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태어나 가장 먼저 관계는 맺는 집단은 바로 ‘가족’이다. 우리는 가족관계를 통해 인생을 살면서 수없이 형성하게 될 대인관계에 대한 기본적 믿음과 기대를 하게 되며 이것은 친구, 연인, 부부, 자녀 등 여러 관계 속에서 많은 영향을 미친다.
'가족'이라고 하면 따뜻함, 안정, 화목, 사랑 등 긍정적인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동시에 가족으로부터 받은 상처, 나쁜 기억도 있기 마련이다. 이처럼 가족은 가장 사랑하면서 동시에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주고받는다.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가족을 통해 세상을 보는 아이의 시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침으로써 아이가 자라 성인이 된 후의 삶까지 결정한다는 것이다.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낸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트라우마를 가족들에게 되풀이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좋은 아버지, 좋은 어머니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족치료전문가 최광현 교수(한세대 가족상담학과 교수 · 트라우마가족치료 연구소장)는 우리 마음에 생긴 가장 깊은 상처는 대부분 가족과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가족의 발견》, 《가족의 두 얼굴》 등을 저술하며 수많은 가족의 아픔을 상담해 온 최광현 교수를 지난 2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인터뷰했다.
▲ 가족치료전문가 최광현 교수(한세대 가족상담학과 교수 · 트라우마가족치료 연구소장)
- 가족으로부터 받는 상처가 유독 오래 남고 크게 느껴지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인간관계에서 문제가 생길 때 그 관계를 끊으면 깨끗하다. 동호회에서 만난 사람이 마음에 안 들면 관계를 끊어도 크게 상관없다. 그런데 부모나 가족의 경우 내면의 슬픔이 생긴다. 죄책감과 수치심이 자리 잡는다. 비록 경제적으로 손해 보거나 마음 다치는 것은 없지만, 그 미안함과 죄책감과 수치심이 내면에서 크게 작용한다. 이런 마음이 몸의 병으로 이어진다.
- 최근 우리나라의 가족해체 현상이 심각하다. 주요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가족문제는 너무나도 복잡하기 때문에 하나로 단정 짓기 어렵다. 열 가정이 있다면 열 개의 가족문제가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복잡한 가족 간의 관계를 면밀히 관찰해야 한다.
가정폭력, 알코올 중독 아버지를 상담했던 적이 있다. 아내와 아이들에게는 아버지는 괴물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막상 그 아버지를 직접 만나보니 억울하다고 말했다. 처자식이 자기를 왜 미워하는지 모르겠다. 가족을 이렇게 위해 애쓰는데 몰라준다고 속상해 했다. 상처 많은 사람의 특징은 시야가 좁다는 것이다. 본인이 얼마나 가족을 힘들게 하고, 같이 일하는 직원을 힘들게 하는지 스스로 보지 못한다.
심리학의 치료방법은 나를 아는 것부터 시작한다.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일제식민시대, 6·25 전쟁, 좌우익 사상의 대립 등 수많은 시대적 모순을 겪으며 이는 우리 사회에 깊은 트라우마를 남겼다. 한국의 가정 내 문제를 이해하려면 시대적 사회 맥락 속에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모순의 시대에서 느낀 분노, 억울함, 분노를 해결하지 못해 그 화살을 가족에게 돌리는 아버지들이 많았다. 또한, 나머지 가족들은 그런 아버지를 끌어안으며 살아야 했다.
- 어떻게 해결 할 수 있을까
자신의 삶과 부모와 조부모의 삶 사이에서 불행의 반복에 대한 유사점을 발견할 때, 그리고 지금까지 무엇이 그들을 잘못된 길로 이끌었는지를 인식하게 될 때 비로소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 우리는 자기 가족의 과거를 더 많이 알고 이해할수록, 세대 간에 반복되는 불행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가족치료는 과거 가족에게서 받은 상처를 잊게 하거나 애써 무시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 그리고 트라우마를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를 이끌면서 자연스레 이루어진다.
우리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상처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이다. 상처가 행복과 성장을 위한 자원이 될지, 아니면 부정적인 삶의 원친이 되어 불행을 전염시키는 병균으로 자랄지는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다.
▲ 지난 2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서 열린《가족의 발견》최광현 교수 간담회
- 알게 모르게 상처 준 가족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부터 시작하면 좋을지
과거는 개인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과거로부터 말끔히 벗어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 자신의 문제를 인지하는 것이 시작이라고 말한다.
학대하는 아버지의 가엾은 피해자가 30년 후 가해자가 되어 있다. 어린 시절 받은 슬픔, 울분, 외로움을 현재 내 가족에게 되풀이하는 것이다. 자기가 고통받고 있는 이유가 집안과 또는 부모와 연관되어 있을 수 있다고 막연하게 생각은 하지만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나를 상처 줬던 가족을 조금 입장 바꿔놓고 보는 시간을 가지기를 제안한다. 그분은 가해자이지만 동시에 피해자이다. 그분 역시 부모 혹은 가족으로부터 받은 상처가 있는 것이다.
또 가족과의 따뜻한 소통과 공감은 큰 힘이 된다. 가족은 때로 우리에게 아픔과 고통의 원인이 되고 그래서 벗어나고 싶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마지막 안식처이자 피난처이다.
따뜻한 공감의 말 한마디는 상한 감정을 치유하는 능력이 있다. 말 한마디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다. 그러나 그 한마디는 꼭 필요할 때 하지 않으면 자칫 깊은 상처와 실망과 분노를 유발할 수 있다.
가족 내 갈등과 문제 해결은 가족들이 서로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공감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글, 사진. 전은애 기자 hspmaker@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