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드라마와는 다른 원작 소설의 맛

영화 드라마와는 다른 원작 소설의 맛

'끝에서 두 번째 사랑' '화차'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원작인 책을 토대로 제작한 영화와 드라마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 각색된 작품의 인기에 원작까지 인기를 끌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와는 다른 즐거움을 주는 책. 원작 도서를 읽고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더 깊게 이해하고 색다른 감동을 느끼게 될 것이다. 여기 각색된 영화, 드라마와 전혀 다른 매력을 가진 원작 소설 3권을 소개한다     

인생의 참맛을 아는 어른들의 달콤쌉싸름한 현실 로맨스

 - 끝에서 두 번째 사랑

김희애와 지진희 주연 SBS드라마 끝에서 두 번째 사랑의 원작 소설이 있다. 2012년 후지TV 방영 드라마를 소설화한 끝에서 두 번째 사랑으로, 일본 특유의 코믹함과 잔잔한 정서가 엿보이는 작품이다.

▲ '끝에서 두 번째 사랑' <사진=아르테

드라마 프로듀서인 마흔다섯 살 치아키와 시청 공무원인 마흔아홉 살 와헤이는 옆집에 살면서 사사건건 얽히고, 까마득한 연하남 연하녀와 각자 연애를 시작하지만 왠지 서로 티격태격할 때만큼의 편안함과 설렘이 없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은 척해야 하는 나이인 두 사람은 어른이지만 실은 어린 아이 같은 속내를 내보일 내 편이 절실하다. 둘이 쌓아가는 로맨스는 알콩달콩보다는 현실의 짠 맛과 연애의 단 맛이 만난 단짠단짠에 가깝다.

원작 소설은 여성들이 당돌하리만치 마음과 욕망을 솔직히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치아키가 열 살 연하의 이웃집 남자 신페이에게 하룻밤을 보내자고 직접 말하고, 와헤이에게 동시에 대시하는 세 살 연상 미망인과 어린 부하 여직원은 모녀관계이지만 주위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는다.

끝에서 두 번째 사랑은 막장이라 손가락질하기 전에 인물들의 심정을 먼저 들어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판단이나 비판은 그 다음이다. 소설에서 펑키하다는 말로 대변되는 황당한 사건들은 결국 별 진척 없이 소소한 웃음과 에피소드로 마무리되고, 그 가운데 인물들의 섬세한 심리만은 놓치지 않는다.

와헤이의 막내 동생은 남자들의 반응을 실험하려고 채팅 사이트에 치아키의 사진을 올리는데, 큰언니 노리코의 남편이 나타나는 웃지 못 할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 와중에 남자가 겨우 세 명밖에 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낙담하는 치아키와, 같은 사이트에 자기 사진을 올리는 질풍노도의 노리코는 인간적이고 솔직해서 웃음을 자아낸다.

한국 드라마가 판타지라면 소설은 초라하고 낯부끄럽지만 진솔한 진짜 내 이야기. 이 많은 일들을 겪은 치아키와 와헤이가 어떻게 연인이 되었을까 싶지만 아마 서로가 그 과정을 따뜻한 시선으로 봐준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 드라마가 원작의 톡톡 튀는 매력과 한국판만의 개성을 어떻게 살릴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끝에서 두 번째 사랑』 | 오카다 요시카즈 각본, 마키타 요헤이 소설, 민경욱 옮김 | 아르테 
<끝에서 두 번째 사랑> | SBS | 최영훈 연출 | 최윤정 극본

   

평범한 삶을 돈으로 사고 싶었던 한 여자의 비극

화차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의 여왕 미야베 미유키의 진면목이 잘 드러난 대표작으로 꼽히는 화차는 국내에서 200만 관객을 모은 변영주 감독의 영화 <화차>의 원작 소설이다. 소설과 영화는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며 그 재미를 톡톡히 살리고 있다. 화차에서는 추리물답게 미스터리한 여주인공의 인생 퍼즐을 하나씩 맞춰가는 과정이 도드라지고, 영화화차에서는 이 작품으로 연기력을 재평가 받은 김민희의 차분하고 섬뜩한 연기를 감상할 수 있다  

