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해외 출판 시장에 한국 소설 파는 남자

[인터뷰] 해외 출판 시장에 한국 소설 파는 남자

케이엘매니지먼트 이구용 대표

브레인 33호
2013년 01월 15일 (화)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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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엘매니지먼트 이구용 대표는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김영하의 《빛의 제국》 등을 해외에 수출한 출판 에이전트이다. 우리 문화 컨텐츠도 얼마든지 해외에서 통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국내 최초 출판 저작권 수출전문회사 이구용 대표를 만났다.

한국 문단에는 왜 하루키 같은 세계적인 작가가 없을까? 이웃나라 일본에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도 여럿인데, 왜 우리는 그런 작가가 없을까?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은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도 ‘사카이’ 에이전시의 노력이 없었다면 세계적인 작가가 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 적 있다. 그만큼 문학을 해외에 소개하는 데 출판 에이전시의 역할이 크다는 말이다.

한국에는 왜 하루키 같은 작가가 없을까?
실제로 우리 출판계에서 이구용 대표의 입지는 특별하다. 그간 출판 에이전시의 주요 업무는 해외 문학을 국내에 소개하는 데 있었다. 이 대표처럼 열정을 가지고 우리 문학을 세계에 알리는 에이전트는 흔치 않다.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야 하는 일이고 오랫동안 공을 들여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20년 가까이 출판 에이전트로 활약한 경험을 토대로 우리 문학을 해외에 알리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한국 문학을 외국에 소개하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개인적으로 우리 것에 관심이 많았어요. 대학 때 영미문학을 전공하긴 했지만, 팝보다 가요, 민요, 창을 더 좋아했고, 외화보다 ‘TV문학관’을 즐겨봤죠.

오래전부터 우리 것을 해외에 알리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는데, 하는 일이 출판 에이전트이다 보니까 출판물을 소개하게 된 것이고, 대학 때 문학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그중에서도 문학 작품을 주로 다루게 되었지요. 누가 하라고 해서 한 것도 아니고, 순전히 내가 좋아서 한 일이기 때문에 힘들어도 보람을 느낍니다.”


이 대표는 1996년에 출판 에이전시 임프리마코리아에 입사한 것을 계기로 출판 에이전트 업무를 시작했다. 소설가 신경숙, 김영하, 조경란, 한강, 이정명 등이 그를 통해 세계 독자들을 만났다. 말하자면 이 대표는 까다롭기로 유명한 영미권 출판시장에 우리 문학을 제일 먼저 소개하는 한국 대표 에이전트인 셈이다.


우리 문학을 해외에 수출할 때는 단순히 대중성이나 상업성을 기준으로 하지는 않는다.  작품을 선정하는 그만의 기준이 궁금했다.

“반드시 문학적으로 뛰어나고 예술적 완성도가 높은 작품만을 선정하는 건 아닙니다. 순수문학이든 대중문학이든 저마다 작품이 지닌 아름다움과 즐거움, 예술성이 다 있어요. 저는 그걸 발견하기 위해 노력하는 거지요.

다만 영미권 시장의 경우 워낙 저력 있는 작가들이 많기 때문에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겸비하지 않으면 진출하기가 어려워요. 개성적인 문체는 물론이고 탄탄하고 견고한 플롯도 갖추어야 하지요. 그런 작가와 작품을 찾는 것이 저의 일입니다.”

느리고 깊게 읽어야 작품의 진면목이 보인다
깐깐하고 밝은 눈으로 세계 독자에게 다가갈 작품을 찾기 위해 그는 기본 업무 외에 거의 모든 시간을 한국 작품을 읽는 데 쏟는다. 요즘은 대여섯 권의 책을 동시에 보는 일이 허다하다. 그렇다고 허투루 읽진 않는다. 소설 한 권을 보는 데 적어도 일주일 이상 걸린다.

워낙 책 읽는 속도가 느리기도 하지만 문장 하나하나를 음미하면서 읽는 독서 습관 탓이다. 그는 느리고 깊게 읽어야 작품의 진면목을 만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 접근 방식 때문일까? 노벨상을 받은 포르투갈 작가 주제 사라마구와 영국 작가 도리스 레싱은 국내에서 인지도가 없을 때부터 일찌감치 알아보고 한국에 소개해왔다. 특히 도리스 레싱은 노벨상을 받기 훨씬 전부터 노벨상을 수상할 만한 작가로 점찍고 관리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될성부른’ 작가를 알아보는 에이전트로서의 안목이 따로 있을까? 세일즈 포인트만 잡아서 판권을 파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으면 작품의 강점이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애정을 가지고 곱씹으며 읽으면 누구나 알아볼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그렇게 집중해서 책을 읽다 보면 작가의 개성이 보이고, 어느 나라에 어떻게 소개할지 아이디어가 절로 떠오른다고. 하지만 작품을 소개할 때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건 역시 에이전트로서의 ‘감’이다.


