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의 아들

윤한주의 공감세상

올해 유행어를 꼽으라면 영화 <곡성>에서 딸 효진(김환희)이 아빠 중구(곽도원)에게 전라도 사투리로 "뭣이 중헌디!”일 것입니다. 영화 속 상황처럼 딸의 답답한 심정은 요즘 세태와 맞물리면서 국민적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사투리의 반대는 표준어입니다.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인 거죠. 마치 서울말을 쓰지 않으면 비교양적으로 들리기도 합니다. 사실 고려시대 이전까지만 해도 신라나 백제, 고구려 등은 지역어가 표준어처럼 사용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서울말과 사투리가 마치 갑을관계처럼 비춰서는 안 됩니다. 언어의 다양성으로 품어야할 것입니다.

최근 정찬주 작가의 역사소설 <단군의 아들(작가정신)>을 읽으면서 전라도 사투리에 흠뻑 빠져들었습니다. 책은 올해 순국 100주기를 맞는 나철(羅喆, 1863~1916)의 이야기입니다. 보성 출신 정찬주는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로 나철을 부활시켰습니다. 이 소설은 오는 음력 개천절인 11월 2일에 전라남도 보성군에서 개관하는 홍암나철선생기념관에 헌정합니다.(바로가기 클릭)

깨달음의 땅

전라도는 깨달음과 관련이 깊은 곳입니다. 최제우(崔濟愚, 1824~1864)는 1860년 경주에서 깨달음을 얻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깨달음을 담은 <포덕문>을 전북 남원에서 펴냈습니다. 최제우는 ‘서양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구하고 나라를 편안하게 한다’라는 뜻으로 보국안민(輔國安民)을 외칩니다. 이를 이어받은 국민들은 1894년 정읍과 고창 등에서 동학농민혁명을 일으켰습니다.

전북 고부 출신인 강일순(姜一淳, 1871∼1909)은 1901년 전주에서 깨달음을 얻습니다. 1909년까지 천지공사(天地公事)라는 이름으로 포교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죽은 해인 1909년 전남 보성 출신인 나철은 서울에서 대종교를 중광(重光)한 점입니다. 또 나철이 구월산에서 순국한 1916년은 전남 영광군 출신인 박중빈(朴重彬, 1891∼1943)이 깨달음을 얻은 해입니다. 금년이 원불교가 창도한 100년이자 나철이 순국한 100년입니다.

대종교 중광식에는 10여 명이 참가했습니다. 그중 절반이 호남인들입니다. 나철(전남 보성), 오혁(전남 강진), 최전(전남 순천), 김인식(전북 임실), 이기(전남 구례) 등입니다. 조준희 국학인물연구소장은 “대종교 중광의 주도세력은 호남 출신이며, 전체 참가자의 평균연령은 50.8세(호남 출신만은 48.8세)로, 당시 기준으로 고령의 인물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광복의 바다

물론 대종교의 주 무대는 호남이 아니었습니다. 나철은 1909년 서울에서 대종교를 중광하고 1915년에는 총본사를 백두산 북록 청호(靑湖)로 옮겼습니다. 단군의 성지인 백두산을 중심으로 북간도, 상해, 연해주, 서울 등 4개 구역에서 포교했기 때문입니다. 나철이 순국하고 대종교를 이끈 지도자가 김교헌(경기도 수원), 서일(함경도 경원군), 윤세복(경상남도 밀양) 등만 보더라도 출신지는 다양하였습니다.

주목할 것은 다른 종교를 배척하지 않은 포용적인 자세입니다. 대종교인이 다른 종교에 입교하더라도 금하지 말라는 것이 교리였습니다. 다른 종교인을 편견을 가지고 봐서도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대종교의 종교평화론은 오늘날 자기들의 교리만 절대적이라고 강요하는 종교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단군의 아들>에서 나철은 홍익인간을 말합니다.

“단군님의 신시가 도래하믄 홍익이 인간과 세상을 구원허지 않겄는가. 이 세상에 단군님의 홍익보다 더 짚고 더 높은 사상은 읎어. 홍익이야말로 단군님이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덜에게 던진 화두이자 해답이 아니고 무엇이겄는가.”

제자들 또한 마음이 물처럼 모이면 광복의 바다에 이를 것이라고 믿습니다. 일본이 땅을 침략했지만 4천 3백 년 동안 드리워져온 단군님의 광명(光明)은 빼앗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암울했던 일제치하에서 단군은 그야말로 민족을 지켜주는 등불이었던 것입니다. 독립운동가 신규식(申圭植, 1883~1922)은 단군이 태백산 단목 아래 강림했다는 한줄기 기록이 없었다면 한민족은 다른 민족에게 종속되고 말았을 것이라고 한 것과 같습니다.

해방 후 오늘날까지 이념과 지역, 종교 갈등으로 분열하는 국민들 가슴엔 홍익(弘益)의 불이 필요합니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단군의 철학은 민족을 하나 되게 하고 인류평화에 이바지하는 꿈입니다. 어느 해보다 혼란스러운 정국입니다. 100년 전 나철이 강조한 ‘국망도존(國亡道存, 나라는 망해도 정신은 존재한다)’으로 다시 정신을 차려야 할 것입니다.

글. 윤한주 기자 kaebin@lyco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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