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선택한 프로젝트가 교과목이 되고, 지역사회가 교실이 되고, 마을 어른과 전문가가 교사가 되는 학교 교육청 대안교육기관으로 선정되다.
내년이면 벤자민인성영재학교(이하 벤자민학교) 개교 10주년을 맞는다. 난생 처음 보는 새로운 형태의 학교를 개교한다는 소식에 많은 분이 우리 교육의 새 희망이라며 응원을 보내주었지만, 성공하기 어려울 거라는 부정적인 시선과 걱정도 적잖이 쏟아졌다. 많은 응원과 염려 덕분에 벤자민학교는 숱한 난관을 뚫고 1천 명이 넘는 인성영재 졸업생을 배출했다. 이들은 기존의 교육이 재단한 틀에서 나와 스스로 계획하고 실행하며 자립심과 자발성을 키운 인재들이다. 우리 사회와 지구 전체를 보며 자신의 꿈을 설계하고 당당하게 진로를 선택하는 자랑스러운 아이들이다.
이렇게 아이들이 성장해온 10여 년의 시간 동안, 사회 속 벤자민학교의 위치는 제도권 밖의 갭이어형 미인가 대안고등학교로 변함이 없었는데 최근 전환적인 변화가 있었다. 7월 초, 벤자민인성영재학교는 본교가 소재하고 있는 충남교육청으로부터 대안교육기관으로 선정되어 대안교육기관 등록증을 전달받았다. 개교할 때만 해도 관련법이 없어서 교육청과 연관된 상황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마침내 변화가 찾아온 것이다.
대안학교 학생들에 대한 지원 제도 보완도 필요
2021년에 「대안교육기관에 관한 법률」과 이에 따른 시행령이 새로 제정 공표되었다. 이 법령은 학교 밖 청소년들의 안정된 교육권 보장을 위하여 미인가 대안학교들이 법령에 제시된 시설과 기준 요건을 갖추어 관할 교육청에 등록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지난해 말, 등록 기준을 담은 시행령을 발표할 당시 교육부 장관은 “그간 법적 지위가 불안정하였던 미인가 교육시설을 대안교육기관으로 등록함으로써 학생 안전과 교육의 질을 보장하고, 교육 기회를 다양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며, 대안교육기관 등록제가 교육 현장에 안착할 수 있도록 시도교육청과 긴밀히 협력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이후 올해 초 교육청별로 등록 공고가 발표되었고, 벤자민학교는 그간의 운영을 토대로 요건을 갖추어 교육청 등록 대안교육기관으로 최종 선정되었다. 이는 다양한 교육 기회를 필요로 하는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대안교육기관 정보 파악과 선택, 교육적 지원 면에서 도움이 되는 반가운 일이다.
등록된 대안교육기관에 재학하는 의무교육 대상자는 취학의무 유예가 가능하며, 교육청에서 필요한 경우 대안교육기관을 위탁교육기관으로 지정할 수 있다. 공교육의 고정된 교육과정 틀 안에서 담아내기 어려운 다양한 교육을 시행하는 미인가 대안학교들에 대하여 이제 막 시작된 등록제가 그 취지를 잘 살려 나가기 위해서는 대안학교 학생들에 대한 지원 제도 보완도 중요할 것이다.
학생이 선택한 프로젝트가 교과목이 되는 학교
다양한 미인가 대안학교들 중에서 벤자민학교는 1년 과정의 국내 최초 갭이어형 대안고등학교이다. 특히 운영형태가 완전히 새로운 미래학교로서 정해진 교과목을 가르치고 배우는 형태가 아니기 때문에 교과목도, 고정된 교실도, 학년도 없다. 자신이 결정권을 가지고 자유롭게 선택한 프로젝트가 교과목이 되고, 지역사회가 교실이 되고, 현장에서 도움을 주는 어른들과 전문가 멘토들이 교사가 된다.
