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도전을 배우는 줄 뛰어넘기

[칼럼] 도전을 배우는 줄 뛰어넘기

희망교사 김진희의 뇌교육 희망학교-5

방학을 마치고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었다. 전보다 방학이 짧아진 탓인지 개학하고 만난 아이들의 얼굴엔 아직 방학의 여운이 남아 있고, 책상에 자꾸 엎드리는 아이들의 모습에서도 그래도 조금은 편했던 방학에 대한 미련이 느껴진다. 교사인 나도 아쉽다는 마음이 드는데 아이들은 오죽할까 하며 바라보니 그냥 ‘정신 차려라’만 하기엔 안쓰럽게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2학기를 시작할 수는 없지. 방학으로 늘어져 버린 아이들의 몸과 마음의 힘을 다시 세워주는 일부터 하기로 했다. 바로 ‘도전 줄넘기’다. 그래서 개학 이튿날 아이들에게 2학기에 꼭 이루고 싶은, 꼭 하고 싶은 도전과제를 하나씩 정해오라고 숙제를 냈다.

숙제를 내면서 15세에 꿈의 목록 127개를 적고, 47세에 이 중 111개의 꿈을 이루어낸 존 고다드의 ‘꿈의 목록’을 들려주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이들은 ‘이게 정말 사실이냐고’를 몇 번 씩이나 물어보았다. 한 사람이 그렇게 많은 일을, 보통사람이 쉽게 하기 어려운 일들을 해냈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겠지. 그래서 특별한 누군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꿈을 적고 늘 잊지 않고 행동에 옮기는 사람은 누구나 꼭 이루게 된다고 말해주었다. 우리 모두의 뇌에는 그런 힘이 있다고. 

아이들이 각자 자신만의 도전과제를 정하는 데는 이틀이 걸렸다. 금방 쉽게 생각해낸 아이들도 있지만 6개월 정도에 이루어내야 하고, 정말 자신이 하고 싶어지는 걸 정하려니 고민이 많이 되는 것이다. 또 너무 쉬운 걸 정한 아이에게는 “이게 정말 네가 원하는 거고, 이루면 기뻐질 만한 그런 거냐?”고 되물어주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우리의 능력을 실제보다 작아 보이게 만드는 작용을 한다. 늘 나를 한계 짓는 이런 마음은 결국 도전을 통해서만 넘어갈 수 있다.

이제 자기 자신을 믿지 않는 아이들에게 무언가 도전할 때의 마음을 실제로 느껴볼 기회를 주어야 한다. 금요일 체육 시간에 긴 고무줄과 매트를 준비했다.

“얘들아, 오늘은 도전을 배우는 줄 뛰어넘기를 할 거야. 발목 높이에서부터 계속 줄의 높이를 높여갈 건데 줄을 건드리지 않고 뛰어넘어야 해. 그런데 계속 넘을지, 그만둘지는 스스로 정하는 거다. 그리고 줄을 넘기 전에 각자 정한 도전과제를 크게 외치고 줄을 뛰어넘는 거야. 자, 한 사람씩 시작한다.”

처음 발목높이, 무릎높이까지는 아이들도 웃으며 가볍게 뛰어넘었다. 그러다가 허벅지 높이를 넘어서자 아이들이 조금씩 흥분하기 시작했다. “저만큼 가서 도움닫기해서 뛰어도 되요?”하고 묻는 아이들도 생기고, 이제 슬슬 줄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긴장이 돌기 시작한다. 벌써 여자아이들 셋이 포기하겠다고 물러났다. 줄에 걸린 아이들 중 포기한 아이들은 한쪽에 앉아서 줄을 뛰어넘는 아이들을 바라본다.

“정말 내 도전과제를 꼭 이루겠다는 마음을 가져봐. 이 줄은 너희가 부딪히게 될 어려움과 게으름, 나를 방해하는 여러 가지 상황이라고 생각해봐. 도전과제를 꼭 이루겠다는 마음으로 한 번 더 크게 외치고 뛰어봐.”

줄에 걸렸던 아이들이 다시 도전하겠다고 뒤로 가서 줄을 서면 힘주어 이렇게 말해주었다. 줄의 높이가 허리를 넘자 이제 반 정도 아이들이 남았다. 벌써 네다섯 번씩 다시 뛰어넘었던 아이들도 있다. 하지만 좀처럼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자기 도전과제를 크게 소리치고 온 몸의 힘을 끌어 모아 뛰는 아이들에게서 느껴지는 도전의지가 나를 가슴 뭉클하게 한다.

아이들의 응원소리가 높아졌다. “00야, 파이팅! 할 수 있어. 잘해.” 한 아이가 줄을 넘읕 때마다 우리 모두 안의 한계가 하나씩 깨어져 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우리 반에서 키가 제일 작은 남자아이는 훨씬 큰 아이들도 못 넘은 높이를 온 몸을 던져 넘다가 어깨를 바닥에 부딪치면서까지 뛰어넘기도 했다. 저절로 박수가 막 나왔다. 

줄 뛰어넘기가 끝나고 잠시 눈을 감고 자신에게 들었던 마음과 생각을 돌아보았다.

“줄을 넘고, 못 넘고는 중요하지 않다. 선생님이 꼭 말해주고 싶은 것은 점점 높아져 가는 줄 앞에서 너희가 느꼈던 두려움보다 그 두려움을 넘고자 하는 너희의 마음이 훨씬 더 크고 강했다는 거다. 줄을 넘기 어렵다고 느껴지면 너희들은 어떻게 했니?

뒤로 물러나서 도움닫기를 힘껏 했고, 힘을 모으기 위해 소리도 크게 지르고, 저절로 그렇게 하지 않았니? 또 오늘 뛰어넘지 못했다 해도 내년, 또 후년, 너희들이 자라고 몸의 힘이 생기면 아마 이까짓 것쯤 쉽게 넘을 수 있을 거다. 지금 내가 못한다고 영원히 못하는 것은 아니야. 그냥 지금 나의 상태일 뿐이야. 꼭 기억해라, 줄 앞에서 너희가 느꼈던 그 두려움을 몸으로 부딪칠 때의 그 느낌을. 그렇게 2학기는 힘을 내서 우리 함께 도전하는 거다. 자, 다 함께 파이팅!”

아이들을 보내고, 각자 정했던 도전과제를 큰 표로 만들어서 교실에 붙여놓았다. 도전과제를 이루어가는 과정을 각자 기록해서 모두가 서로 격려할 수 있게 말이다. 이렇게 마무리를 하고 나니, 아까 줄이 높아지니까 넘어보려고도 않고 포기해버린 채 다른 친구들 구경만 했던 몇 아이들 얼굴이 떠올랐다.

평소에도 과제가 조금 어려우면 안 하면 안 되느냐고 하던 아이들이다. 잘하고 싶은데 못할 것 같을 때 차라리 그만 두는 습관을 가진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은 오늘 다른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무엇을 느꼈을까? 줄을 넘고 못 넘고는 사실 중요한 게 아니란 걸 알게 되었을까? 그 마음을 돌아봐 주지 못한 게 마음에 걸린다. 내일 다시 물어보고 이야기를 해야겠다. 실제 우리가 삶에서 만나는 줄은 내가 꼭 넘겠다는 마음을 먹는 순간 확 낮아져 버린다고 말이다.

 

글. 김진희

올해로 교직경력 18년차 교사입니다. 고3시절 장래희망에 교사라고 쓰기 싫어 '존경받는 교사'라고 굳이 적어넣었던 것이 얼마나 거대한 일이었는지를 이제야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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