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뇌과학의 역사에 대한 자료를 읽다가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인류의 진화를 위해 노력해온 과학자들이 뇌세포는 절대 생성되지 않는다는 잘못된 믿음 때문에 뇌과학의 발전을 무려 30년이나 늦췄다는 사실입니다.
◆◆◆ 뇌과학자 알트먼의 선택
잘 알다시피 뇌과학계에서 뇌의 가소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진 것은 불과 20년도 채 되지 않은 일입니다. 지난 1백 년간 뇌과학자들은 뇌세포가 새로 생성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믿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1913년 에스파냐의 노벨상 수상자 산티아고 라몬 이 카할은 “다 자란 뇌의 신경 경로들은 고정되어 변하지 않습니다. 뇌세포는 죽을 수는 있어도 재생될 수는 없습니다”라고 확신에 차서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 이론은 이후 무려 백 년 동안이나 신경과학계를 지배해온 핵심 정설이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신경과학자들이 카할이 내린 결론을 철썩 같이 믿고 이를 바탕으로 연구를 수행하였습니다. 아마도 이 이론이 뇌과학계의 정설로 받아들여진 데는 카할이 노벨상 수상자였다는 사실도 한 몫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과학자가 이 이론을 맹목적으로 추종한 것은 아닙니다. 1960년대 초 매사추세츠 공과대학의 조지프 알트먼은 당시 뇌과학계의 정설을 거스르는 연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다 자란 쥐의 뇌에서 새로운 뉴런이 생기는 것을 목격했고, 이어 고양이와 기니피그에서도 새로 형성된 뇌세포를 발견했습니다. 과녁을 제대로 맞히기만 한다면 뇌과학계를 발칵 뒤집어놓을 만한 연구결과였습니다.
하지만 알트먼이 그 연구결과를 한 학술지에 발표했을 때, 그의 연구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 중세 재판관들처럼 당시의 과학자들은 뇌세포가 새로 생성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물론 알트먼이 이렇다 할 권위를 갖지 못한 일개 젊은 과학자에 불과했다는 사실도 담론을 형성하지 못한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입니다. 알트먼은 자신의 연구가 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한 것에 적잖이 실망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지나치게 논란의 여지가 많은 연구에 회의를 느끼고 퍼듀대학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아예 신경발생학과 인연을 끊어버렸습니다.
뇌의 가소성에 대한 연구가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30년이나 지난 후인 1990년대 말에 이르러서입니다. 캘리포니아 솔크연구소의 프레드 게이지가 쥐와 원숭이에서 새로운 뇌세포를 발견한 데 이어, 인간의 해마(기억을 담당하는 뇌 부위)가 뉴런 생성능력을 평생토록 보유한다는 사실을 발표하면서 비로소 뇌과학계의 오랜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지나고 나서야 하는 말이지만, 알트먼이 자신의 연구결과에 조금만 더 확신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그래서 당시 학계의 확고한 믿음에 맞서 자신의 연구를 관철하려고 노력했더라면, 모르긴 몰라도 뇌과학의 역사가 적어도 30년쯤은 앞당겨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 생존을 위해 도그마를 넘어서야 할 때
그렇다고 무턱대고 알트먼을 탓할 수만은 없을 것 같습니다. 한 개인이 조직이나 사회, 인류 전체에 만연해 있는 지배적인 통념(도그마)에 맞선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교 리차드 페티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우리 뇌는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한 사안의 경우, 다수의 의견이 결정을 내리는 데 대단히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검증되지 않은 어려운 사안일수록 도그마에 쉽게 휩쓸릴 수밖에 없다는 말이지요.
하버드대학교 사회생물학자 윌슨은 뇌가 그러한 특성을 가지게 된 이유에 대해 “우리 뇌는 자기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존하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인간의 뇌가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본질에 집중하기보다는 다음날에도 살아남기 위해 알아야 할 것들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지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기 마음이 원하는 것은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사회적인 요구나 최신 기기 작동법에 대해서는 기가 막히게 잘 아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최신 뇌과학의 연구성과들을 맞닥뜨리다 보면 지금까지 인류가 당연하게 여겼던 믿음들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
최근의 뇌과학은 인간의 뇌세포가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개발 가능하며, 중년의 뇌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똑똑하다고 말합니다. 유전자는 날 때부터 결정된 것이 아니며 환경과 의지에 따라 충분히 변화 가능하다고 강조합니다.
일본의 지진과 원전 폭발로 인해 인류 문명의 한계를 어느 때보다 직접적으로 목격하고 있는 요즘, 이제는 인류가 지구에서 무사히 ‘생존’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를 가두고 있는 편협한 도그마에서 벗어나 조화와 공존의 방향으로 뇌의 가능성을 확장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글·전채연 ccyy7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