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0일 제4회 국제 뇌교육 컨퍼런스가 미국 뉴욕의 유엔 본부에서 열렸다. 저명한 뇌과학자, 교육자들이 모인 가운데 오후 특별강연의 연사로 세계적인 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 교수가 나섰다. 그는 감정과 의사결정에 관한 최고 권위자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 자신의 연구와 생각을 깊이 있게 서술한 과학저술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그의 강연을 통해 우리의 뇌와 감정, 그리고 뇌와 삶은 어떠한 관계에 놓여 있는지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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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다마지오Antonio Damasio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 신경과학과 교수, 뇌와 창조성 연구소 소장 |
몸과 마음은 분리할 수 없는 하나
안토니오 다마지오 교수는 1944년 포르투갈 태생으로 미국 아이오와 대학의 신경과를 거쳐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뇌과학의 여러 분야뿐 아니라 철학과 사회학, 문화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특히 그는 첫 저서인 《데카르트의 오류》에서 철학자 데카르트 이후 몸과 마음을 분리하던 서양의 철학 전통과 일반의 의식을 뒤집었다. 이번 강연에서도 그는 몸과 뇌는 분리된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뇌가 감각과 생각과 정신의 중심체, 우리의 정체성의 중심이 된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뇌와 마음, 행동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할 때 몸의 일부라는 사실을 잊을 때가 있습니다. 뇌는 결코 우리의 몸과 분리된 것이 아닙니다.”
그는 몸의 일부로서 뇌는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하나의 지휘자라고 말했다. “뇌는 우리의 몸이 어떻게 환경과 관계를 맺는지, 그 관계를 조절해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조화로우면 뇌도 조화로운 상태가 됩니다. 그럴 때 뇌는 건강에 좋은 호르몬을 형성함으로써 몸의 조직을 더욱 살려줍니다. 즉,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최근 뇌과학계에서 인간의 의식을 몸과 뇌, 환경을 포함한 전체로서 파악하는 경향도 바로 그의 이런 생각에서 출발한다.
감정과 느낌이야말로 문화의 바탕
몸과 마음이 하나라는 점에서 감정(emotion)과 느낌(feeling)은 다마지오 박사의 주된 관심사다. “감정은 적절한 몸의 균형 상태를 만들기 위해 진화 과정을 통해 발달한 뇌의 프로그램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인간뿐 아니라 다른 여러 동물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공통의 프로그램입니다.
” 그는 두려움의 감정을 느낄 때 근육의 구조가 달라지고, 심장이 뛰고 표정이 달라지는 등 변화가 나타나는 것을 예로 들었다.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통해서 근육이 긴장 상태에 놓임으로써 생각하지 않고도 자동적으로 행동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화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두려움이라든가 분노라든가 하는 감정이 부정적이지만 사실은 중요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러한 감정이 없었더라면 생명은 유지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환경 속에서 자기를 스스로 방어할 수 있는 감정과 달리 느낌은 좀 더 주관적인 것이다.
“느낌은 감정보다 훨씬 더 인지적인, 선택 가능한 작용입니다.” 그는 느낌에 의해서 어떻게 서로 관계를 유지하는지, 어떻게 사회적·정치적·예술적·경제적 관계와 문화를 형성해가는지 결정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느낌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찬란한 문화 또한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두려움, 기쁨이라는 자연스러운 행동 프로그램을 통해 생명을 유지했다면, 느낌은 지적 인지능력과 함께 문화를 이루어나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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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미래를 바꿀 희망
다마지오 교수는 건강한 관계와 사회를 만드는 것은 건강한 감정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감정이 우리 각자의 삶을 벌이나 보상으로 조절하고 지배하고 있는 기초적인 생물학적 작용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인류에 공헌하는 시민들을 키워나가느냐 하는 것이 교육의 초점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사람들이 사회에서 좋은 관계를 만들기 위해 어떻게 감정을 잘 조절해나가느냐 하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인류의 사회와 문화는 훌륭한 점도 많은 반면, 해결해야 할 문제도 많다. 그러나 그는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로써 우리의 행동을 수정하고 사회 전체의 행동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으며, 인류 미래를 향상시킬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그에게 뇌과학은 뇌출혈 같은 질병을 치료할 뿐 아니라 단순히 지적 향상 수준을 넘어서는 감성적 개발을 도모하는 데 기여하는 방법인 것이다.
그는 뇌과학이 뇌가 어떻게 사용되고 어떻게 하면 잘 사용할 수 있는지를 밝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학문이며, 이로써 인간의 행동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되는 학문이라고 말한다. “저는 과거 20여 년간, 특히 지난 10년 사이 이루어진 뇌과학의 성과들이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거나 가르치고자 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우리 모두가 노력해 좀 더 세상을 좋게 만들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그의 역설대로, 여러 분야의 학문과 다양한 노력으로 뇌를 이해하고, 그로써 인류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희망을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글·김성진 daniyak@brainmedia.co.kr | 사진·김명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