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쉴 수 없다면

숨쉴 수 없다면

집중 리포트_ 숨과 삶

브레인 28호
2012년 08월 07일 (화) 23:15
조회수14599
인쇄 링크복사 작게 크게
복사되었습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얼마나 숨 쉬는 행위, 즉 호흡에 대해 의식하며 살까. 마침 감기라도 걸려 숨 쉬기가 곤란해진다면 모를까, 거의 안중에도 없는 게 호흡이다. 호흡은 우리가 의식하지 않는 사이에 저절로 이루어진다.

대뇌의 명령을 받지 않고 뇌간에서 자율적으로 이루어지는 이른바 자율신경계에 속하는 작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숨을 쉬는 일이 얼마나 긴요하고 고마운 일인지 소름끼치게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하루 24시간을 숨쉬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하는 만성폐쇄성폐질환자들에게 숨 쉬기의 꿈은 일상처럼 절박하다.

매번 숨을 의식하며 사는 사람들
만성폐쇄성폐질환자 송규옥 씨(59세). 그에게 봄은 잔인한 계절이자 위험한 계절이다. 꽃가루나 황사 같은 봄의 징후들은 그의 기관지를 위험에 빠트리는 요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텔레비전 앞으로 상춘하러 간다. 흐드러지게 피는 꽃도, 싱그러운 봄바람도, 구수한 흙냄새도…….

만성폐쇄성폐질환은 숨을 쉬는 기도가 막혀서 기침과 가래가 지속되고 숨이 차는 폐질환이다. 폐기능이 50퍼센트 이상 손실될 때까지 증상이 없는 데다 한번 발생하면 완쾌되는 법 없이 지속적으로 악화된다. 증세가 천천히 진행되고 노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거나 천식이라고 생각하여 방치하기 때문에 환자의 대부분이 흡연경력이 있는 고령자다.

송규옥 씨는 30년 전에 결핵을 앓았지만 그 후로도 하루 두 갑씩 피우던 담배를 끊지 못했다. 그렇게 십 년이 흘렀을 무렵 걸을 때나 운동을 할 때 숨이 차고 가슴이 답답함을 느끼곤 했지만 ‘결핵을 앓았으니 숨이 차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2~3년이 더 지난 뒤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하고 나서야 그동안 느꼈던 증상이 결핵 때문이 아니란 사실을 알았다.
그의 폐는 80퍼센트 이상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코에 연결한 산소 줄 카테터로 호흡을 의지한 채, 그가 “결핵을 앓고 나서부터 담배를 끊고 운동을 했더라면 이렇게까지 심해지지 않았을 테지요”라며 한숨을 내뱉는다.

그런 반성조차도 산소 줄 없이는 그에게 허락되지 않는 불가능한 일이다. 하루 24시간 카테터로 산소호흡을 하며 일상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다 큰마음 먹고 외출이라도 할 때면 호흡기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낮아 난감하고 불편한 일이 생긴다고 한다.

“어느 날 머리를 손질하러 미용실에 갔는데 제가 코 줄과 산소통을 한 걸 보고 미용사가 손사래를 치더라고요. 한번은 제가 엘리베이터를 타자마자 내리는 사람도 있었어요. 무슨 몹쓸 전염병에라도 걸린 줄 알았겠죠. 단지 다른 사람들보다 숨 쉬는 게 조금 더 힘들 뿐인데 말이죠.”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진행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의 호흡기환자들이 외출을 꺼린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기침으로 인해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것 때문에 외출을 꺼리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외출했다가 숨이 턱까지 차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 두려워서 외출을 하지 못한다. 더군다나 지하철이나 버스 같은 대중교통은 공기가 좋지 않아서 외출이 쉽지 않다.

호흡기질환자들 중에는 종종 본인이 숨쉬기가 힘들다고 느끼지만 산소포화도는 정상인 경우가 있다. 이런 사람들은 언제든 산소포화도를 확인해보고 안심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측정기를 가지고 다녀야 한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차는 느낌이 좋을 리 없죠. 머리도 아프고 구토증이 느껴지고 빨리 걷거나 뛰는 건 상상 할 수도 없어요. 마음껏 숨 쉴 수 없는 불편함과 어느 순간 호흡이 안 돼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보통 사람들은 아마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호흡기질환자들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증세가 진행될수록 경제활동을 할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이다.

“숨이 차서 음식도 제대로 못 먹고, 걷기도 힘들고 심지어 잘 때도 똑바로 눕지 못하고 옆으로 누워 자야 하는 경우도 있어요. 눕지 못할 정도로 심한 경우도 있고요. 그런데 경제활동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저처럼 스스로는 호흡을 하지 못하고 집에서도 산소줄에 의지해 생활하거나 증상이 더 악화돼 인공호흡기를 달게 될 경우 산소를 공급해주는 의료기기를 구입해야 하는데 보험이 적용된다고는 하지만 금액이 만만치 않아요.