“기본적으로 제가 관심이 있어야 돼요. 누가 하라고 해서 하는 것도 아니고, 판매량이 많은 책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것도 아니에요.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작품에 대한 즉흥적이고 본능적인 끌림이 있어야 해요. 제가 확실히 끌리지 않으면 작품의 진면목을 소개하기가 어렵거든요.”

에이전트의 본능에 따라 소개한 책이 해외에서 좋은 반응을 얻을 때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보람을 느낀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는 출간 전에 한 매체에 소개된 글을 봤을 때부터 이미 ‘감’이 왔다.

이 대표의 예상은 적중했다. 작년 5월 미국에서 출간된  《엄마를 부탁해》는 한국 문학 최초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등 한국 소설도 세계에서 통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줬다. 김영하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미국에서 2년 동안 1만 부 가까이 팔려 나갔고, 조경란의 《혀》 또한 세계 10개국에 수출됐다.

최근에는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과 《도가니》 등이 13개국에 수출되기도 했다. 덕분에 요즘은 해외 에이전트 사이에 한국 문학을 대하는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다고 한다. 

뮤지컬, 영화까지 한국 문화 컨텐츠 세계에 알리겠다
이 대표는 앞으로 순수문학뿐 아니라 아동서, 청소년 도서 등 해외에 소개할 출판물의 영역을 확대할 계획이다. 출판물뿐 아니라 한국 뮤지컬과 영화 등 문화 컨텐츠 영역까지 사업을 확대할 생각도 가지고 있다. 

“출판뿐 아니라 영화와 뮤지컬까지 다루겠다고 하니 사람들이 참 특이하다고 해요. 하지만 아직 개척되지 않은 분야이고,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렇지, 외국에서는 이미 한 에이전시에서 공연 예술, 출판물, 영화 판권까지 다 관리합니다. 전혀 새로울 게 없어요.”


남들이 잘 안 하는 어려운 일에서 성과를 낼 때 삶의 보람을 느낀다는 그에게 한국에서도 하루키 같은 작가가 나올 수 있을지 물었다. 그의 대답은 ‘이미 나왔다’였다. 어리둥절해하는 기자에게 그는 ‘신경숙 작가’를 주목하라고 귀띔했다. 


“신경숙 작가는 이미 세계에서 하루키 못지않은 독자들의 호응과 평단, 출판계의 관심을 받고  있어요. 다만 하루키는 미국 시장에 데뷔한 지 20년이 됐지만, 신 작가는 아직 1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격차가 커 보이는 것뿐이지요. 하지만 두고 보세요. 신 작가가 일궈놓은 길 위로 많은 작가들이 지나갈 것이고 우리 문학도 세계에서 머지않아 진가를 인정받게 될 겁니다. 저는 그것을 느낄 수 있어요 ” 

글·전채연 ccyy74@naver.com  사진·박여선 pys0310@hanmail.net

케이엘 매니지먼트에서 해외에 수출한 책들

* 김영하 《빛의 제국》   해외 출판 저작물의 국내 수입 업무를 주로 하던 그가 한국 문학 수출을 실천에 옮긴 것은 2004년부터다. 첫 작가는 소설가 김영하. 그의 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가 유서 깊은 미국의 출판사 하코트에서 출간된 이래 2010년 휴튼미플린하코트에서 다시 《빛의 제국》 영문판이 출간돼 좋은 반응을 얻었다. 미국에 소개된 한국 소설이 거둔 성과로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 조경란 《혀》  2009년 미국 블룸즈버리 USA에서 출간됐다. 이 소설은 미국 외에도 네덜란드, 이탈리아를 거쳐 프랑스와 중국에 이르기까지 번역 판권이 차례로 팔려나갔다. 이 대표는 조경란 문학의 영미권 수출 성공으로 비로소 한국 문학의 해외 수출에 확신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 신경숙 《엄마를 부탁해》  문학이 세계 독자의 호응을 얻으려면 작가의 개성뿐 아니라 전 세계인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소재도 중요하다. 《엄마를 부탁해》는 한국적 정서와 인류 보편 정서를 맛깔나게 버무린 작품으로 책이 출간되기도 전에 이미 에이전트로서 ‘감’이 왔다고 한다. 미국 최고 권위의 출판사 크노프에서 출간됐고, 한국 소설로는 유례없이 전 세계 31개국에 수출됐다. 사진은 4월에 출간될 영문판 페이퍼북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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