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화를 모티브로 나라사랑 백 만들어요”

“우리 문화를 모티브로 나라사랑 백 만들어요”

쿠미오리 이지남 대표

브레인 33호
2013년 01월 15일 (화)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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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 브랜드 ‘쿠미오리’는 우리 문화를 모티브로 가방을 디자인한다. 흔히 한국 문화를 모티브로 한다면 인사동에서 볼 수 있는 기념품을 떠올린다. 하지만 쿠미오리는 다르다. 트렌드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디자인 하나하나에 우리 문화의 숨결을 오롯이 담았다. 스스로를 디자이너가 아니라 ‘문화 창조자’라고 칭하는 쿠미오리 이지남 대표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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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남 대표는 이화여대 장식미술학과를 졸업하고 결혼 후 바로 미국 유학을 떠났다. 남편이 미시건 공대에서 학위를 받는 동안 패션 디자인을 공부했는데, 그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서 내친 김에 이탈리아 마랑고니 패션스쿨로 유학을 떠났다. 유학을 마치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뉴욕에서 액세서리 프랜차이즈인 ‘소호’ 숍을 열었다.

뭐든 한번 시작하면 열정을 쏟는지라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 전역에 10개의 매장을 열었고, 월 30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사업가가 되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사업도 승승장구했지만, 왠지 허전했다.


“사업이 성공하기까지 고생도 많았어요. 하루 열두 시간씩 서서 고객을 맞아야 했고, 백화점 화장실에서 모유 수유를 할 만큼 바빴죠. 남들과 차별화된 마케팅 전략을 짜고 미국 전역에 흩어져 있는 매장을 관리하고 직원 교육을 하다 보니 크리스마스에 아이들 얼굴도 못 볼 정도였어요.

물론 제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었지만, 어느 순간 인생이 허무하더라고요.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인생이 이게 다일까? 의문이 들었어요. 돈이, 풍요로운 삶이 저를 만족시켜주지 못했어요.”


급기야 셋째 아이를 낳고 나서는 산후우울증까지 겪었다. 미국에서 알게 모르게 받은 문화적인 차별도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그동안은 삶의 초점이 오로지 나 자신에게 맞춰져 있었어요. 패션에 관심이 많으니까 명품도 스페셜 에디션만 사 모으고 궁전 같은 집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을 모두 누리며 살았죠. 

하지만 미국 사회에서 소수민족으로 살아가다 보니 인종의 벽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미국인 친구들을 사귀어도 어느 순간 넘을 수 없는 벽이 느껴졌고, 아이들이 자라서 그런 문화적인 차별을 받을 생각을 하니 더 이상 미국에 머물 필요를 느끼지 못했죠.”

터닝 포인트, 나를 위한 삶에서 남을 위한 삶으로


그즈음 그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인간이 태어난 것은 단지 먹고 살기 위해서만은 아닐 텐데, 그렇다면 나는 왜 태어났을까?’ 6개월 동안 하루 두 시간씩 자면서 질문에 매달린 결과, 그는 돌연 한국행을 결심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충분히 살아봤으니 이제 보다 의미 있는 삶, 사명을 실천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래서일까. 한국에 와서 처음 시작한 것은 패션 사업이 아니라 다문화학교 후원 사업이었다.

“한국에도 다문화가정 문제가 심각하더라고요. 학대 받는 여성도 문제지만 아이들 교육이 더 심각해요.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왕따를 당하고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데, 받아주는 곳이 없어서 방치되고 있어요. 아직은 아이들이 어려서 잘 드러나지 않지만, 점점 사회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 부분이지요.

제가 미국에서 다문화체험을 해봤고, 소수민족으로서 아픔을 겪어봤기 때문에 누구보다 그들의 마음을 잘 알아요. 그래서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대안학교인 다애다문화학교를 세우는 데 동참했고, 물질적, 경제적으로 후원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한국에 와서 3년의 공백 기간 동안 그는 다애다문화학교 후원 활동을 하면서 구체적인 사업을 구상했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것이 가방 브랜드 ‘쿠미오리’다. 쿠미오리는 히브리어로 ‘일어나 빛을 발하라’라는 뜻으로, 한국의 전통 문화를 모티브로 가방을 디자인한 것이 특징이다.

궁궐의 둥근 처마, 신윤복의 미인도, 태극기, 거북선, 무궁화 등 우리 문화에서 영감을 받은 세련된 디자인의 가방을 선보이고 있다. 제품이 가진 철학 때문일까. 브랜드를 출시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았지만 쿠미오리는 입소문을 타고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몇 백만 원짜리 명품 가방이 대세인 우리 패션 시장에서 전통 문화를 모티브로 상품을 개발한다는 것이 자칫 모험일 수도 있겠다. 이 대표는 우리 문화를 단순히 디자인 모티브로 차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제대로 된 문화를 알리겠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다.

