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인 북스] 산만한 뇌가 집중하는 법

[브레인 북스] 산만한 뇌가 집중하는 법

ADHD를 위한 시작과 끝맺음의 전략

환자이자 의사, 같은 길을 먼저 걸어온 사람이 쓴 ADHD 전략서

수학 문제 하나를 붙들고 새벽 3시까지 버티던 아이가 영어 단어장을 펴면 10분 만에 책을 덮었다. 생활기록부에는 학기마다 ‘주의가 산만함’이 적혔고, 시험 계획표는 D-30부터 색깔 펜으로 정성껏 짰지만 책을 펴는 건 늘 D-1이었다. 

그는 스스로를 의지가 약하고 게으른 사람이라고 믿으며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했고 의사가 되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2년 차, 연구용 표본을 모은다는 공지를 보고 별생각 없이 주의력 검사를 받았다. 결과지를 본 교수가 처음 건넨 말은 “정 선생, 그동안 공부하느라 정말 힘들었겠네요”였다.

《산만한 뇌가 집중하는 법》의 저자 정재균은 진료실에서 ADHD 환자를 만나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자, 서른이 넘어 진단을 받은 ADHD 당사자다. 진단 후 1년을 고민한 끝에 약을 먹었고, 30분쯤 지나 처음으로 머릿속이 조용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때 그는 평생 100kg짜리 모래주머니를 달고 마라톤을 뛰어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책의 가장 큰 차별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의학 지식을 설명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같은 어려움을 몸으로 겪은 사람이 직접 써 보고 효과를 확인한 방법만 골라 담았다.

저자는 자신을 성공담의 주인공으로 내세우지 않는다. 7년째 치료를 받는 지금도 알람까지 맞춰 둔 약속을 깜빡하고, 중요한 발표를 앞두면 여전히 심장이 두근거린다고 털어놓는다. 완벽해진 사람이 아니라 괜찮은 삶에 이른 사람의 기록이기에, 독자는 이 책의 전략을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해 볼 수 있는 일로 받아들이게 된다.

문제는 시작과 끝맺음, 해법은 의지가 아니라 구조

ADHD를 가진 사람은 ‘뭘 해야 하는지’는 안다. 다만 어떻게 시작할지, 어떤 순서로 할지, 언제까지 붙들고 있을지를 조율하는 뇌의 CEO, 곧 실행 기능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은 ‘더 열심히’ 대신 ‘다르게’를 말한다.

시작을 위해서는 세 가지 전략을 제시한다. 생각하지 않아도 될 만큼 일을 작게 나누는 ‘잘게 썰기’, 10분만 해 보고 정말 안 되면 멈추는 ‘시동 걸기’, 충동이 찾아오면 어떻게 할지를 미리 정해 두는 ‘미리 답 정해두기’다. 저자는 “완벽주의는 동기가 아니라 회피의 포장지”라고 짚는다. 그리고 모든 일의 10%만 미리 해 두라고 권한다. 빈 파일을 여는 것과 제목과 목차가 적힌 파일을 여는 것은 심리적 장벽이 천지 차이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많은 자기계발서가 건너뛰는 '끝맺음'까지 다룬다. 시작한 일은 20개인데 끝낸 일은 하나도 없는 상태. ADHD를 가진 사람에게 익숙한 장면이다. 저자는 마무리 구간에는 새로움이 없어 도파민이 나올 구석이 없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별도의 장치를 권한다. ‘끝’의 모양을 처음부터 한 문장으로 정해 두고, 20%쯤 남았을 때는 마감 시각과 결과물을 받을 사람을 정하고, 도중에 떠오른 새 아이디어는 다른 종이에 적어 두되 시작하지 않고, 끝낸 것은 눈에 보이게 쌓아 두는 것이다.

ADHD 당사자의 경험에 더하는 과학적, 의학적 근거

이 책의 위로에는 근거가 있다. 2023년 호주 모나시대학교 연구팀의 실험에서 성인 ADHD 집단은 같은 보상 앞에서 힘을 들이겠다고 선택하는 비율이 낮았다. 미국 볼코우 연구팀의 PET 연구에서는 보상과 동기를 담당하는 부위의 도파민 관련 지표가 대조군보다 낮게 나왔다. 

저자는 이 결과를 저울에 빗대 쉽게 풀어낸다. ADHD 뇌는 보상 쪽 접시가 가볍다. 그래서 완성된 모습을 아무리 상상해도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보상을 키울 수 없다면 비용 쪽 접시를 덜어 내야 하고, ‘10분만 규칙’이 바로 그 일을 한다.

약물 치료를 둘러싼 불안에도 정면으로 답한다. 성인 ADHD의 약 70~80%가 약물에 긍정적으로 반응한다. 스웨덴에서 ADHD 진단을 받은 약 3만 9천 명을 추적한 연구에서는 약을 처방받은 사람들의 물질 관련 문제가 오히려 31% 적었다. 저자는 약이 집중력을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가진 능력을 쓸 수 있는 여유, 곧 ‘신경학적 공간’을 만들어 준다고 설명한다. 처방전을 1년 동안 서랍에 넣어 두었던 사람의 경험이라 설득력이 더 크다.

ADHD의 강점도 근거를 들어 다룬다. 좋아하는 일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드는 ‘하이퍼포커스’와 쉽게 꺼지지 않는 ‘상상 회로(기본 모드 네트워크)’는 집중을 방해하는 원인이면서 창의성의 원천이기도 하다. 다만 저자는 “여기서 멈추면 위로에 지나지 않는다”며 한 걸음 더 나아간다. 10개를 시작해 9개가 흐지부지되어도 괜찮지만, 정말 끝내고 싶은 하나에는 반드시 장치를 걸어 두라는 것이다.

진단이 없어도 괜찮다, 집중력을 잃어버린 모든 뇌를 위한 책

ADHD는 더 이상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ADHD의 70%가 성인기까지 이어지고, 겉으로는 얌전하지만 머릿속만 끊임없이 바쁜 부주의형은 특히 진단이 늦다. 진료실에는 2년째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오후 4시가 넘어서야 책을 펴는 수험생, 완벽한 기획서를 써야 한다는 부담에 마감 전날 밤을 새우는 마케터, 학기마다 리포트를 마감 몇 시간 전에 내는 대학원생이 찾아온다. 이 책은 그들의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그렇다고 진단받은 사람만을 위한 책은 아니다. 스마트폰과 끝없는 영상이 쉴 새 없이 도파민을 쏟아붓는 지금, 집중이 어려운 건 ADHD만의 일이 아니다. 저자의 말처럼 "가장 산만한 뇌를 위해 다듬은 전략이니, 누구의 뇌에도 도움이 된다." 매번 시작만 하다 끝나는 직장인, 벼락치기를 끊지 못하는 학생, 아이의 산만함이 걱정인 부모, 약을 먹어야 할지 망설이는 사람까지. ‘혹시 나도?’라는 생각이 든 모든 독자에게 이 책은 자책 대신 쓸 수 있는 방법을 건넨다. 저자는 강조한다. “ADHD라서 안 되는 것이 아닙니다. ADHD라서 다르게 할 수 있다.”

글. 우정남 기자 insight159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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