갭이어는 유럽에서 시작되어 교육 선진 국가들에서 대학생이나 고등학생이 학업을 잠시 중단하고 일정 기간 사회 속에서 프로젝트 활동, 봉사활동, 인턴십, 대안적인 교육 체험, 여행 등을 하면서 진로를 탐색하고 사회와 교류하며 배우고 성장하는 제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벤자민학교가 처음으로 고등학교 갭이어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밴자민학교 학생들은 1년의 갭이어 과정을 마친 후 공교육 고등학교로 돌아가거나 검정고시를 통해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국내외 대학에 진학한다. 취업을 하거나 창업을 하기도 한다. 어떤 경로를 선택하든 자신이 있는 곳에서 사회와 세상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주도적으로 도전하며 나아간다. 벤자민학교에서 보낸 1년의 시간 동안 ‘나는 왜 공부를 하는가?’ ‘나는 어떤 진로를 원하는가?’ ‘나와 우리 지역사회, 나와 자연환경은 어떤 관계인가?’ ‘필요할 때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가?’ 같은 질문을 거듭하며 스스로 답을 찾고자 했던 경험이 이후에도 자신의 삶을 주도하는 동력이 되어주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 없이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공교육의 틀 안에서 오직 교과 공부와 성적 경쟁에 매몰돼 지내다가 대학에 가거나 취업을 해 성인이 되면 새삼스러운 고민과 방황을 겪기 쉽다. 자신이 선택한 전공이나 직업이 맞지 않아서 다시 시작하기도 하고, 그제야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힘들어하는 경우도 많다.
고등학교 갭이어는 행복한 사람으로 성장하는 데 꼭 필요한 과정
지난해 겨울, 경기도 교사들의 연구 발전 모임인 미래학교자치연구소 초청으로 강연을 했다. 미래 교육의 모델로 벤자민학교 사례를 소개해달라는 요청이었는데, 강연을 마치고 이어진 토론 시간에 선생님들이 벤자민학교 학생들의 프로젝트 활동과 성장담에 감동했다는 소감과 함께 진로 선택을 앞둔 고등학생들에게 이러한 갭이어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점에 큰 공감을 표했다.
정해진 학교 교과 시간 외에 스스로 관심사를 찾아 다양한 현장을 체험하면서 멘토를 만나는 경험, 자신을 탐색하고 강점을 파악하는 시간, 부모나 교사 외에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는 기회, 사회와 환경 문제를 자신과 연결해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매우 필요하며, 이의 실현 방법이 갭이어 과정이라는 데 의견이 모였다. 이후 선생님들은 지속적인 연구모임을 통해서 고등학교 갭이어를 교육정책으로 적극 제시하고 있다.
미래학교자치연구소에서는 고등학교 갭이어 과정을 우리 학생들이 행복한 사람으로 성장하는 데 꼭 필요한 제도라고 본다. 고교학점제와 연계해 정규 교육과정으로 제도화해서 학점을 부여하고, 학생들은 원하는 기간 동안 자유롭게 체험, 인턴십, 직업교육 이수, 대안교육 이수 등의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활동비 지원, 관리인력 운영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도 제시하고 있다.
벤자민학교를 비롯해 대안교육과 공교육에서 시도하여 얻은 성과들을 잘 활용하면 한국형 고등학교 갭이어 정책의 점진적인 추진방안을 어렵지 않게 마련할 수 있다고 본다. 우리나라가 중학교 자유학년제를 도입할 때 정책 모델로 삼았던 아일랜드의 전환학년제와 덴마크의 애프터스쿨은 고등학교 갭이어 제도의 대표적인 교육정책이다. 시행 후 시간이 지나면서 학생들의 성장변화, 연구성과,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 등 점차 그 효과와 가치가 입증되면서 현재 전환학년제는 아일랜드 대부분의 학교가 시행하고 있으며, 덴마크의 애프터스쿨도 많은 학생이 활용하고 있다. 벤자민학교 학생들이 각자 다른 프로젝트, 다른 성장 스토리를 가지는 것처럼 갭이어 제도는 학생 각자가 자신만의 갭이어를 전제로 해야 한다.
학생이 원하는 기간, 원하는 멘토, 원하는 경험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찾고, 자신이 주체가 되어 세상으로 힘차게 나아가도록 갭이어 과정 학생들의 활동과 배움을 지원하는 정책을 기대한다. 시대가 바뀌었고, 그에 따른 교육정책의 변화는 필연적이다. 크고 희망찬 변화가 이미 시작되었다.
글. 김나옥
벤자민인성영재학교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