“어렸을 때 외할머니에게 골동품에 얽힌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했어요. 증조할아버지 대부터 독립 운동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고, 아버지도 애국가를 전화 연결음으로 쓸 만큼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각별한 분이었는데, 그런 경험들이 잠재의식 속에 녹아 있다가 어느 순간 계기를 만나 발현된 것 같아요.”

그는 우리 문화를 제대로 알리려면 단순히 문화의 외형을 차용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쿠미오리 브랜드는 한국의 미를 과감하게 드러내기보다 은근하게 디자인에 녹여내는 데 공을 들인다.


“쿠미오리에 우리 문화의 냄새가 강하지 않다고 하는 분들도 계세요. 하지만 한국 문화를 모티브로 한다고 해서 단청 문양을 그대로 가져다 쓰는 식으로 디자인하는 것은 일차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제품은 인사동에서 기념품으로 사는 거지 평소에 들고 다니지는 않잖아요.

저는 철저하게 문화를 콘텐츠로 비즈니스를 하고 싶어요. 그러려면 우리 문화를 재해석하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디자이너가 우리 문화를 가지고 디자인했으니 무조건 사라고 하면 고객이 공감할까요? 고객을 설득하려면 결국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할 수밖에 없어요.

저는 미국에서 고객을 하루 열 시간 넘게 응대하면서 비즈니스를 해왔기 때문에 고객이 뭘 원하는지 본능적으로 알아요. 쿠미오리의 목표는 문화를 있는 그대로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패션 트렌드 속에서 재해석해내는 것이에요.”



그렇다면 문화를 패션 트렌드에 녹여내는 그만의 노하우는 무엇일까?

“예를 들어 이번 시즌에 블루 컬러가 트렌드라고 하면, 모든 디자이너가 똑같은 블루를 쓰는 것이 아니라 자기 브랜드를 대표할 수 있는 블루 컬러를 찾아내요. 그때 쿠미오리는 ‘쪽빛’에서 브랜드 색깔을 찾는 거죠.

문화는 한순간에 되는 게 아니고, 오랜 시간 쌓여온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가진 깊이가 있어요. 그 깊이를 제품에 녹여내는 데 공을 들이기 때문에 다른 브랜드와 확실히 차별화되는 점이 있어요.”


그는 제품에 우리 문화를 담기 위해 공부도 많이 한다. 무궁화 백을 만들 때는 무궁화에 대한 모든 자료를 찾아서 공부하는 식이다. 무궁화가 무슨 과 식물인지부터 어느 지역에서 번성하고, 재배법은 무엇인지, ‘무궁화 삼천리’였던 우리나라에서 무궁화가 사라진 이유가 무엇인지, 디자인과는 크게 상관없을 것 같은 모든 정보를 섭렵한다. 그렇게 연구하다 보면 우리 문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무엇보다 디자인에 영감을 받을 수 있다고.

진심으로 좋아해야 디자인이 나온다

우리 문화에 애정이 깊은 그는 우리 전통 문화가 촌스럽다는 한국인의 인식부터 바꾸겠다고 한다. 그래서 명함 타이틀도 디자이너나 대표라 하지 않고 ‘문화 창조자’라고 했다. 한국인의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 올바른 문화를 전하겠다는 마음이 담긴 타이틀이다.

“미국에서 숍을 운영하면서 전 세계 사람들을 다 만났어요. 믿지 않으시겠지만, 전 세계인들이 우리 문화에 열광하거든요. 이태리나 미국에서 외국인들이 열광하고 있는 우리 문화를 정작 우리 자신은 촌스럽다고 폄하하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어요.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을 디자인에 녹여내고 싶은 것은 그 때문이에요. 하지만 우리 문화가 촌스럽지만 내가 한번 디자인해봐야지, 이런 생각으로는 절대 좋은 디자인이 나올 수 없어요. 진심으로 내가 좋아해야 좋은 디자인이 나와요.”


미국에서의 사업 성공 노하우를 바탕으로 한국에서 가방 브랜드를 론칭한 이지남 대표. 그의 목표는 단순히 매출을 올리는 데 있지 않았다. 쿠미오리를 통해 우리 문화를 전 세계에 알리겠다는 야무진 포부를 갖고 있다. 제대로 된 우리 문화를 전하겠다는 사명감, 진심으로 디자인하면 그 마음이 반드시 고객에게 전해진다는 확신이 있기에 그의 다음 행보가 기다려진다. 

글·전채연 ccyy74@naver.com  사진·박여선 pys03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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