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에 러시아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에서 쓴 수기》를 다시 읽었습니다. 주인공은 방 안에 콕 틀어박혀 주로 책을 읽거나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 지독한 외톨이 괴짜입니다. 그는 인간이란 변덕스럽고 불합리한 존재이며,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러한 생각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어리석고 추악한 행동을 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합니다. 소설은 자유의지를 주장하던 주인공이 자신과 타인에게 상처만 주고서 절규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무척이나 어렵고 심오한 소설입니다. 이 소설을 읽으며 문득 자문해보았습니다. 인간에게 정말로 자유의지가 있는 것일까?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을까?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 결정할 수 있는 자유, 자신의 뜻대로 무엇인가 할 수 있는 자유를 우리는 ‘자유의지(free will)’라고 부릅니다. 자유의지는 인간의 내면에서 비롯되는 어떤 것이며, 동시에 법과 환경과 제도와 긴밀하게 연관되는 어떤 것입니다. 그래서 자유의지의 문제는 정치학, 사회학, 철학, 윤리학, 신학, 법학 등 인간의 삶과 관련된 거의 모든 학문 분야에서 오래전부터 끊임없이 논의되어왔습니다.
인간에게 자유롭게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 아니면 모든 것이 의지 이전에 이미 결정되어 있는가의 문제는 법과 관습, 사회 속에서의 인간의 위상, 그리고 종교적인 믿음과 윤리적 성향 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어떤 철학자는 자유의지야말로 철학사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난해한 문제라고 단정 짓기까지 합니다.
자유의지 논쟁은 크게 세 가지 갈래로 나뉩니다. 첫째는 인간은 이미 결정되어 있는 존재이지만 또한 자유롭게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두 번째는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다는 주장입니다. 세 번째는 인간의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는 주장입니다.
이 세 가지 중 어느 것이 옳은지는 사실상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이는 신이 존재하느냐 아니냐의 문제에 아무도 답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최근의 신경과학자들은 이 문제에 대한 답은 반드시 뇌에서 찾아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인지와 행위를 가능케 하는 것이 뇌이므로 자유의지의 문제는 뇌를 중심으로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1980년대에 행해진 한 실험이 ‘과학적’으로 검증 가능한 대답을 제시한 뒤부터 이러한 성향은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흔히 ‘리벳 실험’이라 알려진 이 유명한 실험은 얼핏 보기에 자유의지 논쟁에 종지부를 찍은 듯 여겨집니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허상이며 모든 것이 뇌에서 미리 결정된다는 것을 생물학적으로 입증한 듯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자유의지 논쟁의 종지부, 리벳 실험
신경과학자 벤저민 리벳Benjamin Libet은 피실험자들이 손을 움직이는 동안 뇌에서 일어나는 활동을 측정하는 실험을 했습니다. 피실험자들에게 자신들의 자유로운 결정에 따라 갑자기 손이나 손가락을 움직이고 동시에 언제 그 결정을 내리는지 시계를 보고 측정하도록 했습니다.
상식적으로 볼 때 손을 움직이겠다는 의지가 발동한 후에 운동피질이 작동하리라고 예상됩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피실험자들의 운동피질이 먼저 활성화된 후에 운동하겠다는 결정이 내려진다는 것이 실험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아주 짧은 시간, 즉 0.3초의 시간 간격을 두고 뇌는 이미 운동을 결정하고, 그 과정이 시작된 후에야 인간은 그것을 깨달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 실험결과를 신경과학자 그린필드 교수는 이렇게 해석합니다.
“우리의 모든 사고와 행동은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뇌의 활동에서 비롯된다. 자아와 뇌는 두 개의 다투는 실재가 아니라 통합적 전체의 일부이다. 당신을 이루고 있는 모든 것은 뇌다.”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유의지의 문제가 왜 그토록 중요한 것인가를 실감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뇌가 모든 것을 결정하건 아니건,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인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뇌가 인간의 자유의지 대신 결정을 내린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면 대단히 많은 현실적인 문제들이 뒤따르게 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바로 개인적인 책임의 문제입니다. 뇌가 행동을 결정하는 기관이라면 인간은 더 이상 도덕적인 책임을 질 필요가 없게 됩니다. 어떤 행위에 대한 책임을 개인이 아닌 그의 뇌가 져야 한다면 우리는 이제까지 존재해온 법을 완전히 새로 써야 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인간 존재 자체를 완전히 새롭게 정의 내려야 합니다. 이제까지 우리가 알아온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책임지는 자아’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책임은 인간 사이에 부여된 것
바로 이런 문제 때문에 대부분의 신경과학자들은 뇌 결정론을 수용하면서도 개인의 책임을 결코 부정하지 않습니다. 신경윤리학계의 선구적인 연구자인 가자니가 교수는 뇌의 중요성을 전적으로 인정하면서도 책임은 뇌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에게 있다고 강변합니다. 그는 책임을 신경학적인 현상이 아닌 사회적인 현상으로 바라봅니다.
이 세상에 오로지 한 명의 인간만 존재한다면 책임이란 개념 자체가 불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결국 책임은 두 사람 이상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개념입니다. 그것은 자아가 타인에 대해, 그리고 타인이 자아에 대해 가지는 상호적인 개념입니다. 가자니가 교수는 말합니다.
“뇌 스캔에서 볼 수 있는 화소들은 유죄인지 무죄인지를 증명해줄 수 없다. 신경과학은 책임에 대응하는 뇌 상호 관련자를 절대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책임이라는 것은 뇌에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부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 규칙 안에서 만들어진 책임이라는 개념은 뇌의 신경구조 안에는 없다.”
그렇습니다. 책임은 뇌 하나만으로 정의될 수 없습니다. 책임은 인간 존재의 저 근원에 있는 이루 다 설명할 수 없이 복잡한 자질들 중 하나입니다.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이며 또 책임이 있는 존재입니다. 책임은 인간에게 부여된 고결한 자질들 중의 하나입니다.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은 아름답습니다.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은 용감한 사람입니다. 책임을 질 줄 안다는 것은 때로 상대방을 배려하고 상대방을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가족에 대해, 이웃에 대해, 사회에 대해, 인류에 대해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글·석영중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교수
《뇌를 훔친 소설가》,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 《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