▲ '화차' <사진=문학동네>

형사 혼마는 약혼자가 사라졌으니 조사해달라는 친척의 부탁으로 세키네 쇼코라는 여자를 조사한다. 혼마는 그녀가 실은 가혹한 채권추심에 시달리다 진짜 쇼코를 죽이고 대신 인생을 살고 있는 가짜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소설 화차는 일본의 부동산 시장 거품과 과도한 담보대출, 신용거래 남발과 그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개인파산을 어려운 경제 용어나 숫자가 아닌 세키네 쇼코의 인생을 통해 이야기한다. 그러면서도 개인적 비극 묘사에 그치지 않고 구조적 문제를 명쾌하게 설명해준다. 영화에서 풀리지 않았던 의문이 책을 읽으면 풀린다. 대신 현실에 답답함도 한층 더해질 것이다.

영화 <화차>는 형사가 아니라 약혼자가 직접 사라진 여자 주인공 차경선을 찾아나서는 만큼, 사랑하는 사람이 신기루였다는 충격과 차경선에 대한 연민이 부각된다. 또한 책은 형사가 여자를 붙잡으면서 끝나지만, 영화는 차경선이 경찰에 쫓기다가 투신 자살하고, 약혼자가 그 장면을 목격하는 충격적인 결말을 맺는다. 영화는 이 장면을 슬로모션으로 처리해 보이지 않는 자본이 한 여자의 인생을 깔아뭉개는 비극을 강조했다  

선생님, 어쩌다 이렇게 많은 빚을 지게 됐는지 나도 잘 모르겠어요. 난 그저 행복해지고 싶었던 것뿐인데.”   

뱀은 허물을 벗잖아요? 그거 실은 목숨 걸고 하는 거래요. 그러니 에너지가 엄청나게 필요하겠죠. 그런데도 허물을 벗어요. 왜 그런지 아세요? 목숨 걸고 몇 번이고 죽어라 허물을 벗다보면 언젠가 다리가 나올 거라 믿기 때문이래요. 이번에는 꼭 나오겠지, 이번에는, 하면서. [] 이 세상에는 다리를 원하지만 허물벗기에 지쳐버렸거나 게으름뱅이거나 벗는 방법을 모르는 뱀이 수없이 많다는 거죠. 그래서 그런 뱀들에게 다리가 있는 것처럼 비춰주는 거울을 파는 뱀도 있다는 말씀. 그리고 뱀들은 빚을 내서라도 그 거울을 사고 싶어 하는 거예요.”

 

운명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 냉소와 희망 사이

-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데이비드 핀처의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스콧 피츠제럴드의 단편 소설이 원작이다. 1960년대 미국의 버튼 가문에서 태어난 벤자민이 노인으로 태어나 일생 동안 점점 젊어져 갓난아기가 된다는 기본 설정만 제외하면 영화와 책은 거의 다른 작품이다.

영화가 편견과 신체의 한계를 뛰어넘은 위대한 사랑 이야기라면, 소설은 기발한 에피소드로 쓴웃음을 자아내는 블랙코미디로, 인생과 죽음에 관한 철학을 부담스럽지 않은 분위기의 단편에 녹여낸 피츠제럴드의 위트가 빛난다.

케이트 블란쳇이 열연한 운명의 연인 데이지는 소설에 존재하지도 않으며, 소설 속 벤자민은 화려한 젊은 시절을 제외하면 평생 소외감 속에 살았다. 그의 아내는 벤자민이 젊은 외모로 사교계 생활을 즐기는 것이 못마땅하고, 벤자민은 아내가 젊음과 생기를 잃고 무기력한 중년이 되자 질려버린다. 아들이 어려진 아버지에게 남들 앞에선 삼촌이라 부르라고 말하는 장면은 사실적이면서도 씁쓸하다. 영화가 사람들이 벤자민의 외모 너머 진짜 모습을 보는 기적을 그렸다면, 피츠제럴드의 소설은 시종 냉소적인 필치로 인간의 나약함과 무력함을 그린다. 현실에 가까운 쪽은 소설이지만 때로 희망을 주는 판타지가 더 의미가 있는 법이니 무엇을 선택할지는 독자와 관객의 몫이다  

모든 것이 어두워졌고 그가 누운 하얀 아기 침대와 위에서 움직이던 희미한 얼굴들, 따뜻하고 달콤한 우유향이 그의 뇌리에서 모두 사라져 버렸다.


글. 정유철 기자 npn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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