 표정, 음성, 행동 데이터를 분석해 감정을 ‘판단’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계산의 결과이지 경험이 아니다. 인간의 공감은 계산을 넘어선 동시적 체험(shared experience)이다.
이 공감 능력이 확장된 형태가 바로 공생지능(coexistence intelligence)이다. 공생지능은 단순히 타인을 이해하는 수준을 넘어, 타인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고 함께 해결하려는 능력이다. 이는 개인의 생존을 넘어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을 추구한다.
공생지능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현실에서 반복적으로 관찰되는 행동 특성이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이러한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불타는 차량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타인을 구조하는 행위, 외환위기 당시 국가를 위해 자발적으로 금을 모았던 집단적 행동, 태안 기름 유출 사고 당시 수십만 명이 참여한 자원봉사 활동은 모두 공생지능의 발현이다. 이러한 행동들은 경제적 이익이나 개인적 보상을 넘어,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일처럼 받아들이는 심리에서 비롯된다.
경쟁과 배제의 지능 VS 공감과 공생의 지능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행동이 특정 개인의 도덕성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문화적 학습과 사회적 경험을 통해 강화된 집단적 지능에 가깝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이 공생지능만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인간의 뇌에는 자신이 속한 집단에는 강한 유대감을 보이면서 외부 집단에 대해서는 배타적으로 반응하는 메커니즘이 존재한다. 이는 진화 과정에서 생존을 위해 형성된 기능이다.
편도체는 공포와 위협을 감지하고, 측좌핵은 보상과 쾌락을 강화한다. 이 두 시스템이 과도하게 활성화하면 전두엽의 통제 기능이 약해진다.
그 결과 인간은 비이성적인 공격성이나 극단적 선택으로 치닫기도 한다. 결국 인간의 미래는 두 가지 가능성 사이에서 결정된다. 하나는 경쟁과 배제의 지능, 다른 하나는 공감과 공생의 지능이다.
인공지능의 발전 속도는 앞으로도 더욱 빨라질 것이다. 그러나 그 방향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의 선택에 달려 있다. 지금까지의 기술 발전은 소수 전문가와 기업이 주도해 왔다. 그러나 공생지능은 다르다. 이는 대중이 함께 만들어가는 집단적 지능으로서 교육, 문화, 사회 경험을 통해 확산되고 강화된다.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그 기술을 사용하는 의식
결국 인공지능 시대의 핵심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더 똑똑한 기계를 만들 것인가, 아니면 더 성숙한 인간을 만들 것인가. 공생지능은 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이다. 기술이 인간을 대체하는 시대가 아니라, 인간이 기술을 통해 더 인간다워지는 시대를 만들기 위한 조건이다.
인공지능은 인간을 위한 도구다. 그러나 그 도구가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지는 인간의 지능 수준에 달려 있다. 공생지능은 그 방향을 결정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 더 빠르고 강력한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그 기술을 어떤 의식으로 사용하는가이다.
인류 문명의 미래는 이미 준비된 기술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선택하는 지능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글_이정한 미국 IBE 지구경영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