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드슨 강의 기적…우리 사회의 의인은?

윤한주의 공감세상

운전면허시험을 앞두고 학원에서 도로주행 연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강사가 자리를 바꾸자고 하더군요. 나의 운전을 그대로 따라 했습니다. 불안했습니다.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느끼도록 한 것이죠. 타인의 생명을 담보로 핸들을 잡는다고 생각하니 식은땀이 났습니다. 하물며 수십 명의 승객을 가득 태운 버스기사는 어떨까요?

실제 지난 13일 경부고속도로 언양분기점 인근을 달리던 전세버스에 화재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승객 10명이 숨지고 10명이 다치는 대형 참사입니다. 그런데 운전기사 이모(48)씨가 가장 먼저 버스에서 탈출했다는 경찰 조사 결과가 나와서 충격을 줬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달라진 것이 없구나. 제 목숨을 구하는 것이 승객보다 중요하다는 세월호 선장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있습니다.

▲ 영화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 스틸컷

이러한 '사고 공화국(事故共和國)'에 경종을 울리는 것일까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은 마치 세월호 참사를 겪은 한국인들을 위해 제작한 것처럼 느껴지는 영화 <설리 : 허드슨 강의 기적(SULLY, 2016)>를 내놓았습니다. 비행기 추락사고로부터 승객 전원을 구조한 실화를 바탕으로 했습니다.

체슬리 설리 설렌버거(톰 행크스)는 US AIRWAYS 1549편 기장입니다. 40년 넘는 비행경력을 자랑하는 베테랑이죠. 2009년 1월 15일 샬롯을 향해 이륙한 비행기는 새 떼와의 충돌로 엔진이 멈춰 추락 위기에 놓였습니다. 설리와 부기장은 208초 사이에 빠른 판단으로 허드슨 강에 비상착륙합니다. 기장과 스튜어디스는 위기상황 매뉴얼에 따라서 움직였고 승객 또한 침착하게 따릅니다. 죽음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상황에서 기장을 포함한 승객 155명은 비행기를 빠져나옵니다. 5분 만에 도착한 첫 구조선 등 1,200명의 구조대원이 24분 만에 전원 구조합니다. 단 한명의 희생도 없이 모두 살아났습니다. ‘허드슨 강의 기적’이라고 부른 까닭입니다.

매스컴은 설리를 영웅(Hero)으로 만들고 싶지만, 항공사고 조사위원회는 의문을 제기합니다. 공항으로 갔더라면 충분히 착륙할 수 있었는데 기장이 무모하게 강물 위에 불시착한 게 아니냐는 것입니다. 조사위원회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기장의 직감(直感)이 잘못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합니다.

결과로 본다면 설리는 승객 전원을 구해 기장으로서 책임을 다했습니다. 시민들의 영웅이고 표창도 주어야겠지요. 그런데 그 과정은 합리적인가? 검증하는 것은 조사위원회의 몫입니다. 이를 통해 관객이 일방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사건을 다각적으로 살펴볼 수 있게 합니다.

영화의 실존인물 설리가 구조한 것은 승객만이 아니라, 그들의 가족, 이웃, 친구 등을 말합니다. 적어도 1천 명 이상은 될 것입니다. 만일 참사로 이어졌다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슬퍼했을까요? 그러한 점에서 탈무드에는 "한 사람을 구하는 것이 세상을 구하는 일이다."라고 했습니다. 택시, 버스, 지하철, 배, 비행기 등 다중이 이용하는 교통의 운수업에 근무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생명을 책임진다는 윤리의식이고 책임감, 곧 인성(人性)일 것입니다.

▲ 영화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 스틸컷

물론 한국에도 설리와 같은 영웅이 있습니다. 설리처럼 베테랑 기장도 아니고,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경찰관이나 소방관도 아닙니다. 평범한 20대 청년, 고(故) 안치범 씨입니다.

지난달 9일 새벽 자신이 사는 서울 마포구 서교동 5층 건물에 화재가 나자 밖으로 나와 119에 신고합니다. 그리고 그는 불타는 건물에 다시 들어가 초인종을 누르며 화재를 알렸습니다. 덕분에 사망자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본인은 건물  5층 옥상 입구 부근에서 유독 가스에 질식해 병원으로 옮겨졌고 11일 만에 숨을 거뒀습니다. 세상은 그를 ‘초인종 의인’이라고 부릅니다.

단군의 가르침을 담은 <참전계경(參佺誡經)>에서 말하는 의리의 모델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뭇 사람들은 의리를 버리고 자기 몸을 지키며 밝은이는 자기 몸을 버리고 의리를 지킨다.(衆人 捨義而全身 哲人 捨身而全義)”

승객을 버리고 혼자 도주한 기사는 제 몸을 지켰겠지만, 세상의 비난을 받을 것입니다. 반면 설리나 안치범 씨처럼 생명을 구한 의인(義人)들은 역사로 영원히 기려야 할 것입니다. 또 다른 의인들이 만들어갈 세상을 위해서 말입니다.

글. 윤한주 기자 kaebin@lyco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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