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fMRI의 대중화와 본질적 한계점-02

[칼럼] fMRI의 대중화와 본질적 한계점-02

한눈에 읽는 뇌교육과 철학 이야기-12

(▶▶1편에 이어 계속) 최근에 한자교육을 중요시 하는 단체가 주최한 학술대회에서 평균 나이 27세인 남녀 대학생 각 12명씩을 대상으로 2음절짜리 한자단어와 한글단어를 소리 내지 않고 읽는 실험에서, 한자를 읽을 때가 한글을 읽을 때보다 더 많은 부분이 활성화되어 나타나는 fMRI 뇌 영상 사진이 공개되었다. 그리고 한자이름 단어 학습이 한글이름 단어를 학습할 때의 경우보다 좌측 해마(hippocampus)와 방추상회(fusiform gyrus)와 2차 시각영역의 뇌 활성화가 증가하고, 한자이름 학습이 인지기억에 유리하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연구결과는 마치 한자가 한글보다 우수한다는 편견에 빠지기 쉽게 한다. 같은 상황에서도 서로 문화가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의 뇌는 서로 다르게 반응하고 특히 언어의 경우, 언어의 구성 체계에 따라서 활성화되는 뇌 부위가 조금씩 차이가 난다는 것은 이미 신경과학자들의 연구에서도 밝혀졌다. 따라서 표의문자인 한자과 표음문자인 한글은 언어를 구성하는 체계가 많이 다르기 때문에 활성화되는 뇌 부위가 다를 수 있다.

평소에 많이 사용하는 한글에 적응되어 있는 뇌는 한글을 사용할 때 무의식적으로 적응(adaptive unconscious)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는 fMRI 뇌 영상은 활성화된 부위를 밝은 색깔로 구분하여 표시하는데(좌측 사진), 이 사진은 뇌가 어떤 과업을 실행 하는 상태(executive mode network)에서 깨어 있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상태인 기저 상태(baseline resting state)를 뺀 값을 통계적으로 처리해서 보여준 것이다.

사진 상으로는 활성화된 부위를 제외한 부분은 마치 뇌가 활동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어떤 과업을 수행할 시 색깔로 표시된 부위만 작용하고 다른 부분은 아무 활동도 하지 않은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또한 보이는 사진의 뇌 역시 실제 피실험자의 뇌가 아니라 통계적으로 표준화한 뇌에 피실험자의 실험치를 중첩해서 보여주는 것이다.

깨어 있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뇌의 기저 상태를 다른 말로 기본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라고도 하는데, 이 네트워크는 주로 외부 환경에 의해 활성화되는 것이 아니라 내부의 환경에 의해 활성화된다. 쉽게 말해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뇌는 쉼 없이 활동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미국 워싱턴 의대의 Raichle 교수에 따르면 기본 네트워크는 뇌가 사용하는 에너지 총량의 60~80%를 사용한다고 하며, 외부 환경에 의해 작용하는 뇌의 소비는 총량의 0.5~1%에 불과하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어떤 주어진 일을 할 때 뇌가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고 알고 있지만, 실제로 뇌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기본 상태에서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의식적 활동보다 무의식적 활동에 뇌는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는 것이다. 

좀 더 쉬운 예를 들어보자. 야구선수가 타격을 잘 하기 위해서 하는 스윙 연습은 의식적 반복 훈련을 많이 함으로써 좋은 타격감을 무의식화 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즉 훌륭한 타격선수는 투수의 어떤 공에도 즉각적(무의식적)으로 좋은 타격을 할 수 있는 뇌의 상태를 갖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과거처럼 한자 수업을 별도로 받지 않은 지금의 대학생들에게 한문은 한글보다 그 적응성이 낮을 것이다. 다시 말해 한자가 한글보다 익숙하지 않다는 말이다. 따라서 한자를 사용할 때는 더 많은 의식적 인식 작용이 필요할 것이며, 이에 비해 한글 사용은 무의식 즉 기본 네트워크에서 처리될 비율이 높을 것이다.

따라서 한자를 사용할 때 뇌는 한글을 사용할 때보다 더 많이 부위가 활성화될 것은 자명한 사실이 된다. 그렇다고 해서 한자가 한글보다 더 우수하거나 학습 효과에 더 효과적이라고 단편적으로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반대로 한자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중국인의 경우 한글을 공부할 시 중국어를 사용할 때 보다 더 많은 의식적 인식 작용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다고 중국인에게 있어서 한글이 중국어보다 우수하다고 말할 수 없다.

이처럼 fMRI를 활용한 한자와 한글의 단순 비교 연구는 생물학적 환원론이나 뇌 근본주의에 빠질 오류의 위험을 안고 있으며, 언론이나 한문 교육기관의 실익을 위해 오도될 위험성이 있다. 

비근한 예로, 1995년 남녀의 음운 인지 과정에 있어 그 차이점을 fMRI을 활용하여 연구한 실험이 있었다. 이 연구에서 남성의 경우 좌뇌만 활성화되었고 여성은 양쪽 뇌 모두 활성화되었다. 이 연구 결과는 언론에 의해 마치 남녀의 사고에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도된 바가 있다. 그러나 남녀가 보여준 음운 인식의 차이가 남녀의 사고가 다르다고 결론지을 수 없는 것이다. 

한글과 한자의 비교 연구도 이와 비슷한 경우에 해당할 수 있다. 한글 단어와 한자 단어의 사용에 있어 뇌 활성화 부위의 비교만으로는 한자의 우수성을 증명할 수도 없으며 증명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인에게 있어 한문은 한글과의 조화로운 사용에서 그 존재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어는 배우기 쉬워야 좋은 언어가 아니겠는가?

 


 글.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과 이승호 교수 
 magoship@ube.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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