매달 의료기기 사용으로 나오는 전기요금도 경제적인 능력이 없는 환자들에게는 고충이죠. 경제적인 고충과 함께 증상이 악화되면서 집 안에서도 밖에서도 활동범위가 좁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느끼는 사회적 고립감은 심리적으로도 상당한 위축감을 줍니다.”


이처럼 우리가 너무나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워서 의식조차 않고 하는 호흡이 송규옥 씨와 같은 호흡기질환자들에게는 더없이 절실하고 고마운 축복이다. 그는 자신의 의지로 자유롭게 숨 쉬면서 생활할 수 있다면 무엇을 하든 행복할 것 같다며 다시 태어나면 축구선수나 야구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당부한다. “사람들은 숨 쉬는 것에 대해 아예 생각조차 안하죠. 그러나 산소가 희박해지고 생명의 위협을 느껴보면 산소와 호흡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낄 겁니다. 하긴 저도 이렇게 되기 전까지 호흡의 중요성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깊은 호흡으로 폐활량을 늘리고 꼭 금연하세요.”

호흡기장애인협회에서는 호흡기질환자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을 높이고자 매년 봄과 가을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에서 ‘호흡기질환 장애인 알리기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지하철에서 보게 되면 그냥 지나치지 말고 마음 한번 써주시길.

*송규옥 씨와의 인터뷰는 이메일과 전화로 이루어졌다. 기도에 생긴 염증 때문에 장시간 말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폐쇄성폐질환자들은 면역력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면역력이 떨어져서 감기에 걸리거나 기관지에 염증이 생기면 그만큼 더 호흡하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숨의 사령탑인 뇌간의 신비
우리는 숨을 쉴 때 숨을 쉬어야지 하고 생각을 하거나 의식적으로 숨을 조절하며 쉬지 않는다. 이처럼 무의식적으로 숨을 쉴 수 있는 것은 뇌간 덕분이다.

몸의 대사상태에 따라 혈액 내 이산화탄소와 산소 등의 농도에 변화가 생기는데, 이런 정보가 경동맥의 화학적 수용체를 거쳐 뇌간으로 전달되면 뇌간은 정보를 대뇌로 넘기지 않고 우리가 숨을 내쉬거나 들이쉴 수 있도록 횡격막이나 가슴뼈 사이의 근육에게 명령한다.


그에 따라 우리가 숨을 들이쉴 때는 공기가 코와 입을 통해 기관, 기관지, 폐로 들어가서 늑골이 올라가고 횡격막은 내려가면서 산소가 공급된다. 반대로 숨을 내쉴 때는 늑골이 내려가고 횡격막이 올라가면서 코와 입을 통해 이산화탄소가 몸 밖으로 배출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자연스럽게 숨을 쉰다. 하지만 숨을 쉴 수 없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숨을 쉬지 못하면 몸에 산소가 공급되지 못하므로 세포가 손상을 입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피해를 입는 것이 뇌다. 뇌에 5분 이상 산소가 공급되지 않으면 뇌 손상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치명적이 된다.


또한 뇌간에 뇌졸중 같은 문제가 생기면 호흡조절에 장애가 발생할 수 있다. 이때 환자는 숨 쉬는 것을 게을리하게 되는데 특히 환자의 의식이 좋지 않거나 밤에 잠을 잘 때 더 심해진다. 이럴 경우 인공호흡장치를 통해 인공적으로 숨을 쉴 수 있도록 하지 않으면 환자는 산소부족 현상으로 얼굴이 창백해지거나 최악의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다.


한편 호흡은 뇌간이 자율적으로 조절하지만 대뇌가 손상되어도 정상적인 호흡이 불가능하다. 뇌간에는 숨쉬기를 억제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을 대뇌가 억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뇌가 손상되면 뇌간의 숨쉬기를 억제하는 부분을 억제할 수 없기 때문에 환자의 호흡은 점점 빨라져 한참 숨을 가쁘게 몰아쉬다가, 수십 초가 지나면 다시 서서히 느려지고 또 점점 느려지다가 몇 초간은 아예 숨을 쉬지 않는다.

그러다가 다시 서서히 숨을 쉬기 시작해 호흡이 점점 빨라지고 느려졌다가 숨쉬기를 멈추고 빨라지기를 반복하는 체인스토크스 호흡이 발생한다.
이런 사실들만 봐도 우리가 자연스럽게 숨 쉬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소중하고 고마운 일인지 알 수 있다.

도움받은 곳·호흡기장애인협회 카페 cafe.daum.net/copdhot
글·정소현 nalda98@brainmediea.co.kr

ⓒ 브레인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기 뉴스

설명글
인기기사는 최근 7일간 조회수, 댓글수, 호응이 높은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