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는 상상과 현실을 얼마나 잘 구분할까?

뇌는 상상과 현실을 얼마나 잘 구분할까?

닥터 양의 뇌 이야기

브레인 113호
2025년 11월 24일 (월) 17:16
조회수68
인쇄 링크복사 작게 크게
복사되었습니다.

눈으로 볼 때와 상상할 때의 뇌 활동을 측정한 실험 

뇌는 상상과 현실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고 하는데, 이것이 어떤 의미일까요? 

누가 레몬을 먹는 것을 보면 나도 모르게 입안에 침이 고입니다. 내가 먹지 않는데도 레몬의 신맛이 연상되면서 반사적으로 얼굴을 찡그리게 되고 침이 나오죠. 

생각해 보면 이는 아주 흥미로운 현상입니다. 상상만으로도 우리는 신맛을 실제처럼 느끼고 반응하니까요.  그렇다면 우리 뇌는 상상과 현실을 얼마나 잘 구분할까요? 

뇌에서 일어나는 활동을 눈으로 볼 수 있는 MRI(자기공명영상) 장비를 활용해 과학자들이 사물을 눈으로 직접 볼 때와 상상할 때 뇌의 활동이 어떻게 다른지를 조사했습니다. 한 그룹의 참가자에게는 나무 그림을 보여주고, 다른 한 그룹에는 눈을 감은 채 나무를 상상하게 한 다음, 두 그룹의 뇌 활동이 어떻게 다른지 알아내기 위해 MRI로 머리 전체를 스캔했습니다. 

결과가 어땠을까요? 나무 그림을 눈으로 보았을 때와 나무를 상상만 했을 때, 뇌의 반응은 비슷했을까요, 달랐을까요? 
 

▲ 닥터 양의 뇌 이야기 [사진=게티이미지 코리아]


상상을 활용한 가상현실과 치료법 

결과는 두 경우 모두 뇌의 활성이 비슷하게 나타났습니다. 실제 시각 정보가 들어오는 뇌의 뒷부분인 후두엽에서만 작은 차이가 발견됐고, 나머지 뇌의 활성은 별 차이가 없었던 것이죠.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뇌는 상상과 실제를 그다지 구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상상을 잘 하기만 한다면 뇌는 이를 실제와 다름없이 느낀다는 것이죠. 

이 같은 뇌의 특성을 활용한 것이 메타버스Metaverse입니다. 메타버스는 현실과 가상 세계가 융합된 디지털 공간으로, 그 안에서 사용자들이 아바타를 통해 현실처럼 소통하고 활동합니다. 가상의 공간임에도 뇌는 실제와 거의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치료를 목적으로 이 특성을 활용하기도 합니다. 1950년대부터 임상 심리 치료에서 써온 ‘노출요법’이 그 사례 중 하나입니다. 노출요법은 트라우마를 일으킨 과거의 경험을 안전하고 통제된 환경에서 상상으로 다시 떠올리게 하여 치료 효과를 얻는 방법입니다. 

주로 불안장애에 적용하는 행동치료인데, 어떤 위험도 유발하지 않고 불안의 근원이 되는 대상이나 환경에 환자를 노출함으로써 불안에 따른 고통을 완화할 수 있습니다. 

노출요법의 결과는 긍정적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어떤 메커니즘에 의해 이 같은 작용이 일어나는지는 명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고통스러운 경험을 다시 떠올리는 것이 어떻게 치료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노출요법 실험  

이와 관련한 한 실험이 진행됐습니다. 이 연구에서 참가자들은 어떤 소리를 들을 때, 불편하지만 고통스럽지는 않은 전기충격을 받음으로써 소리와 전기충격을 연관시키도록 훈련되었습니다. 소리를 들을 때마다 전기충격을 받기 때문에 참가자들에게 이 소리는 위협적인 것으로 인식됐습니다.

이후 이들을 세 그룹으로 나누어 첫 번째 그룹은 전기충격 없이 위협적인 소리에 노출시키고, 두 번째 그룹은 위협적인 소리를 상상하게 하고, 세 번째 그룹은 기분 좋은 새소리와 빗소리를 상상하게 했습니다. 

첫 번째 그룹에 적용한 것은 ‘실제상황 노출법(in vivo exposure, 혹은 real-life exposure)’에 해당합니다. 대상자를 실제 공포 유발 상황에 노출시키는 것입니다. 

두 번째 그룹에 적용한 것은 ‘심상적 노출법(imaginal exposure)’입니다. 대상자가 두려운 상황을 상상하게 만들어서 공포스러운 사고나 기억을 대면하게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그룹에는 노출 치료를 적용하지 않고 그냥 이완반응을 유도한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유형의 실험 후, 그룹별로 참가자들의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fMRI(기능적 자기공명영상)을 사용하여 뇌 활동을 측정하고, 피부 센서로 신체 반응도 측정했습니다. 

위협적인 소리를 다시 듣거나(첫 번째 그룹) 상상한 그룹(두 번째 그룹)에서는 소리를 처리하는 청각피질, 두려움을 처리하는 측좌핵, 정서 조절에 관여하는 복내측 전전두엽이 모두 활성화하면서 뇌 활동이 유사하게 나타났습니다. 

또한 이 두 그룹의 참가자들은 이전에 두려움을 유발했던 자극에 대해 더 이상 같은 반응이 나타나지 않는 ‘소멸(extinction)’을 경험했습니다. 위협적이었던 소리에 대해 뇌가 더 이상 위협적이라고 판단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위협을 유도하는 소리를 상상하는 것(두 번째 그룹)도 위협을 유도하는 소리를 듣는 것(첫 번째 그룹)과 마찬가지로 소멸의 경험을 유도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은 곧 뇌가 상상을 실제처럼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확인해 줍니다. 

그런데 새 소리와 빗소리를 상상한 세 번째 그룹은 뇌의 반응이 달랐습니다. 위협적인 소리에 대한 공포반응이 여전히 지속됐던 것이죠. 즉 좋은 것을 상상하면서 이완하는 방식의 단순한 휴식으로는 뇌의 반응을 바꾸지 못한 것입니다. 
 

상상의 힘 

이 연구를 수행한 연구자는, 일반적으로 두려움이나 부정적인 감정을 줄이는 방법은 좋은 것을 상상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더 효과적일 수 있는 방법은 정반대라고 이야기합니다. 안전하게 통제된 환경에서 문제 상황을 직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상상으로. 

노출 치료 과정을 통해 특정 정보에 대한 뇌의 반응을 바꾸는 새로운 뇌 회로가 형성됩니다. 이로써 과거에 자신을 두렵게 했던 정보가 이제는 그냥 객관적인 정보가 되어 버리죠.

처음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면, 뇌는 상상과 현실을 구별하지 않는다는 것은 맞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영화와 게임을 즐기는 것도 아무런 위험 요인 없이 다양한 경험을 현실처럼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겁니다. 즐거움을 위해, 또 내면 치유를 위해 상상을 적극 활용해 보세요.


글_양현정 한국뇌과학연구원 부원장,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통합헬스케어학과 교수


참고문헌
• Ganis G et al. (2004) Brain areas underlying visual mental imagery and visual perception: an fMRI study. Cognitive Brain Research 20: 226–241.
• Reddan M.C. et al. (2018) Attenuating Neural Threat Expression with Imagination. Neuron 100 (4): 994

ⓒ 브레인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기 뉴스

설명글
인기기사는 최근 7일간 조회수, 댓글수, 호응이 높은 기사입니다.