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복지사회를 꿈꾸는 예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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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기업 ‘자바르떼’ 이은진 대표

브레인 24호
2013년 01월 14일 (월)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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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하반기 국내 사회적기업은 353개. 마치 문화예술의 척박한 환경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대부분이 자활공동체 중심의 복지 서비스나 제조업체이다. 그래서 사회적기업이자 문화예술기업인 ‘자바르떼’에 눈길이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2004년 문화예술인의 일자리 창출과 소외계층을 찾아가서 문화예술 교육을 하자는 목적아래 ‘신나는 문화학교’로 시작한 자바르떼는 2007년 정부로부터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다. 모든 사람이 예술을 체험하고 누릴 수 있는 문화복지사회를 꿈꾸는 자바르떼의 이은진 대표를 만났다.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면

이은진 대표는 자신을 비롯해 주변의 많은 예술인들이 생활고 때문에 자신의 꿈을 접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예술은 돈이 많이 들고 아무나 누릴 수 없는 것이라는 우리 사회의 인식이 문화예술을 특정 계층의 전유물로 만들고, 문화 소외계층을 낳았다고 생각해요. 돈 없는 예술가는 창작활동을 지속하기 힘들고, 돈 없는 사람들은 문화예술을 누리지 못하는 사회를 행복한 사회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기업인이기 전에 음악가인 이은진 대표는 돈 걱정 없이 창작활동에 몰입하고 싶은 예술가의 마음에 충분히 공감한다. 문화예술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마음도 안다.

그래서 그는 지난 6년 동안 문화예술을 생활 속에서 가까이 접하기 어려운 소외계층을 찾아가 문화예술 교육사업을 펼쳤다.


문화예술의 가치는 나눔과 공유

이 대표에게 나눔은 ‘나에게 꼭 필요하지 않은 것을 남이 필요하다면 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2003년 ‘차별철폐 문화행진’이라는 캠페인에 참가한 이후 생각이 바뀌었다.

“100일 동안 전국 곳곳을 걷는 행사였는데, 시골 마을을 돌면서 밥을 얻어먹은 적이 여러 번 있었어요. 당시 마을 어르신들은 ‘난 또 금방 지어서 먹으면 되니까 자네 먼저 먹어’라고 하시면서 당신이 드셔야 할 밥을 우리에게 선뜻 내주셨어요.

그때 ‘나눔은 나한테 덜 필요한 것을 주는 게 아니라 나한테도 꼭 필요한 것을 남한테 주는 것’이란 걸 깨달았죠. 어르신들이 나눠주신 밥처럼 소중한 것을 나누고 싶었고, 문화예술 역량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더구나 이는 물질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화수분처럼 계속 나눠줄 수 있어서 아주 좋죠.”

그에게 문화예술을 나누는 일은 자신이 갖고 있는 역량을 지역사회의 구성원들과 함께 즐기는 것이다. 이는 예술가의 생계를 지원하는 일일 뿐 아니라 지역 공동체를 살리는 일이라고 그는 믿는다.








자바르떼 실험실

보통 창작은 혼자서 골똘히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혼자 작업실에 박혀 있기보다는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창작의 힘을 얻는 경우가 많다. 또 자신의 창작물이 대중과 소통되는 것을 느낄 때 예술가는 가장 기쁘다. 적어도 이은진 대표에게는 그렇다.

“예술가에게 열정과 자존심은 곧 그들 자신이나 마찬가지예요. 유명한 예술가가 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자부심과 행복을 느끼는 예술가가 많아져야 해요.

또 누구나 예술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정화하고 치유함으로써 주체적인 삶의 태도를 기를 수 있어요. 자바르떼가 목표로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에요.”

영어로 일을 뜻하는 단어인 ‘잡Job’과 이탈리아어로 예술을 뜻하는 단어 ‘아르떼Arte’를 합친 자바르떼는 나눔이 있어 신나는 일, 창조하고 소통하는 예술, 상상하고 체험하는 놀이가 이루어지는 곳을 지향한다.

자바르떼는 서울, 인천, 경기 지역의 시민, 특히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문화예술 교육을 실시하고, 다양한 공연과 문화체험 행사를 벌인다. 기업이나 자치단체의 행사를 기획하고 연출, 제작하는 사업도 함께 한다.

이러한 여러 사업을 통해 문화예술 교사들인 예술가들에게 급여를 지급하고, 또 이들이 창작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다. 자바르떼의 사업들 중에서 이 대표에게 가장 애틋한 것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예술교육 사업이다.

편부모나 조손가정이 많은 소외계층의 아이들이 예술 활동을 통해 자신이 가진 긍정적인 요소들을 드러내는 걸 보면 아무리 힘들어도 이 일을 계속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란다.


거위의 꿈




2004년 ‘신나는 문화학교’로 시작해 정부의 도움 없이 4년을 버텼고, 2007년 정부로부터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은 지 올해로 3년째다.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고 3년이 지나면 정부로부터 더 이상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최근 들어 자생 방안에 대한 고민이 더욱 크다. 기업의 형태로 운영하는 만큼 구성원들을 책임질 수 있는 규모로 성장해야 하는데 아직은 많이 버겁다.

그렇다고 수익을 올리기 위해 지자체나 기업의 행사 위주로 사업을 벌이는 것은 사회적기업으로서의 정체성에 맞지 않는 일이다.

“우리나라 사회적기업의 시스템은 아직 정부나 기업의 후원이 없으면 운영할 수 없는 구조예요. 그래서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예술교육을 적어도 한 가지씩은 배울 수 있도록 문화예술 복지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요.

문화예술의 소외 지대 없이 누구나 문화예술을 누릴 수 있도록 이를 국민의 기본권으로 규정하는 거죠. 그리고 정부와 기업, 지자체 등에서 1인당 일정 비용을 후원하는 방식도 의미가 있을 거예요.

또 예술인들에게는 작업 공간을 제공하는 등의 지원을 하고요. 그렇게 되면 저소득 계층도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고, 예술인과 사회적기업도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요.”

최근 문화바우처 예산을 확대한다는 소식에 기대를 걸고 있는 이은진 대표는 “결국 사회적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보호해 주는 것은 지역사회와 정부”라고 말한다.

주민들과 소통하며 지역의 문화예술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는 꿈이 있기 때문에 사회적기업으로서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책임을 느낀다는 이 대표의 표정은 인터뷰 내내 무척 진지했다.

하지만 인터뷰가 끝나자 이내 아이 같은 해맑은 웃음이 얼굴 가득 퍼진다. 경영자에서 예술가로 돌아온 듯한 순간, 그 얼굴이 반가워 덩달아 웃는다.

글·정소현 nalda98@brainmedia.co.kr | 사진·김명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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