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되는 일도 없는데 돈도 없어 미치고 팔짝 뛰겠네 한다. 그래 그러면 생각으로만 뛰지 말고 몸으로 팔짝팔짝 뛰어봐! 서른여섯 번만 뛰면 기분이 달라진다. 이렇게 말하니, 너 나 해! 핀잔을 들었다.
돈도 없고, 꿈도 없고, 현실이 따분하다. 현실은 외롭고 고단하고 힘들고 생각조차 하기 싫다. 답답한 이내 심사 어이 풀어낼 거나 입에서 흥얼흥얼 소리가 나온다. 풀어버리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우리 민족은 어떤 식으로 풀어갔는지를 한번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우리 민족은 풀이에 아주 능한 민족이다. 무엇이든지 풀게 한다. 억울한 것도 풀고 분한 것도 풀고 잘못된 것도 풀어 버리려 한다. 그것이 기분풀이요, 분풀이요, 원풀이 한풀이 살풀이다. 노래 부르고, 춤추고 이 모든 것도 시름을 풀어버리는 방법에서 시작된다. 심심한 것도 풀어 버린다고 하는 민족이다.
한국인은 풀이의 천재들이었다. 저 어두운 역사, 부조리한 사회구조 우리나라 사람들은 외세에 짚 밟히고, 권력자에게 시달리고, 가난에 쪼들리며 살아왔다. 그러나 풀 줄 알았기에 그 고통 그 서러움, 그 원한들을 바람에 띄우듯이 물로 씻어 내듯이 한숨으로 풀고 노래로 풀고 어깨춤으로 풀어 버렸다.
그랬기에 이 민족은 사실상 누구에게도 지배를 당하지 않았으며 누구에게도 고통을 받지 않았다. 풀어버리는 능력이 있는 한 어떤 비극이나 어떤 고통도 한국인의 가슴을 찢지 못한다.
한국인이 스트레스를 푸는 데는 단연 선진국을 앞서 나간다. 우리는 오징어 한 마리에 소주 한 잔 먹고서도 간단히 긴장을 풀어버릴 수 있다. 퇴폐적이라고만 비웃을 게 아니다. 한국의 선술집에서 고성방가하고 신바람 나서 젓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리는 주정꾼들은 돈 몇 푼 안 놓고도 마음 속 고름을 깨끗이 풀어 짜낼 수 있었다.
한국인에게 너나 할 것 없이 조금씩 무당 기질이 있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신이 잘 오른다. 날씨 좋은 봄나들이에 가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듯 사람들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야단법석을 떤다. 근심 걱정이 태산 같고, 먹을 것도 없으면서 문 밖에만 나가면 구박을 받는데도 어디서 저 해일 같은 신명이 솟아오르는 것일까? 한국인이라면 젖만 떨어져도 으쓱으쓱 어깨춤을 출 줄 안다.
그런데 지금의 현실은 어떤가? 요즘 사람들을 보면 푸는 방법조차도 잊어버린 것이 아닐까. 우리나라에서 불안, 우울 등 정신적 문제로 약을 먹는 사람이 현재 570만 명이다. 잠정인원까지 하면 1천 만 명이 된다고 한다. 참으로 놀라고 심각한 상황이다.
그간 50여 년간 경쟁과 성공을 위하여 뛴 결과의 부정적 부분이기도 하다. 갈수록 정신적인 붕괴가 일어나고 있다. 멘탈헬스(mental health)가 정말로 필요한 시기이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고민을 해야 한다.
멘탈붕괴는 예전에는 정신병 ‘신병(神病)’이라고 했다. 무당만 신병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하면 중심이 흔들리기에 그것도 신병이다. 신병을 고치는 방법은 신명을 풀어내는 법이 최선의 방법이다. 그것이 신바람이다. 정신이 오락가락하면 무당들은 푸닥거리를 했다. 결국 푼다는 것이다. 푸는 거리이다. 무당의 행위를 종교 차원으로 바라보지 말고 푼다는 의미에서 민속으로 바라본다면 좋은 방법을 찾아낼 수 있으리라.
풀이문화의 원동력인 신바람과 흥겨움은 생명의 근원적인 율동에서 나온 힘이다. 우리 가락 속에 신명이 우러나오는 억압을 받아도 분수처럼 솟구치는 영혼의 진동이 있다. 푸는 문화 그리고 ‘신바람 문화운동’이 필요하다. 그동안 정신을 어떻게 차리라는 말은 많이 했지만 정신이 헷갈릴 때 어떻게 풀어내는 것은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간 푸는 문화를 연구하며 20년간 현장에서 신바람을 전하면서 느껴본 것을 이렇게 몇 자 적어봤다. 이제부터 이 민족의 푸는 문화 신바람의 문화가 어떻게 부활할 것인지 함께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얼쑤!
글. 신현욱 일지아트홀 관장, 풍류도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