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멀티태스킹과 식습관 [이미지=게티이미지 코리아]
미디어 멀티태스킹이 식습관을 바꾸고 있다
오늘 점심 식사 때 어떻게 음식을 먹었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핸드폰을 옆에 두고 SNS를 확인하면서 식사했는지, 아니면 맛을 느끼면서 천천히 먹었는지, 가끔 폭식하는 경향이 있는지, 주로 어떻게 조리한 음식을 즐겨 먹는지, 스트레스 상태일 때 어떤 음식을 찾는지, 먹방이나 쿡방을 자주 보는지 점검해 보세요.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적인 식습관은 30~40년 전에 비해 상당히 달라졌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최근 들어 식습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스마트폰과 미디어 환경입니다. 요즘에는 혼자 식사할 때는 물론 여럿이 식사할 때도 각자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경우가 적지 않죠.
식사 중에 영화나 유튜브 영상을 보거나 게임을 하면서 멀티태스킹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 뇌에는 본래 멀티태스킹 하는 기능이 없습니다.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는 것처럼 보일 수는 있지만, 뇌는 이것 하다가 금방 저것 하는 식으로 빠르게 전환하는 것일 뿐, 여러 정보를 동시에 처리하지는 않습니다. 먹으면서 다른 일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집중이 계속 깨지고 주의가 분산되죠. 결과적으로 멀티태스킹은 효율을 떨어뜨립니다.
많은 사람이 주의 산만한 식습관을 갖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짚을 부분은 비만입니다. 우리나라의 성인 비만 인구를 보면, 1980년부터 2015년까지 꾸준히 증가해 왔습니다. 전 세계 평균도 양상이 같습니다. 어린이 비만 인구 역시 전 세계적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물론 선진국과 저개발국의 차이는 있습니다. 경제 수준이 낮은 나라는 비만이 아닌 식량 부족 문제를 여전히 겪고 있습니다.
미디어 멀티태스킹은 비만과도 연관 관계가 있습니다. 관련 연구 결과를 보면 미디어 멀티태스킹이 증가할수록 체질량 지수(BMI)가 증가합니다. 누구나 경험한 일일 텐데, 음식을 먹을 때 다른 일을 같이 하면 음식의 맛을 미처 느끼지 못하고, 얼마나 먹었는지도 인지하지 못해서 많이 먹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같은 식습관이 지속되면 당연히 체중이 증가하겠죠.
멀티태스킹 상태에서는 뇌에서 인지를 조절하는 기능이 감소하고, 쾌락을 추구하는 기능은 증가합니다. 즉 뇌의 고차원적 기능을 활용해 자신을 조절하는 기능이 떨어져 자극에 빠져들기 쉬운 상태가 된다는 것입니다.
주의 산만한 환경에서의 식사가 비만을 부른다
주의가 산만한 환경에서 음식을 먹는 행위가 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음식을 먹으면서 다른 일을 하면 뇌가 맛을 인지하는 과정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한 연구팀이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연구팀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테트리스 게임을 하게 한 다음 미각 자극을 주었습니다. 이를 세 번 시행한 다음 다시 입을 헹구고 맛을 평가하게 했습니다. 참가자들이 테트리스 게임을 하면서 느꼈던 맛의 강도가 어떠했는지, 그리고 자신이 그것에 의해서 즐거움을 느꼈는지를 평가하게 한 것이죠. 실험에서 테트리스 게임의 난이도를 여러 가지로 적용했는데, 테트리스 난이도가 어떠했는지도 평가하게 했습니다.
결과를 보면, 주의 산만한 환경에서 음식을 섭취하면 맛을 잘 느끼지 못하고, 식사의 즐거움도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과체중이거나 비만인 경우, 또 남성의 경우 그 정도가 더 컸습니다.
결론적으로 주의 산만한 멀티태스킹 환경에서 식사하는 것은 맛에 대한 뇌의 민감도와 즐거움을 떨어뜨림으로써 더 자극적인 음식을 찾고 더 많은 양의 음식을 섭취하게 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같은 식습관이 이어지면 과체중과 당뇨의 발병률을 높이게 됩니다.
먹방과 쿡방이 뇌에 미치는 영향
미디어에 넘쳐나는 각종 먹방과 쿡방 콘텐츠가 우리 뇌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이 같은 콘텐츠를 자주 시청하는 것이 건강하지 않은 행동을 증가시킨다는 연구 결과도 나온 바 있습니다. 2022년 한국청년위험행동의 웹 기반 설문조사에 5만 44명의 중고등학생이 참여한 연구입니다.
결과는 먹방과 쿡방을 자주 시청하는 경우에 야식·패스트푸드·당이 첨가된 음료·고카페인 음료 섭취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매우 건강하지 않은 행동입니다.
먹방이나 쿡방을 시청하는 것은 실제로 지금 먹는 것은 아니지만, 음식에 대한 시각 자극이 계속 눈으로 들어오는 것이죠. 잔뜩 쌓인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는 동안 뇌의 보상 시스템이 활성화하게 됩니다. 그러면 음식에 대한 갈망이 자극되어 먹고 싶은 욕구가 커집니다. 결과적으로 음식 섭취가 증가하고, 이는 체중 증가로 이어지죠.
특히 먹방이나 쿡방에는 자극적인 음식이 많이 나오는데, 이러한 자극적 음식에 대한 갈망이 실제로 뇌의 활성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조사한 연구가 있습니다. 자극적 음식을 갈망하는 사람의 경우, 그런 갈망을 느끼지 않는 사람에 비해 매운 음식을 보았을 때의 반응 시간이 아주 짧습니다. 뇌가 더 빠르게 반응한다는 것입니다.
자극적 음식에 대한 갈망이 뇌 활성에 실제로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이고, 이렇게 음식에 대한 갈망을 가질 때 활성화하는 뇌의 영역이 중독성 약물을 갈망할 때 활성화하는 뇌 영역에서도 발견됩니다. 이처럼 약물 중독과 음식 중독은 비슷한 부분이 있습니다.
먹는 행위를 하지 않으면 우리는 기아 상태에 빠져 죽음에 이릅니다. 먹는 행위를 하면 안정감과 즐거움을 느끼죠. 배고플 때 음식을 먹으면 보상회로가 작동해 도파민이 분비되면서 기분이 좋아지고, 이를 기억하는 뇌가 다음에도 배가 고프면 먹는 행위를 해서 다시 도파민을 분비시킵니다.
이러한 보상회로는 우리의 생존에 상당히 중요한데, 중독 상태라고 하는 것은 생존에 필요한 회로가 망가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상적인 식사에서는 더 이상 도파민이 분비되지 않게 됩니다. 일상의 식사에서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뇌로 변화한 것이죠. 그래서 음식에서 예전과 같은 수준의 즐거움을 얻기 힘들어집니다.
자극적인 고칼로리의 음식이나 단 음식 섭취는 강박적인 음식 중독을 부를 수 있습니다. 약물 중독과 마찬가지로 음식 중독 또한 뇌의 실제적 변화를 동반하므로 분명히 경계해야 하고, 식습관을 건강하게 바꾸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먹방과 쿡방 시청을 줄이는 것도 필요합니다.
건강한 식습관 형성을 위해 천천히 식사하기
건강한 식습관을 만들기 위해서 음식을 어떻게 먹는 것이 좋을까요? 이에 대한 정보는 이미 충분히 많이 나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한 가지를 권한다면, 무엇보다 식사를 천천히 하라는 것입니다. 식사할 때 음식의 향과 색을 살피며 먹는 행위 자체에 집중하고, 음식의 맛과 질감을 느끼면서 충분히 씹으면 천천히 식사할 수 있습니다.
음식을 섭취하면 우리 몸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납니다. 먼저 음식이 입안에 들어오면 저작 활동에 의해 음식물이 소화액과 섞이면서 잘게 분해됩니다. 음식물이 식도를 따라 위장으로 들어가면 위가 팽창하고, 이 신호가 신경을 통해 뇌로 전달됩니다.
위가 충분히 팽창하면 식욕을 억제하는 렙틴 호르몬이 지방 세포에서 분비돼 식사를 멈추게 합니다. 위에서 소화된 음식물은 소장에서 영양분을 흡수한 다음 대장으로 들어갑니다. 장이 연동 운동을 하면 이 또한 뇌로 그 정보가 전달됩니다.
이 밖에도 많은 일들이 음식을 먹고 소화하는 과정에서 일어납니다. 그런데 식사를 시작하고 우리 뇌가 포만감이라는 신호를 인식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20분 정도입니다. 그래서 식사 시간을 적어도 20분 이상 확보할 필요가 있습니다. 포만감의 신호가 울릴 때까지 식사를 천천히 함으로써 과식을 피하고, 소화와 관련한 뇌와 몸의 작용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것이죠.
이는 장기적인 다이어트로서의 효과도 있습니다. 억지로 음식을 적게 먹는 것이 아니라 뇌가 충분히 포만감을 느끼는 시간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천천히 식사하기를 몸과 뇌의 작동 원리에 맞는 바람직한 식사법으로 먼저 권합니다.
멀티태스킹을 멈추고 몸의 감각에 집중하기
다음으로 제안하는 것은 식사할 때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주의를 산만하게 하고, 먹는 행위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하는 요인을 없애기 위해서입니다. 식사할 때 SNS를 보거나 게임을 하면 자신이 먹는 정도를 의식하지 못하고, 먹는 속도도 빨라집니다. 그러면 뇌에서 보내는 포만감 신호를 느끼지 못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과식을 하게 되죠.
기억을 되짚어 보면, 예전의 우리는 분명히 식사 시간에 약간의 대화 외에는 먹는 행위에 집중했습니다. 뇌에도 없는 기능인 멀티태스킹을 이제는 멈추고, 식사할 때는 자신의 몸의 감각에 집중해 먹는 행위를 즐기기 바랍니다.
마지막 제안은 먹는 행위에 대한 알아차림의 감각을 키우는 것입니다. 이는 충동 관리 기술을 익힘으로써 할 수 있습니다. 감정적으로 화가 나거나, 우울하거나, 스트레스가 쌓이면 충동적인 식사를 하게 됩니다. 과식이나 폭식을 하고, 자극적인 음식과 고칼로리 음식을 찾게 되는 것이죠. 이를 인지적으로 조절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충동 관리 기술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명상입니다. 명상을 통해 자신에 대한 알아차림의 감각을 키우면 음식 섭취와 관련된 문제도 스스로 조절할 수 있게 됩니다.
글_양현정 한국뇌과학연구원 부원장,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통합헬스케어학과 교수
분자신경과학분야를 전공하였고, 현재 명상과 같은 심신중재가 정신-신경-내분비계에 미치는 영향과 기전 규명에 대한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일본 도쿄공업대학(현 도쿄과학대학) 학/석/박사, 이스라엘 와이즈만 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현재 한국뇌과학연구원 부원장,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통합헬스케어학과 학과장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